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3장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6. '젼쟁준비를 한다'는 말을 겁내지 마라
80년대 중엽이 되어서야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세계대전은 피할 수없다'는 마오쩌똥의 단언과 이와 관련된 행동을 포기하였다. 구소련의 반중국적 영화에서 유아용 놀이기구 중 장난감 총은 세계적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중국의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놀이기구이다'라고 중국의 탁아소에서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묘사한 적이 있다. 이 말에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 모두가 똑같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황인종이 세계무대에 두각을 나타낼까봐 두려워하는 백인들의 심리와 제국주의, 수정주의, 그리고 반동파에 대한 우리들의 혐오감과 경계심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해 본다면, 어떤 것이 다른 하나를 능가한다고 단언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들은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을 하게 될 날이 오기를 가슴 졸이며 빌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소련의 붉은군대가 우리들의 교실에 쳐들어와 선생님을 쏘아죽이고 우리의 교실을 파괴한다면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까지도 모두 나서 산 넘어 군대를 찾아가게 될 것 같은 상상을 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편을 갈라 전쟁놀이를 즐겨 하고, 영화 속에 등장하거나 실제로 존재하는 무기를 가지고 싶어하며, 다 자란 후에도 여전히 '전쟁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쟁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전설적 인물의 전기적 행동과 무사나 협객의 용감하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숭고한 정신을 흠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인해 중국사람들의 동양적 전쟁관의 특징이 결정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우리들의 이상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사람들은 전쟁이 노동과 마찬가지 일이며, 도덕적으로 사람들을 정화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설사 전국이 전쟁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을 짓밟고 약탈하려는 잔혹성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중국인에게는 제국주의적 유전자가 없다. 즉 탐욕스럽고 잔인한 성향은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중국인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거나 다른 나라와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전쟁의 기본 경향. 즉 폭력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전쟁은 인의를 섬겨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일을 감행하는' 교화와 설교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항상 우리들에게 이러한 전쟁의 도덕관을 심어주었다. 마오쩌똥 주석이 서거한 그 날 오후,우리는 모두 운동장에 엎드려 국부(國父)를 잃은 슬픔으로 애통해 하던 중,방송에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하는 약속을 들었다. '중국은 영원히 세계를 제패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초강대국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후 20년 동안의 중국 정세는 이 도의적 약속을 정성껏 지켜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이 세계를 제패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고 또 가능한 일이지만, 왜 초강대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은 떨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왜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우리는 왜 분쟁을 조절하는 힘있는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인가? 수박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배나무 밑에서 갓을 벗지 않는다 하여 우리의 웅지를 숨길 이유는 없다. 리비아 같은 나라도 '소연합국'이라는 시적이고 귀여운 상상을 하는데,우리의 국력신장이 더디다고 '말꼬리를 흐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가?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뒤 많은 국가들과 조직이 모두 아리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때, 우리는 우리의 색깔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정의감은 넘치지만 그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굳은 의지이다.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개발도상국가나 국제연합 연맹국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가를 더욱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상의 자유라는 견지에서 중국대표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권리를 여러 차례 포기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런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의 이 걱정은 서양사람들이 우리를 업신여길까봐 고심하고 염려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통일전선에 따르는'방법으로 고심하고 근심하여 미래에 더욱 첨예해질 국제갈등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누구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무력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온건하다고 모든 일이 순조롭지 만은 않을 것이며, 약진한다고 이 땅을 잃어버리진 않을 것이다.
서양인들이 우리 땅에서 손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니카라구아와 같은 약소국연합의 의견을 얕보아서는 안 되며. 더욱이 대만과 세네갈이 국교를 맺은 후 점진적으로 퍼지게 될 영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이기에 주의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늘 해왔던 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앞으로 주권문제와 같은 기본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저 멍청하게 당할 수뷔에 없을지도 모른다. 중국영토의 분할을 획책하는 세계적인 음모는 국제외교의 미묘한 변화속에 잘 반영되어 있으며, 이것은 결코 내가 독자들을 놀라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생각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나라조차도 최근에는 과격한 몸짓으로 '대만을 지키자'는 시위행렬에 참여하여,우리는 한시바삐 대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사랑 같은 감정은 1분 내에도 발생할 수 있는 기이한 것이며, 국제문제도 이와 유사한 성질을 띤다. 대만문제의 향방이 어떤 쪽으로 기울어지겠는가 하는 것은 대만섬 안팎과 세계적으로 이와 관련되어 계속 발생하는 사건과 매스컴에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리떵후이와 루오따로의 대담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런 진실하고 비통한 독백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볼 때, 그저 간단하게 감정이 비틀렸기 때문에 일을 그렇게 만들었다고만은 생각할 수 없다. 리떵후이는 일본 점령시기를 거친 사람이다. 나는 대만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영화 속에서 대만사회가 일본에게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매우 놀랐으며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정결하고 뻣뻣한 교복, 친절하고 성실한 시골 경찰, 시골 아낙네의 머리 꼭대기에 동여 매어진 흰 수건, 방 안의 다다미는 흡사 아열대의 일본을 연상하게 했다. 내가 오랫동안 무척이나 싫어했던 대만가요는 일본의 엔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일본의 잔재가 대만인의 따뜻하고도 즐거웠던 어린시절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리떵후이와 동시대에 어린시절을 보낸사람들은 모두 이런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자랐던 것이다. 또한 리떵후이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람이고, 그가 걸어온 과정은 아마도 당시 지식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을 것이다. 국민당의 대만인학살사건인 소위 '2 28, 사태'가 일어나던 날 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중국인이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당 당국이 '2 . 28사태'로 대만인에게 준 상처는 대만독립주의자들을 선동하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일본의 대만 통치는 시간적으로 당시의 만주국보다 길고 일본에 동화된 정도도 훨씬 더 깊으며,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대만 발전에 미친어떤 영향이나 일부 인재의 양성에 끼친 영향은 만주국에서보다 더 심했다고 역사는 적고 있다. 나는 최소한 리떵후이의 감정적 배경을 이런 데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리떵후이가 대만의 정치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언행이 무엇인가 확실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보냈던 이러한 생애 때문이며, 그의 개인적 경력이 대만독립에 대한 이념의 유래를 굴절시키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에게 일본이 끼치는 영향은 미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헌법을 개정하여 집단자위권을 실행하자는 소란은 아시아 주변국가들의 우려를 자아냈을 뿐아니라 장차 중국과 일본이 서로 대항할 여지를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다. '집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칙에 의거하면, 일본은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에게 도의상으로 배울 수 있는 것 이외의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일본과 대만의 역사적 관계 및 대만 독립을 추진시키려는 국제세력의 행위들로 미루어 보아 위험한 추론을 전개할 수 있다. 만일 대만이 독립을 선포한다면, 만약 일본의 주권이 성장하여 세계를 석권한다면 우리는 미래에 어떤 동맹에 직면하게 될까? 그때 우리는 세계여러 나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또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고려하여 아픔을 감수하며 우리의 목표 달성을 포기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될것이다. 대만해협에는 소리없는 통곡의 벽이 세워지게 되고 우리는 눈앞의 얕은 바닷물 위로 천 년 동안 긴 회한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것이다.
적어도 중국은 기본적으로 평화적인 문제해결 방침을 고수하지만 무력 사용을 자제한다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라는 경고문을 세계라는 게시판에 공고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적을 쓰러트릴 준비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무력을 사용하여 적을 쓰러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우물거릴 필요는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부심이 어떤 사람을 자극시킬 것인가를 두려워하지 말라. 전세계의 위험세력은 시시각각 대만의 항로이탈을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만 왜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무서워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젊은 시절에 호기있게 하던 말이 있다. '노름은 크게 벌이는 것이 낫고, 싸움중에 끼어드는 것보다 선수치는 게 낫다.' 무력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평화를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전쟁은 우리의 5개년 개발계획을 대가로 하기에 만일 지금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뒤따라 올 영향은 더크고 깊으며 심지어는 중국의 발전을 더욱 더디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없이 우리를 능멸한다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을 용기가 있다. 전쟁과 맞바꿔야 할 미래와 비교해 본다면 이것은 말할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희생으로써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세계는 이로 인한 편년사(編年史)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희생과 굳센 의지가 있어야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온다.' 나는 미국의 청년들이 조국을 위해 군에 입대하여 죽는 일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할 즈음-이런 가치관은 일찍이 그들의 아버지 시대에 인정 된 것이다-중국은 미국 젊은이들이 그 회의에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책임이 있나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여 보았다. 워싱턴에는 전쟁을 기념하는 장벽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월남전쟁 때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떼 죽은 군인을 기념하는 것이다. 중국 여행객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면, 미국 젊은이들의 이름이 가득 새겨져있고 지금까지도 장벽 속에서는 저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그곳을 들러 감개무량해지곤 한다. 중국인이라면 반드시 그곳에 한번쯤은 가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승리하지 못 한 전쟁이며, 그리고 중국 병사들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인들이 대만문제로 인해 우리를 없신여기고 핍박하여 전쟁을 기념하는 장벽을 하나 더 세우고자 한다면, 그 장벽에는 더 많은 미국 청년의 이름을 새기게 될 것이라고 나는 정중하게 충고하고 싶다. 또한 나는 그 장벽이 미국인의 영혼을 묻을 묘지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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