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3장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5. 지해의 창을 열어라
달라이 라마가 쓴 책 [개안(開眼) 은 티베트의 지하에서 활동하는 분열주의자들에게 비밀리에 널리 유포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학식이 높은 학자조차도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심오한 내용과 사상을 담고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는 티베트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번은 나와 방송국 동료가 미국친구와 함께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너무나 황당하여 [개안]이라는 책에다 가르침을 청해 지혜의 눈을 떠야 할 것 같다. 이 논쟁은 총칭의 한 식당에서 벌어졌다. '국사(國事)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에 대해 젊은이들은 연연해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티베트문제는 미국이 먼저 어렵게 만든 것이라는 서두를 꺼냈다. 그러자 그는 발끈하며 '너희 군대는 당연히 티베트에서 철수해야 해. 그리고 티베트 백성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장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에게 네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예기하는 거야? 본래 티베트는 우리 일이니까 우리는 네가 조금도 끼어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오늘은 내가 너에게 특별히 마음대로 말하도록 허락해 주겠다. 하지만 내가 먼저 너에게 알려줄게 있다 내가 너에게 고증학과 역사 변천에 대해 얘기해 줄 수는없고, 또 얘기한다 해도 너는 알아듣지도 못해- 나는 라마교 수장의 친척에서부터 농민이나 천민에 이르기까지 많고 다양한 티베트친구가 있어. 각 계층의 친구를 두루 가지고 있는 셈이지. 그들은 각종 이익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들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소식은 네가 미국의 각 언론망을 통해서 얻은 소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어. 티베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중국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어. 티베트 스스로가 원하여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고 중국의 지도와 통치를 원했고 군대의 주둔까지 받아들인 시간은 너희 조상들이 북미대륙을 정복한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어. 역사나 현실은 모두 티베트가 중국임을 긍정하고 있단 말야'라고 말했다. 내 친구도 그에게 '너희가 텍사스와 뉴멕시코를 빼앗은 수단은 떳떳하지 못했고 극단적인 것이었어. 그런데도 너희 미국은 왜 군대를 주둔시켜서 멕시코사람들이 자기들의 장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지?'라고 했다. 그러자 이 양코배기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뒤집었는데 거기에는, 텍사스 주는 나중에 얻어온 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 미국아이는 어깨를 들썩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아니야, 아니야. 텍사스에는 모두 미국인이 살지만티베트인과 너희들은 다른 민족이야. 달라이 라마가 얼마 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그는 티베트인을 대표해서 중국이 티베트인의 인권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우리는 참을성을 발휘하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티베트의 정신지도자는 달라이 라마 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더구나 '달라이 라마'라는 말도 몽고어에서 파생된 '중앙에서 책봉한 종교의 영수'라는 뜻이야. 티베트인들이 달라이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유목민들의 막사 안에 종종 달라이와 마오쩌똥 주석님의 사진을 함께 모시기도 하는 것을 너도 봤잖아. 그리고 또 티베트에는 달라이 라마만 있는 것이 아니고 판첸 라마도 있어. 우리도 인권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아. 하지만 달라이의 선전기구가 민주개혁 이전의 티베트사회를 목가풍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과 완전히 달라. 서구의 많은 영화제작자들은 티베트의 가혹한 형벌 장면을 촬영했었는데 그 잔학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야. 티베트의 종법사회(宗法社會)는 일찍이 흉악하고 잔인한 귀족계층에서 유지되었는데 티베트의 인구가 감소된 것은 이때의 흉악한 노예제도와 관계가 깊어. 달라이가 '인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구사회의 지지를 얻으려는 선동책략에 불과할 뿐이야.'-한 미국인이 각성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이렇게 많은 설명을 한 바보 같은 행동에 대해 지금까지 깊이 후회하고 있다-. 그는 중얼중얼하며 서양식 임기응변의 옹색함과,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얄팍한 비유를 끌어대면서 나의 예봉을 피해 나갔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집에서 자기 마누라를 구타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당신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예를 들면.......'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앞으로는 이와 같이 고등학생식으로 마구 생트집을 잡는 녀석과 논쟁에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중국인은 부차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기 좋아하지만, 중요한 사실에 직면했을 때는 태도가 간결하고 심각해진다. 나는 미국 여론이 이 정도까지의 허위로 사실을 오도하고 있는 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중국의 중앙정부가 티베트 인민들에게 원조를 하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의 지역경제에 대한 무식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인들은 우리가 해마다 대량의 재물을 티베트로부터 약탈해 간다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때마다 우리 중국인은 모두 온순하기만 한 통역자와싸움이라면 질색을 하는 소녀까지 포함하여 분노에 몸을 떤다. 나는 분노를 억제하고 티베트는 낙후된 지역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재정 수혈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중국 정부의 돈이 티베트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완강하게 부인하면서 '아니야, 중국은 티베트를 이용한 관광업으로 해마다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어'라고 억지를 부렸다. 나는 '너를 상대하는 내가 바보다'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이번의 티베트문제에 대한 논쟁은 하나의 코미디로 결말이 나고 말았다. 음악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쩌우판(周汎)이 노동자계급 특유의 위엄있는 자태로 일어나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미국인에게 입 닥쳐! 네가 여기에서 평화 운운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 이 양코배기 제국주의자야!'라고 일갈하였다. 미국인은 즉시 익살스런 투항자세를 지어보였고 우리는 모두 큰소리로 웃어넘겼다. 지혜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성현을 볼 때마다 많은 곤혹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곤혹스러움은 내 자신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 지구에 넘쳐 흐르는 거짓된 뉴스를 대면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출가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 14세인 텐진의 '망명정부'가 외부세계 앞에서 모든 티베트 뉴스의 권위있는 보도센터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음을 대할 때, 우리들은 참을 수 없이 궁금한 것이 있다. 성현으로서 지혜를 전달하면서 그는 왜 자식 같은 백성들이 진정한 지혜의 원천을 접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리는가? 또 그가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의 지혜는 왜 세속의 더러운 기교로 타락하는가? 티베트는 신비의 땅이며 성스럽고 숭고한 설산이 있는 곳이다. 내가 티베트사람보다 더 티베트를 잘 이해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을 수는 없으나 양원의 까마귀떼 같은 국회의원들이 떠들어대는 앞에서나 미국인에게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한 민족의 지혜는 그 나라가 강대국이라 하여 향상되는 것이 아니며, 한 민족의 발언권도 그 나라의 세력이나 경제력이 강하다고 반드시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개개인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규율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인을 보면 그들은 방자하기 이를 데 없으며 남에게 깊은 혐오감을 주면서도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점은 민족 전체의 품격에 영향을 미쳐 세계 각국 각 민족이 관련된 국제적 사안을 처리할 때는 그들의 결핍된 교양이 그대로 드러난다. 민족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내재기능의 변화에 대한 경계심의 결핍으로 그들의 의식 심층이 분별없이 본분을 잃고 스스로 제일인 줄 아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심리를 갖게 된 것이다. 어느 한 민족이 오랫동안 다른 민족을 보살펴 주었고 또 어떤 때는 이런 보살핌이 매우 극진하였다하더라도 때로는 도움 받은 민족이 존경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남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그것이 효과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존경심을 유발시키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는 짓이 바로이와 같다.
일찍이 300 년 전 드골은 미국의 패권이 유럽을 압살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국은 유럽인들 스스로 자기의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아 유럽과 동방의 나라들이 화해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셈이라면서, 결론적으로 미국은 모든 방면에 걸쳐 나타나는 장애물이다'라고 지적햇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할 때면 항상 그 반대급부적 보상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소인배적 작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다른 대국들과는 달리 그들의 대외원조에는 고상한 인격적 색채가 조금도 보이지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제, 군사, 문화, 교육에 걸친 물질적 원조나 자원봉사를 제공받게 되는 나라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원조에 대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보면서, 한때는 미국 코쟁이들은 대단히 억울할 것이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자세히 생각해 보자. 가령 루즈벨트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시대라면 정계로부터 민중에 이르는 모든 미국인이 다른 국가의 수십억 국민들에게 깊이 축적된 역량에 대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였을까? 우리는 미국인이 예수가 되어 세계를 광명으로 인도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미국인에게는 갖은 고난을 거친 위대한 민족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연민의 정서가 결핍돼 있기 때문에, 식자층으로부터 보통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누구도 다른 민족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 수가 없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세계를 영도할 자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기술주의의 미국은 대포와 폭격기를 들이대며 협박하기를 좋아하고. 물질주의의 미국은 코 앞의 당근으로 다른 민족을 유인하여 자기 식의 울타리 안에서 춤추도록 하는 것을 즐긴다. 지금은 미국의 이런 매력이 쇠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쁨에 겨워 과거의 잠꼬대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잠꼬대를 지금까지는 대포와 폭격기 그리고 당근을 대가로 삼아 판매했던 것이다. 다리가 백 개 달린 지네 같은 미국이 아직은 그들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상적 배경이 빈약하기 때문에 다른 대국들이나 곧 대국이 되려는 나라가 전세계에 외치는 소리를 막아낼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가진 불굴의 정신을 극단적인 형식으로 재현한 이란혁명을 경이의 눈으로 보았고. 엄숙한 인생을 마침으로써 우리 중국청년들에게 스스로 각성하고 경계심을 가지도록 만들어주었던 성전(聖戰)의 희생자들을 존경하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인이 단지 도덕적 이유만으로 원시적인 분노를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의 소녀추행사건으로 일치 단결하여 미 군사기지에 충격을 주었다. 미 제국주의의 역사적 죄업에 대한 필연적인 웅보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역사의 인과응보가 태평을 구가하는 미국인들에게는 아직 강림하지 않았지만, 오키나와사태로부터 가장 먼저 교훈을 얻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다. 수 십 년 전 미국인이 베이징에서 沈崇이라는 여대생을 강간한 사건으로 대학생 시위가 일어나고 나아가 중국사회 변천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일본인처럼 그렇게 안락하지도 않고,또 2차대전 종전으로 얻은 이점도 일본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의 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보다는 현재 우리가 국가의 기본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데도, 고난을 겪고 있는 다른 민족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경계심마저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우려하게 된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대만사태를 보는 우리의 심정은 하나의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미국 국회에 민의를 대표한답시고 몰려든 까마귀 때 의원들은 '군사적 대만보호'의 보따리를 펼치고 있다.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 50~60년대의 대치상황을 재연하는 것처럼 제7함대가 대만해협으로 들어와 순찰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수억이나 되는 중국 청년들이, 만일 모든 상황이 막바지에 이른다면 용감하게 떨치고 일어나 미국놈들에게 '너희들이 감히'라고 소리칠 말할 뱃심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마음속에는 黃尊憲 이 흑기군을 찬양할 때 전쟁의 북소리와같이 고동치던 시(時)가 메아리첫다 . 중국은 열정적인 문학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시나 술 같은 영상이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가치가 심각하게 변화함에 따라 실용성과 물질문명의 효용성이 우리들의 사유영역을 크게 잠식하였다. 그 결과로 영웅주의적인 태도로 위협에 대웅하기보다는 비교적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짙다. 과연 어떠한 태도가 '현실적인 태도'일까?국가 기반을 이루는 최소한의 요소들이 우리에게 최대의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무엇을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모두 대만문제가 미국과 무력충돌의 초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력사용으로 인해 온 나라가 후유증을 앍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까지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쭐대며 위세를 떠는 미국의 면전에다 우리의 깊고 넓은 역사감각으로 고귀한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도 맨발에 쑥대머리를 하고 피투성이의 몸으로 미국식 화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될 것이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나는 중국대륙에다 골프장을 만든 대만의 어느 사장에게 만일 대만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대만독립에 대해 묻는다면 독립에 찬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35퍼센트를 넘지 않을것이라고 대답했다. 기타의 다른 자료를 보더라도 대만독립에 찬성하는 여론은 40퍼센트 수준이 가장 높았다. 30퍼센트가 되었건 40퍼센트가 되었건 간에 이런 여론의 기초자료는 대만 사회현실의 확실한 반영인 것이다. 대만 국민들은 비교적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전통과 다른 소동이 일부의 국민에게 나타나면 이런 현상을 가리켜 혹자는 '항로를 잃었다[迷航]'라고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항로를 잃는 것은 중화인 민공화국의 국가 의지가 필요해서 잠시 도발한 것이라고도 하며, 혹자는 좀 우아하게 표현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확고한 집단민의가 필요해서 잠시 부결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일이 국가에서 해야 할 것들이 아닌가? 국가의 신성한 위엄과 명망이 단순히 황제의 뒤에 있는 선비들의 자비로움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국가는 우리에게 이 일은 바로 이렇게 결정됐다고 확고한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대만은 틀림없이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고 다른 어떤 견해도 있을 수 없다. 리후이탕(李惠棠)이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회의장에서 축출당했을 때 그는 미국이 힘 을 쓰면 쓸수록 더 망치게 된다고 말했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대만해협으로 항해해 왔을 때 실질적으로 괴로움을 받은 쪽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고 대만이었을 것이다. 대만은 돌연 고립되어 피폐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대만은 겉으로는 '쳐 봐라, 상관없다'라고 말했겠지만 내심으로는 '나는 견딜 수 없이 괴롭다'라고 하였을 것이다. 적어도 대만문제로 우리는 미국과 마음속으로 싸은 일차접전이 있었으며, 이는 양국 국민들 사이에 벌어진 의지상의 충돌이었다. 더욱이 이는 중국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관에 대한 시험이었다. 천만 보 물러나서 우리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하느님도 힘이 도덕을 이긴다는 것을 인정한 현실이 되어 정말 전쟁을 치러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면,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전쟁에서 당한 것과 가튼 치욕을 겪게 될 것이 뻔한데도 우리는 과연 이를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 것일까? 이런 가정은 현실적으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과 당신의 부인이 공원을 거닌다고 치자. 폭력배들이 나타나 칼로 협박하며 재물을 뺏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고 하자. 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신에게 꺼지라고 하면서 당신 부인을 숲속으로 끌고 가려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반항해 봤자 형편없이 얻어터질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반항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 보통 인간으로서 이러한 경우에 지혜롭게 대처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유혈이 효과 있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피를 보게 되면, 폭력배들에게 음탕한 마음이 사라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부인에게 위기를 모면할 용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 때문에 수치심을 버리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를 흘리게 되면 이후 폭력배들에게 복수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이미 폭력배들에게 압박을 가하게 된 셈이다. 네팔의 전 국왕인 마헨드라도 '희생할 뜨거운 피는 우리들에게도 있다"라고 말한 적이있다. 돈키호테식으로 전투를 묘사한 것은 절대 해학적인 의미로 인류를 비추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제반상황이 증명하듯 정의는 항상 강권을 이길 수 있으며, 고양된 정신적 이념은 역사의 보답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방면의 도덕적 용기가 절대적으로 결핍된 나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대만의 일부 세력들이 항로를 이탈할 때 정정당당하고도 강력하게 이를 바로 잡아줌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칼날 같은 눈초리로 미국을 째려 보며 큰 소리로 혼을 내 주어야 할 것이다. '네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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