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3장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4.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미국을 '서쪽 하늘로 꺼져 가는 태양'과 같이 몰락해 가는 민족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국제적 사건의 해결을 위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눈에 콩깍지가 꾄 것처럼 허둥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홍보전문가와 컴퓨터 천재의 지배를 받는 백악관이 지구촌의 모든 일에 대해 일으키는 반흥은 이미 미국이라는 대국이 보여 주어야 할 지혜와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제퍼슨으로부터 케네디까지의 연설집에 있는 말을 베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외교적 언사로만 세계적 중대사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에 백악관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위선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작은 나라나 개발도상국가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지도자들보다 월등히 탁월한 인물들이다. 포드 이래로 미국의 지도자들과 그 고문들의 슬기와 능력이 점점 시들어가는 현상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미국인에게 투지와 소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레이건과 부시는 노전사()의 용기나마 가지고 있었다하더라도, 민주당을 통해 정치무대에 들어선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에게서는 추호의 결단력이나 어떤 용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소, 반중, 반공 시기에는 그런대로 국민적인 경각심이라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경각심조차도 안일과 풍요에 밀려나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원대한 계획도 없이 소동만 벌이게 될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페로가 말했듯이 미국 국민은 어쨌든 기획의 대상물이고 기획의 수단은 상업적 판촉과 선전일 따름이다. 미국에서 환기 넘치는 정치사조는 이미 사라졌고 오직 신기한 것에서의 자극만이 개혁정신으로 오인되어 갈채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미국인은 독립적 사고능력과 소질을 잃어버린 듯 19~20세기에 번창한 문학과 사상도 미국인에게는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의 청소년문제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과 관용은 결국 정치와 사상은 물론이고 문화 전반에 걸쳐 유치함을 면치 못하게 하였는데 이 점은 곧 침착한 중국인에게 미국은 개방적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미국 역사에 대한 지식은 미국의 대학생보다 중국 고등학생이 월등히 많으며 기타 미국에 대한 이해 또한 미국청년보다 중국청년이 앞선다고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청년기의 성숙과 진보 및 발전의 단계에서 볼 때 이러한 지식의 우월을 하찬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미국청년의 타락상인 마약이나 무절제한 섹스, 지나친 전자오락 등의 뒤안길에는 이미 인류문명으로부터 버림받을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미국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며 뿐만 아니라 지금의 여론도 이렇게 타락한 사람들의 사유로부터 조성되고 있다는 점은 날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미국청년들과 얼마간의 교제를 해보면 미국인이 떠드는 '개방'이니 '민주'니 하는 것들 속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인상을 받는 것은 결코 소국적 근성으로 타인을 멸시하는 부정적심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인과 교제를 하면 할수록 미국인의 순진한 개성이 우리에게 조금은 색다르고 신기하다고 느껴질 뿐 진정으로 하나의 민족을 발전시킬 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또 미국인이 경극(京劇)을 하거나 {물의 고향 강남[ 이라는 춤을 추는 것을 넓은 아량으로 보아주며 이로써 두 문화의 현저한 차이점에 쾌감을 느끼곤 하지만, 사실 깊게 관찰해 보면 이들의 행동은 어떤 면으로도 참고할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역사의식이나 깊은 사상도 없고 고난을 겪어보지도 않은 민족이 어떻게 세계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단 말인가? 인류의 미래를 밝힐 광명의 횟불이 '컴퓨터 천재'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손아귀에 장악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미국의 어느 신문보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많은 미국 성인들은 자기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평생 속이고 살며 어느 날 그의 자식들이 존경하던 아버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놀란다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사실은 우리의 의문점을 해결하는 데 얼마간의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요즘 국내의 젊은 여성들이 돈많은 사람을 추종하는 복잡한 심리상태에 대해 나는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벌여 본 적이 있다. 이런 현상 속에 '공리제일주의'라는 것 외에 '진실제일주의'라는 동기도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결론은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기품은 여성을 유인하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매력은 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돈만 있으면 남성다운 기질은 자연히 나타난다'는 말은 세태를 풍자하는 말 외에 분명 인류의 진정한 심리상태에 부합되는 말일 것이다. 비천한 출신이거나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일단 돈만 있으면 자신감과 오만함을 보이는데. 이는 곧 부유한 집 자식들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쉽게 감상에 젖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에 미묘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비유로 우리는 맹목적으로 미국적 개성을 추종하는 치명적오류를 해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이 천진하고 단순하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에게 그들의 큰 시장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미국 물질문명의 배경에 깔린 미흑의 안개로 위장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인의 천진함과 단순함을 미국문명과 성과와 관계있는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사실 미국인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은 그들 문명의 부산물이며 복지정책으로 제공된, 우유로 길들여진심각한 타성일 따름이다. 미국식의 광고는 우리에게 그들의 문명에 대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족한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큰 권력을 믿고 부패를 일삼는 따위의 행동으로 대국적 위치는 이미 장사지내고 말았으며, 지금은 단지 고약한 취미와 권문세가의 애교에 불과한 기풍밖에 가진 것이 없다. 미국의 어느 청년이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는 중국은 지옥과 같은 국가이고 중국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항에 나와 대성통곡하였다는 것이다. 아들은 일 년 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중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고 설명하였으나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믿지 않고 다시는 중국에 못 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예에서 보편적으로 미국인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쇄국적이고 배타적인 심성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견식 없는 대중들이 세계사를 좌지우지하려는 초강대국 미국 민의 기초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기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다고 들었다. 대통령, 당의장, 총리. 정당의 사무총장, 원수, 정무위원, 장관 등 수백 명이 넘는 외국 정계의 요인들이 정적에게 몰려 축출될 때 '중앙정보국 간첩'으로 지목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사나 친미세력들을 끊임없이 지원하고 있으나 사상으로 세계의 어떤 민족도 지배한 적은 없다. 설사 어떤 민족이 가난하고 힘이 약해 미국에게 지배를 당하더라도 미국적 가치에 머리를 숙이는 일은 절대 없었다. 미국보다 문명이 앞선 유럽이 비록 마설계획의 혜택을 받고 있을 때도 유럽은 그들의 우수한 철학, 정치, 경제상의 확고한 자존심을 지켰었다. 나라를 독립시키고 민족을 해방시키며 인민들은 혁명을 하여야 한다는 이 규율은 미국이 가장 번영하던 20세기에는 강렬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사상적 매력을 가지고 국제적인 업무를 처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먼로주의로부터 이후 역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국정수행상에 보여준 각양각색의 '주의'라는 것들이 국제적 대세에 어떠한 구속력도 가지지 못하였다. 또한 인류를 계도하고 상호 협조하게 하는 사상 중 어느 것 하나도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전후세계의 균형에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는 유엔에서의 미국 역할 역시 악역배우와 같이 자제력을 잃어 세계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성마저도 잃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는 각양각색의 사회단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70년대 말 떵샤오핑(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중국의 정치적 지도자 짱춘챠오(張春橋)를 정신지도자로 받들고 있던 정치단체들이 가두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을 겉에서만 보면 사상이 풍부하고 활달하기 때문에 자칫 그들의 문명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되지만 그들의 문명사조는 단 한 번도 세계적 문명의 대열에는 끼어들지 못하였다. 전세계의 여성운동, 노동운동, 문화혁명, 청년논단 등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규율에 의해 진행 된 것일 뿐이다. 미국문화의 폭발현상은 갈수록 방대한 규모로 환력이 넘치고 시대의 역작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한두 명의 선두주자가 수십 년 간 왁자지껄하게 유행을 이끌어가고 있어, 기이하고 에로틱한 기교가 예술 발전의 최대지표가 되고 있다. 기술주의의 발전과 사상성의 급격한 퇴조는 이미 대중예술 감상의 보편적 범좨가 되고 있다. 미국인에게는 축적된 경륜이 부족하여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할뿐 아니라 자신을 정확하게 조명할 능력조차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안목에는 제3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모두 만화경 속의 폭군일 뿐이며 미국문명 영향권 밖의 문명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하게 그들 문명의 수입을 강요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죄를 지은 어느 미국인에게 가죽채찍으로 때리는 태형을 가하자 모든 미국 국민은 가슴을 졸였다. 그들은 이러한 상처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야단법석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그들은 미국인도 채찍으로 맞을 수 있다는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조그만 고통조차도 참아내지 못하는 나약하고도 연약한 미국인에게서 채찍에 맞아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고, 이것이 장래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미국인의 모습인 것이다. 미국인의 군중심리에는 배타적이고 쇄국적인 징조가 이미 현저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몰락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군중심리에 나타나는 배타적이고도 쇄국적인 현상은 미국이 국제적인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정상을 벗어난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도 미국의 세력범위 내에서 부패정권은 출현하고 있다. 아이티에서 뒤발리에 일가족의 치욕적인 통치는 미국의 비호하에 50년 간 지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민혁명은 모두 미국이 실패한 정책에 대한 반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유럽에서 좌파계열의 세력들이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은 미국의 짧은 생각에서 비롯된 국제전략에 대한 최대의 징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전세계에서 반미를 외치는 소리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용감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미감정은 이제 정신적인 무장에 물질적인 무기까지 가세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외침 속에 전해지는 '미국, 너는 무엇에 기대어 세계의 중심 노릇을 하려고 하느냐? 너는 이제 틀려먹었다'라는 소리를 분명하게 듣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미국에 대하여 순수한 도의적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일종의 숙정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에 지구상에 나타나는 역사적 의의가 가장 깊은. 심각한 변화인 것이다. 미국에 대해 가장 자신있고 과감하게 'No'라고 외치는 국가는 일본일 것이다. 전후 일본인의 미 . 일 관계의 전면적인 재조정 작업은 실제로는 패전의식을 일소하는 과정이었다. 미야자와(전 수상이 미국 노동자의 자질에 대해 회의를 표시한 사실은 일본인의 주체의식에 대한 각성을 증명해 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으로부터 계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 적이 있다. 민족주의인 것은 예외없이 비열한 근성에서 출발한 것인가? 80년대 우리들이 대학캠퍼스에서 생활할 때 우리의 사고는 가장 자유분방한 시기였고 따라서 우리들은 말이나 글로 사정없이 우리 국민의 저열한 근성을 성토하였다.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종법관념(宗法觀念)으로부터 사회풍속에 이르기까지, 문학관으로부터 우리가 가진 부족한 경쟁의식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비평을 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에게는 현실적 책임이 없었기 때문에 비평은 어디까지나 비평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는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일본을 가벼운 존재로 보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세 번째 부흥은 맥아더 장군의 군사력과 군용물자가 가져다 준 것으로 알고 있고, 또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혐오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물욕에 대한 충동과 진리를 찾고자하는 길을 일본에서 찾는 대신 아메리카로 옴겻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민족의 문명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면 우리를 강탄하게하는 역사 발전의 인과관계가 내재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학자들이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동남아의 중국인이 이루어낸 신흥공업지역을 대중화(大中華) 경제문화권에 편입시키고 있음을 보고. 우리는 일본의 대화개신(大化改新), 명치유신(明治維新), 전후부흥(戰後부興)의 3대 혁신이 형태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중화민족의 찬란한 문명의 계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일본의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는 유가(儒家)의 혈통이 농후하게 배어있다. 일본의 건축, 정원, 다도(茶道), 검도, 우아하고 정감어린 예절 등은 중국 본토보다 더욱 중국의 고풍이 짙게 깔려 있다. 민감한 일본인은 그들의 민족문화가 중국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확신하고 그들의 문명을 '동양문명'이라는 명칭으로 중화문명과는 다른 선상에 두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에게서 나타나는 풍채와 자질구레한 재능에서는 대국과는 견줄 수 없는 촌티를 풍긴다. 일본사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그들의 상고 천황의 세계표(世系표)를 위조하든또 대화(大和)민족의 신화를 창작하느라 어떤 고심을 하든 우리에게 보이는 일본 민족문화의 그 내재적 핵심은 여전히 공자와 맹자의 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해외로 나가겠다[道不行, 承浮浮 於 海]'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공자의 이 말씀에서 허를찌르는 따가운 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명의 핵심을 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상과 직감적인 요소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였다. 우리의 응지를 펼칠 실마리를 '대중화 경제문화권'이라는 천재적 발상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국제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 대중화 경제문화권'은 시험수준의 검토단계에서 성숙한 이론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 이념이나 부정할 수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말하기 쉽고 협상하기 좋은 상대'였고 지나치게 공손한 태도를 취해 왔다. 이러한 모습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이고 지금이 바로 이러한 작태를 고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국적인 미를 바탕으로 우리는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 우리의 강산을 개조하여야 한다. 그리고 인민의 웅지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 초연한 풍모로부터 우리들이 세계 속으로 달려 나갈 힘을 축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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