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란의 진수로 표현되는 개경장은 무슬림이 하루 기도생활 중에서 최소한 17회 이상 암송하는 장이다. 예배시 이 장을 빠뜨리면 예배는 무효가 된다. 이 개경장이 쿠란의 첫 장이 된 것은 무함마드가 생존 중에 이 장을 가장 중요시했으며, 무함마드의 메카 기도 중에 이 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1장 1.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2. 우주의 주인이신 알라께 찬미한다. 3. 자비롭고 자애로우며 4.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는 5. 당신에게만 우리가 경비하며 도움을 구하나니 6.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7. 당신께서 은총을 내려주신 사람들과 진노를 받은 사람 그리고 길 잃은 사람들의 길
진노를 받은 사람들이나 길 잃은 사람들이 아닌 앞 4절에서 ‘우리가 경배하며’에서 경배한다(나으부드)라는 말은 노예 또는 종(압드)이라는 낱말과 어근이 같다. 무슬림은 알라의 종이나 노예가 됨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무슬림이 알라에게 속박된 것과는 달리 기독교의 주기도문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일컫는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그의 자녀와의 관계로 규정한다. 예수는 그가 하나님 아버지와 누렸던 관계를 그의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갖도록 초대한 것이다. 5절에 또 ‘도움을 구하나니’의 어근에서는 무슬림이 알라에게서 구하는 모든 것, 즉 도움, 원조, 구원, 후원등의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주기도에서도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한다. 개경장 2절에 ‘알라께 찬미’와 5절에 ‘우리가 경배하며’는 무슬림의 찬양과 경배의 표현이다. 주기도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계시해 준 모든 것에 찬양했으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왕으로 오신 그의 권능을 받아 들이고 그의 뜻에 순종한다. 이처럼 경배하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알라와 하나님을 인시하는 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자연히 경배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맹목적이거나 수동적인 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기도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 나라와 권세가...' 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의 주권을 지적한 반면에, 개경장에는 2절에 '우주의 주인' 다시 말해서, 온 세상의 주인이며 지구의 모든 존재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성경만이 갖는 특징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재림 사상이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저가 임하시되 땅을 재판하려 오시리라...(시편 96:10^36^13)." 성경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사실을 단순히 기억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어떻게 통치하실 것인가를 말해 준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그리고 공동체(교회)를 통해 왕의 통치가 실현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개경장의 6절에서 '올바른 길(곧은 길)로 인도해 주소서!'는 시편기자가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서 곧게 하소서!"(시편 5:8)를 떠올리게 한다. 무슬림에게 올바른 길은 이슬람의 길, 즉 쿠란과 예언자 무함마드 삶에 계시된 삶의 방식이 된다. 그들의 올바른 길은 이슬람 공동체의 일원으로 알라의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의 길이다. 7절에 '은총을 내려주신 사람들과 진노를 받은 사람 그리고 길 잃은 사람들의 길'은 무엇인가? '신의 노여움을 받은 사람'은 유대교 인이고, '길 잃은 자'는 기독교인인가? 개경장이 공중기도에 언제 도입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시기는 그가 메디나로 이주(622년)하기 전이었다. 그래서 무함마드 초기에는 이런 구절이 절대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 때까지는 이들로부터 반대나 적대감이 없었던 것이다. 이슬람에서 인간은 무지하고 약하므로 진리를 배워야 한다. 더구나 인간은 약하므로 이슬람법을 따르도록 가르치고 권고 받고 경고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곧은 길로 인도함'은 늘 우리에게 유혹과 시험이 있으므로 우리에게 악의 존재를 일깨워 주기 위해 "시험에 들지 않게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한다. 주기도에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고백을 하지만, 개경장에는 죄에 대한 고백이 분명히 없다. 개경장 4절에는 심판의 날의 주인인 알라의 권한을 기억하고 자비와 동정(1절, 3절)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심판의 날에 그들의 죄를 보고할 때 알라가 자비를 베풀어 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확신은 없다. 무슬림들은 기도가 끝날 때 왼쪽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사하고 나란히 서서 기도하는 것이 수평적 관계를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쿠란이 자비와 동정에 관해 자주 말하지만 우리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무슬림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우리가 무슬림을 이웃으로 사랑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쿠란에서 무슬림의 적은 유대인이었다. 무슬림이 애정을 갖는 자는 기독교인이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수라5:82). 무함마드는 당시 기독교인에서 감동을 받은 것 같다. 12세기 이후에 가서야 이슬람은 책에서 기독교를 공공연히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쿠란에서는 기독교인에 대해 긍정적이고 동정적인 쿠란구절, 기독교인에 대한 논쟁과 비난을 일삼은 구절, 그리고 기독교인에 대해 적대적인 구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