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12. 못된 쪽으로 극히 뛰어난 미국 중앙정보국
현대의 이름 있는 어느 정치가는 분노한 군중들을 향해 '너희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공포를 떨쳐 버려야 한다'라고 경고한 일이 있다. 군중 의 공포는 저항으로 변하고. 이는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키는 혁명의 가장 좋은 요소가 되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미국의 중앙정보국과 그 전신인 전략정보국은 줄곧 세계여러 나라 정치세력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중앙정보국은 미제국주의가 군사적 침략과 경제적 약탈 외에도 국제적 음모를 자행할 때 반드시 사용하는 비장의 무기이다. 미국의 반공주의자로 유명한 전 참의원 맥카시도 인민 민주운동이 발발하자 이들 세력을 용공분자로 몰아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적이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국의 정부는 점차적으로 문민화하였고 이에 따라 친미파 인사나 중앙정보국 요원에 대한 처벌은 예전처럼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후로 죄악을 저지른 중앙정보국 요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보국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침투를 단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다. 레이건시절에는 중국의 개방 이후 최고조에 이르는 대중국 간첩활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중앙정보국이 고용한 동아시아문제 전문가 존 길후리[-중국 이름이 마치 '暖舊胡來(에이,함부로 날뛴다)'와 비슷한 음이다-는 중국에 스파이를 보내거나 중국에서 소수의 불량분자들을 모아 간첩활동을 하게 하는 공작을 벌여 중화인민공화국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였다. 내전 시기에는 대포, 폭격기, 탱크, 기관총을 보내 우리 세대들을 살해 했으나 오늘날 중앙정보국의 수법은 그때와는 달리 위장술. 전화도청. 야시경, 적외선 신호장치. 해상보트 등둥으로 그 장비가 다양해졌다. 길후리 씨의 묘수로 미국은 중국대륙에 첫 번째로 정보망을 구축하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막강한 국가기관에서도 지금까지 이들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다. 1986년 {뉴욕타임즈}의 베이징주재 수석기자 존 바인즈는 四川)성에서 중국 군부대의 사진을 몰래 찍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우리정부는 바인즈의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다루면서도 최대의 아량과 관용을 베풀었다.다른 나라였다면 관계당국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간첩죄'를적용하여 여지없이 사형에 처해 버렸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도 난처했을 것이다. 한 달 후 별 볼 일 없는 중앙정보국의 루슨쉬[廬序] 순서에 따라 법망에 걸린다는 뜻이니 참좋은 이름이다-가 중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어 12년형을 선고받자 미국무성 대변인이 이 사건과의 관련성을 극구 부인함으로써 그들의 난처함을 드러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는 중앙정보국이 저지르고 있는 악랄한 행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전 어느 세계적 정치지도자는 미국의 중앙정보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은 거대한 정보조직이 아닌 막강한 정치조직이며 미국이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정치적 계략을 수행하는 정치, 경제, 문화, 정탐 기능의 종합체로, 미국의 '지하 국무원'이다.' 미국은 50년대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서베를린의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문화자유연맹'을 탄생시켰다. 이 연맹은 이후 10년 이내에 33개 국가에 지부를 두고 몇십 종류의 잡지를 창간하였으며 영향력 있는 세계적 대형예술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 연맹의 입장은 아주 분명하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포츠난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노동운동이 동양의 어느 국가에서 발생하면 이 조직은 즉각 반응을 보여 야단법석을 떨며 항의하는 동시에 다른 편에는 성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에게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비밀리에 돈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뉴욕타임즈}가 밝혀 내었다. {뉴욕타임즈}가 그 흑막을 폭로할 때는 마침 미국이 월남전에 발목이 묶여 민심을 잃고 있을 때라 중앙정보국이 곳곳에서 행한 추악한 짓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중앙정보국의 자금지원으로 전세계에서 활동을 하던 문화자유동맹은 이 사건이 폭로된 후 해산할 수 밖에 없었다. 문화자유동맹의 추문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중앙정보국의 침투방식은 극히 뛰어나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성공한 '혁명' 뒤에는 반드시 중앙정보국의 특수공작이 있었다. 중앙정보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깔려 있는 그들의 실체를 숨겨왔다. 무성권총, 도청기, 마이크로필름 같은 것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비정보공작' 즉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공격을 우선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적으로 반미국가들이 왜 그 정적을 '미국 중앙정보국 대리인'으로 지목하여 제거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80년대 대학캠퍼스에서 중국 학생의 성생활을 지도한다고 날뛰었던 소위 '하느님의 아들' 사건 역시 중앙정보국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런 것까지도 중앙정보국의 공작업무 중의 하나인 것이다.
'징소리 나는 곳에는 반드시 있는 놈'이라는 중국의 속담처럼 중앙정보국이 개입하지 않는 일은 없다. 예술활동에 찬조하는 것 역시 중앙정보국이 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포드재단은 예술활동의 지원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포드재단의 자금은 대부분 이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후원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하나 기실은 거의 모두 중앙정보국에서 제공한 것이고, 둘째 이 재단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예술가는 주로 미국인으로, 예를 들면 행동파 화가 바로크같은 인물이다. 중앙정보국은 이런 예술가에게 뒷돈을 대주어 미국을 표방하는 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치적인 유명인들을 통해 다른 나라의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속셈인 것이다. 우흥다사건에 직접 개입하고 [마오쩌똥 주치의 회고록]이 출판되도록 획책한 것 등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중국을 비방하려는 행동의 일부이다. 우흥다의 [노동개조 수용소]가 미국에서 출판된 것은 미중앙정보국의 자금원조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재직하던 '노동개조재단'은 바로 미중앙정보국의 비밀조직 중 하나이다. 우씨는 미국의 CBS와 영국의 BBC 양대 방송국을 위해 중국의 감옥과 관련된 악의성 짙은 특별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중국에서의 정탐계획 등은 모두 중앙정보국의 스파이들이 직접 참여하고 수립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해 벌이고 있는 이른바 '인권공격'은 바로 이와 같은 스파이 활동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1994년 미국의 출판사 랜덤 하우스(Random Houe) 와 대만의 쓰빠오{時報) 문화출판기업유한공사(文化出版企業어限公司)는 [마오쩌똥 주치의 회고록]의 영문판과 중문판을 각각 발행하였다. 출판사는 이 책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심지어는 '이전에 없던 가장 귀중한 원시 사료이다' '이 책이 세상에 알려지면 마오쩌똥 개인 전기뿐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사의 관련저자들이 앞으로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 허위 과장선전을 하였다. 아예 '관련저작들이 앞으로 철저하게 고쳐 써질 것이다'라고 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작가 리쯔수이(의 천박한 글이 드러내고 있는 혐오스러운 불성실과 허풍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조차도 없겠으나, 이나마도 리쯔수이의 경력이나 능력으로 보아 절대 독자적으로 이러한 책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숨겨진 몇몇 대필자는 리쯔수이로 위장하여 이 책의 기획과 편집에서부터 상세한 내용에 이르기까지의 포장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이 책이 마오쩌똥의 독재 아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백성들과 살아남기 위해 양심과 이상을 희생한 선량한 지식인들의 역사가 되길 만천하에 호소하는 바이다'와 같은 말이다.이에 대해 사정을 잘아는 사람은 그 의식이나 문장 스타일로 보아 절대 리쯔수이가 쓴 것일 수 없으며 장기간 대만의 군에서 대공선전을 맡았던 사람이 대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이런 선전품을 근 10년 동안 물색하였고 그 목표가 황립되자 그들이 임시로 고용한 사람들을 직접 이 작업에 투입시켜 이 책의 저작에서부터 출판.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하게 했던 것이다. 중앙정보국은 미국의 국제전략상 가장 첨예하고 위험한 업무를 도맡아 왔으며, 표면적으로는 첩보전의 형식을 띠지 않고 해외로 침투하고자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독립의 조류를 정신적으로 암살하고 있으며, 미국 이외의 국가가 강성해 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미국 국민과 어떤 교류이든 하고자 할 때는 이미 중앙정보국이 바로 우리 옆에 있게 된 것이고, 우리가 친구에게 미국 제품을 추천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이미 중앙정보국의 요원이 된 것이다. 나는 미국을 향해 소리치고 싶다. '어디 두고 보자! 너희는 함부로 날뛰지 말아라. 앞으로 우리는 너희들의 음해전략에 대해 냉혹한 인민의 법을 집행할 것이다'라고." 손자(孫子)도 '적의 음모를 깨는 것이 상책이고,무력사용은 차선책이다[上튜伐謀,其次伐兵]'라고 말했다.타국의 안전을 말살하기 위해 미국은 한층 더 중앙정보국이라는 '이기'에 의존하고 있다. 칠레의 전 대통령 알랜드를 암살하거나 도미니카 민주정부의 기세를 꺾어놓는 등 중앙정보국은 미국 정부가 공개적인 방법으로는 이룩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 국가가 공리적으로는 승리할 수 없을 때 '무력사용은 차선책'이라는 식의 피비린내 나는 음해전략이 가장 먼저 선택될 것이다. 미국은 공리적으로 나약하면서도 음모를 획책하는 데는 무척 발달하였다. 이는 미국의 국가적 계략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부록:땅리쯔(方勵之)부부의 망명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음모 - 요스키 나가이(일본)
미국 외교가 표방하고 있는 것은 정의 편에 서서 칼을 뽑아 도와준다는 것이나 그 배후에는 항상 억지와 이기적인 전략방침이 숨어 있다. 1989년 6월 天安門)사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꽝리쯔 부부의 망명사건도 결국 미국 정부의 음모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중국 과학기술대학 부총장이었고 ' 중국의 사하로프'로 불리는 천체물리학자 광리쯔와 그 부인인 베이징 시 인민대표 리쑤센(李淑)은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다음날인 1989년 6월 5일 주중 미국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였고 1년 후인 1990년 6월 23일 미 . 중 양국의 외교교섭을거쳐 잠시 영국으로 갔었다. 짱리쯔는 1986년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선이래로 민주인사들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그 동안의 경과를 살펴보면, 천안문사태 이후 이들 부부가 중국의 민주화에 절망하고 자신들의 신변안전에 위협을 느껴 미국대사관으로 도망간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땅리쯔가 취한 시기적절한 행동을 보고 미국 중앙정보국이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고 1989년 2월 26일 발생한 한 사건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날 중국을 방문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만찬회를 주최하였다. 초청된 인물은 주로 중국 정부의 고위지도자들이었고 주빈은 국가주석 양쌍쿤(楊尙昆)이었다. 펑리쯔 부부도 이 만찬에 초대를 받았으나 중국 정부의 제지로 만찬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당시 미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전 외교부장이며 부총리인 우쉬에첸(릇學謙)은 후일 중국을 방문한 어느 일본 요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본래 우리는 평화공존의 원칙에 따라 대미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있지만 미국의 이런 적나라한 노골적 내정간섭 행위는 절대 묵인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유독 꽝리쯔 부부의 초대장만은 중국측에 전해 주지 않고 본인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주빈이 환영하지 않을 인물을 몰래 초대하는 것은 매우 실례가 되는 행위입니다, 친구에게 이런 행동을 하다니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중국 정부를 극구 반대하고 있는 광리쯔를 한 마디의 사전 언질도 없이 국가의 외교적 연회의 중요한 자리에 앉게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실례가 아닐 수 없으며, 이 일 자체가 이미 내정간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로서도 광리쯔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리 만무하므로, 잠시 소홀하여 이런 중요한 외교적 행사에 실수를 범했을 리는 절대 없는 것이다. 이는 분명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로 조작한 행동인 것이다. 천안문사태 이후 펑리쯔 부부가 미리 계엄을 감지하고 미국대사관으로 도망간 것 역시 시간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다른 민주운동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되는 마당에 그만 재빠르게 미국대사관으로 달려가 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이 사실은 미국이 짱리쯔 부부를 사전에 인도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광리쯔사건은 후일 미국의 인권외교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연출한 조작극이라고 의심하는 시각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인권존중을 최우선으로 하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이 인권을 무시하고 민주화운동에 앞장 선 학자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중국을 그냥 둘리 없으므로, 이는 펑리쯔 부부를 받아들이고 경제적 제재를 가해 민주화를 강요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벌인 조작극이 아니겠는가? 이런 추측은 절대 허구이거나 망상일 수 없다.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된 일련의 활동과 후일 미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자연히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펑리쯔 부부가 출국할 수 있도록 묵인한 중국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중국 정부는 부시에게 어느 정도의 명분을 주고 장차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이는 오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외교라는 것이다.만약 일본이 표면에 드러난 현상만을 좇아 유유자적하다가는 일본의 장래도 그리 밝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에 옐친과 같은 인물이 나타날 수 있을지. 또 땅리쯔 부부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의 문제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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