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1장 중국인의 감정과 중국의 선택
1. 내가 혐오하는 중국인
베이징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왕 아무개라는 내 친구는 북경에 온 각국의 외국인들과 교제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외국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후 이들로부터 들은 각국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곤 한다. 사귄 지 오래된 마이크라는 영국친구에 대해서 왕씨는 종종 우리들에게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마이크 이놈이 어제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께웠지 뭔가.그리고는 코펜하겐에서 술을 많이 마셨고, 비행기를 납치해서 나를 보러 오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더군. 하하하.'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특히 많은데 '마이크가 일본에서 비구니와 좋아지낸다는군 "이 셔츠 좀 보게, 마이크가 보낸 것인데 이 문양이 바로 옥스포드대학 마크야' 등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의 허풍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나도 그 마이크란 인물을 잘 안다. 한 번은 내가 왕씨의 집에 책을 빌리러 갔을 때 마이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통을 잡고는 아주 흥분해서 큰소리로 '어, 마이크, 어, 마이크'를 외치곤 하였다. 그런 후 옥스퍼드식임을 과장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통화가 끝난 뒤 또다시 그의 수다를 듣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무 말 없이 나와 버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끊임없이 몸서리를 치면서 생각하였다. 저 친구는 대체 어찌된 것일까? 1995년 베이징의 후이챠오(惠儒)호텔에서, 생긴 것은 보잘 것 없으나 시를 꽤 쓴다는 여자 시인 한 명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혼자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어댔다. '저는 5월에 캐나다에서 돌아왔는데, 미국에서 먼저 3개월을 지내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갔었어요. 아, 나는 이전에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과 그렇게 좋은 날씨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어요. 마치 신이 그들만 편애하는 것 같아요.' 마치 풍자소설을 쓰는 것처럼 과장되게 들리겠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그녀의 넋 나간 표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싶지는 않으나,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느낌을 그곳의 자연과 힘껏 일치시키려는 것 같았다. 후에 나는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에도 어느 지방에 폭설이 내렸다든지 혹은 부랑아들 몇 명이 얼어죽었다는 등의 뉴스가 Tv에 자주 나오지 않았던가? 올림픽을 개최하는 애틀랜타는 여름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 시인은 아주 좋은 계절에 미국에 갔었단 말인가? 중국에도 분명히 이런 좋은 계절은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간단히 '신이 미국인을 편애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인들 중에는 간혹 자신의 혈통을 바꾸고 싶어 안달하고, 자기가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길 바라는 사람이 분명히 있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인종주의 옹호자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멸시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 셈이다. 몇 년 전에 서양의 삼류 가수 하나가 쌍하이에 왔을때 그 열기는 대단하였다. 수많은 아가씨들이 이 가수를 보려고 몰려 들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당시 어느 신문에는 '두 명의 아가씨가 이 가수의 포스터 밑에서 그의 눈이 회색인지 푸른색인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토막기사가 실렸었다. 이런 현상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치명적인 병폐라 할 수 있을 것이 다.
이런 부류의 중국인이 가지고 있는 병에는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첫째 서양인 앞에서는 무조건 'OK'라고 하면서 (宋强) 이 말한 것처 럼 노예가 되길 스스로 바라며, 노예가 된 뒤에도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증상이고, 둘째 중국인 앞에서는 자기가 서양인인 것처럼 갑자기 변해 중국어를 더듬거리며 하는 증상이다. 이런 부류는, 중국어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항상 외국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것이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다. 3월 7일 나는 베이징 지엔구오먼(建國門) 밖에 있는 무역회관에서 외국 자동차회사 북경대표와 광고업무에 관한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나와 상담한 중국인 사원은 삼십 세가 되지 않은 젊은이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계속 영어로 지껄여 나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중국어를 할 줄 아는지 물어 보았더니 그는 '사장님이 회사 내에서는 반드시 영어를 쓰도록 요구하셨고 저희들도 습관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모국어로 상담하자고 하여 겨우 중국어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영어단어를 중국어 사이에 넣어 말하였다. 예를 들면 그는 부하직원에게 paper 한 장 갖다주게'라는 식이었다. 우리의 위대한 세계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종이가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신문지상에는 가끔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지키는 모습들을 묘사한 기사가 실리곤 한다. 특히 프랑스어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지나가는 노인에게 길을 묻게 되면 영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영어로 길을 물으면 노인은 노려 보고는 그냥 지나가버린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인의 신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문화는 서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느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정복하고 경멸할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를 인식해야한다. 자신의 문화는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소설 한 편을 읽었는데 자세한 줄거리는 잊었지만 울분을 터트리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어느 기업의 사장이 자신이 총애하는 부하직원 한 명을 외국에 파견해 훈련시킨 후 중요 업무를 담당하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직원을 양식집에 데리고 가 포크와 나이프 쓰는 법과 스프 먹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던 중 그 직원이 숟가락으로 커피를 떠마시자 사장은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제지하면서 '틀렸어. 수저는 받침 위에 놓아 두고, 잔을 들고 마셔야지 이렇게 마시면 안 된다는 걸 반드시 명심하게!'라고 하는 것이다. 서양인이 중국에 와서 젓가락을 사용할 때는 어떠한가? 서양인이 젓가락을 쓰는 모습은 당연히 가지각색이다. 그들은 이국적인 정취를 마음껏 즐기면서 크게 웃고 떠들어 대고 심지어는 젓가락을 그릇 속에 집어넣어 음식을 휘젓기까지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절대 그들을 비웃는 법이 없다, 외국인들이 젓가락을 서툴게 사용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면서 왜 우리들이 외국에 나가면 포크와 나이프를 숙련되게 써야만 하는 건가? 우리만 그들이 먹는 법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인가? 포크와 나이프는 문명적인 산물이고 젓가락은 회귀한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는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명으로 따지자면 포크와 나이프야말로 가장 낙후된 물건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이 철기사용법을 알게 된 후 칼을 이용해 사냥한 짐승을 자르고 익혀 포크로 먹었다. 서양인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그대로 사용하였을 뿐 이를 진보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젓가락의 경우는 다르다. 젓가락은 고도로 숙련된 손의 기술을 요하는 것으로 예술성과 함께 평화에 대한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요즈음 국내의 호텔들은 우리 국민들을 씁쓸하게 만들고 있다.호텔에 전화를 걸면 들려 오는 첫 마디는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이고, '안녕하세요, OO호텔입니다'라고 중국어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어떤 경우는 완전히 외국화되어 버려 외국의 호텔로 전화를 잘못했나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이다. 프런트에서 값을 물으면 하루에 몇'달러'라고 알려주고 방 안에 있는 룸서비스 차림표는 온통 영어 일색에 중국어는 괄호 안에 들어가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호텔에 들어서면 마치 외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국제적 대도시라는 의미를 이런 식 로 찾는다는 것은 너무 편협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곳곳에 외국인의 편의를 생각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러한 것이 바로 자기 동포에게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화란 말인가? 이런 것은 오히려 우리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상식 밖의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혈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 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위기가 만연된 후 돌아올 무서운 결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외국에 갔다오면 재빠르게 잘 팔릴 책들을 출간한다. 예를 들어 무슨 [뉴욕의 베이징인[北京人在級約] [뉴욕 하늘의 나이팅게일 [맨하탄의 중국여인[] [외국여인을 아내로 삼다[姿個外國女人倣老姿] 등과 같은 책들이다. 이런 류의 책에 나타난 공통 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모두 정신적 균형을 잃어 현실생활에서는 실패하고 자신에 의해 조종되기 쉬운 돈과 성, 호화주택과 명성에 약간의 음울한 환경을 보텐 보상수단을 허구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책을 쓴 작가로서는 미국이니 호주니 하는 외국에 갔다가 왔다는 명성까지 붙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다시 내 친구 왕씨에 대해 말하겠다. 하루는 그가 술에 잔뜩 취해 대성 통곡을 하면서 '중국은 정말 수준 낮고 단조로워! 이곳은 오로지 번식만있고 사랑은 없는 곳이`=. 마이크의 그런 사랑은 중국에서는 어디서고 찾아볼 수가 없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왕씨가 몇 번 실연당했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조국에 대해 이유 없는 화풀이를 할 수는 없는것이다. 왕씨는 태국에서 있었던 마이크의 연애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직업도 없이 떠도는 영국인 마이크가 -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핵물리학자라고 한다 태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는 태국이야말로 정말 남성, 특히 부유한 남성들의 낙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동방의 소녀들과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얼마 뒤 싫증을 느끼고 - 체력의 한계를 느낀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 돌아갈 비행기표를 샀다. 방콕을 떠나기 전날 밤 그는 무료함을 느껴 혼자 강가의 한 자그마한 카페에 들어갔다. 한 소녀가 커피를 들고 왔을 때 그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이제까지 그처럼 청순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으며 그녀에게 한 마디의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카페를 나오기 직전 그는 큰 결심을 하고 메모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마이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곧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반드시 다시 이곳에 와 당신을 데려가겠습니다.' 그는 쪽지를 그녀의 손에 쥐어 준 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일 년 뒤 그는 태국으로 다시 와 그 카페가 있던 거리를 찾아갔다. 그러나 카페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호텔 하나가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보고 그는 거의 기절할 뻔 하였다. 그는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술을 퍼마셨다. 이때 누군 가 그의 눈을 가리며 천사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이크'라고 속삭였다. 마이크는 뒤돌아 보고 놀라 큰소리를 질렀다. 바로 카페에서 만났던 그 여인이었다. 그 후 둘은 얼싸안고 호텔로 갔고....... 마이크는 끝내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였고 둘은 중국으로 왔다. 이 마이크 선생은 분명 플레이보이에 속한다. 그는 제3세계의 거리나 공원, 호텔 등을 전전하면서 자기 눈에 조금 예쁘게 보이는 아가씨를 만나면 일부러 어색해 하면서 길을 묻곤 한다고 하며. 외국 여행을 할 때는 짐 속에 늘 열 다스나 되는 콘돔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그의 사랑은 타액처럼 끊임없이 분비된다. 그가 우리의 자매들을 유린할 때 우리는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마이크의 사랑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질식할 것만 같다. 이런 부류의 중국인, 이런 서양인의 노예들, 그리고 그 노예들의 얼굴과 행위에 침을 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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