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3. 인간과 인간
아랍인의 기질
아랍인의 기질은 일반적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이와 같은 기질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아랍인이 전형적인 남성위주의 사회인데다 아랍어에 대한 긍지, 그리고 이슬람 시대의 영광을 자기의식의 근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랍인의 기질은 이슬람과 결부되어 있어 이슬람이 무슬림의 인간관과 우주관을 대변해 준다. 자신이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외국인과 첫 물음이 대개는 인사 후에 ‘무슬림이냐’ 다짜고짜 묻는다. 그것은 동질집단에 속한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냐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아랍인들은 이슬람을 아랍과 동일시하여 아랍 민족주의와 혼동한다. 이슬람은 과거 속에 사는 종교이므로 과거의 영광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이슬람 초기로 되돌아가자는 의식이 깔려 있다. 더구나 19세기 말부터 아랍인들이 서구에 의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건국되면서 서구 세계에 대한 반발은 더욱 컸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하다. 아랍인들은 비 무슬림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며, 때로는 하찮은 일까지 강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아랍인들은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아옴으로써 ‘적대감’과 ‘복종’이라는 상반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스스로 독립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확신이 서지 않으면 자신을 굽혀 복종하고 어느 정도 상대가 된다고 느끼면 자만, 이기주의, 자기주의를 고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부터의 작은 비난이라도 굉장한 모욕으로 여긴다. 또, 아랍인들의 개인적인 불안감은 그들의 성격을 친절과 의심이라는 양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이들은 과장된 친절로서 자신을 지키려 하므로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나 무슬림은 이교도, 특히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친절을 보이지 않는다. 순니파들은 이란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시아파들을 이단시하며 이들을 경계한다. 아랍인은 일반적으로 의심, 공포, 불안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는다. 의심은 개인이 자라온 과정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아랍인의 역사적 소산이기도 하다. 특히 서구인에 대한 의심이 많아 그들이 곧 지배해 버리지 않을까 하여 마음놓고 일하기 어렵다. 공포와 불안정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좋은 일 하려다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지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좋은 일에 가담하려 하지 않는다. 아랍사회에서 단 한번의 실수나 실패는 가문의 큰 수치로 여긴다. 베드윈 생활에서부터 오랫동안 배타적인 생활을 해 온 아랍인들은 아집과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상거래에 있어서 설사 자기에게 손해가 있을 것 같아도 끝까지 거래해 보려는 아집을 보인다. 반대로 이익이 예상되지만 처음 거래에서 탐탁치 않았을 경우에는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에 자존심을 상하게 되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그를 비난하는데 그것을 본인이 알게 되면 자존심에 심한 손상을 입혔다고 생각하고 그를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전통을 인정해 주면 감사함은 물론 적극 도와준다.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는 쉽게 사귀고 친구가 되지만, 남에게 동정을 바라지 않으며 자부심도 강하다. 아랍인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행동이 느리다. 물론 요즈음 세상이 변하여 서두르는 경우도 있으나 옆에서 서두른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수치감을 느껴 이곳저곳에서 자신을 흉본 사람을 공공연히 비난한다. 아랍의 여성들은 환성, 울음, 굉장히 큰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아랍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며 찻집에 모여 오랜 대화를 즐긴다. 이들은 매사 바쁠 것 없다고 하면서 느긋하게 생활을 한다. 사생활의 공개를 싫어하므로 남의 비밀도 끝까지 지켜준다. 가끔 심한 농담을 하여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의견이 부합되면 절친하게 대해준다. 그러나 대화에서 이슬람이 나오면 무조건 이슬람이 최고라는 논리를 펴서 그 분위기가 썩 좋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슬림 아랍전통에서 ‘불신자 영역이 하나의 국가(al-kufra millatun wahidan)'라는 표현이 있다. 즉, 모든 무슬림(아랍인 포함)은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모든 불신자들은 또다른 국가를 형성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을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영역)이라 하고, 비무슬림이 지배하는 지역을 다르 알 하릅(전쟁의 영역)이라 한다. 다르 알 하릅은 지하드(聖戰)을 해서라도 정복되어야 할 지역이다. 1945년 11월 2일 이집트 지도자가 발포어 선언 기념일에 데모를 할 것을 요구하자 데모대는 반유대인 폭동으로 변하여 카톨릭, 아르메니아 교회,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까지 공격하였던 적이 있다. 이제 아랍사회는 폭력이 거의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특히 하마스, 히즈불라 지하드 등의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아랍세계에서 어떠한 오명이나 치욕을 받을때 곧장 자제심을 잃거나 감정의 폭발로 치닫는 경우는 많다. 아랍인의 인성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자제는 기대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인내심을 보이기는 하는데, 그것은 사막이라는 자연환경의 탓도 있으나 혹자는 종교적인 원인에도 있다고 한다. 무함마드 언행록에 화가 날 때는 불을 끄듯이 세수를 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화가 날 때 서 있지 말고 앉아 있으라는 것에서 상당한 자제심을 보여주는 격언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제심을 잃는 횟수가 잦다는 것인데 일단 자제심을 잃으면 성난 파도처럼 짧은 시간에 인격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아랍인의 기질을 자연환경과 관련지어 본다면 사막에서의 와디(비가 올때만 생기는 골짜기)와 바위가 많고 좁은 협곡을 들겠다. 1년에 대부분 메마르고 죽어있던 사막에 비가 오면 갑자기 급류로 바뀌고 큰 바위를 굴리며 몰살로 인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그리고 언제 있었냐는 듯이 몇시간 후에 재빨리 가라앉아 버린다. 아랍인들이 갑자기 화를 내다가도 금방 조용해지는 데에서 사막의 와디를 생각나게 한다.
아랍인들은 화가 날때는 소리를 높인다. 물론 시장에서 물건을 팔때에도 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감정의 상처를 받았을 때는 고통을 말과 소리와 제스처를 써서 표현한다. 불평을 털어놓을 때에도 투덜거리며 그가 당한 것을 표현한다. 죽음이 있을때 아랍인 문화는 감정의 폭발을 허용한다. 감정과 슬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여성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남성들은 비탄에 젖는다. 강한 충격이 왔을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남성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노에 대해서 아랍인들은 매우 민감하다. 그는 쉽게 불끈 성을 내고 격분을 삼가지 않는다. 일단 분노가 시작되면 격노는 한계가 없다. 가정내에서의 언쟁은 매일 일어난다. 시리아, 레바논 속담에 “끼니 때마다 싸움이오, 한 술 뜰때마다 걱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특히 군중이 모인 곳에서는 억눌렸던 감정의 고삐가 풀리기 쉽다. 고셔(Gauthier)는 아랍인의 감정과 생각을 한마디로 “극단의 공존”이라 표현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요리, 의복, 언어, 건축, 장식, 음악, 문학, 시, 역사 등의 서양학문이 공존하고 무정부 유목사회에서는 독재가정이 공존하였다. 더구나 독재정부와 민주적인 도덕관이 하나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 무슬림 사회의 특징이다. 레바논의 사회학자 하마디는 ‘아랍인의 기질’에서 아랍인들은 사회적 감각이나 책임이 결핍된 채 자존심을 발동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정부에 대해 반항적이고 협조정신이 부족하여 상호불신의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협동은 아직도 가족적 혈연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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