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2. 문화와 종교의 매개체
아랍어
지금까지 살펴본 것같이 아랍어는 풍부한 문학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세계의 주요 언어 중에 하나이다. 다른 어느 언어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발음, 그리고 표준어의 기준이 되는 쿠란과의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 명실공히 언어와 종교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언어라 할 수 있다. 아랍어는 문화와 종교의 매개체인 것이다. 중세 이후 아랍어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함께 세계의 주요 언어, 즉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러시아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금은 24개 아랍국가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지위로 인해 아랍어 사용자의 수와 아랍 무슬림 사회의 발달에 중대한 역할도 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 자리한 코모로 군도가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겠다고 공표했고, 오랜 전부터 지부티는 아랍어를 써 오고 있다. 현재 아랍사회가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격변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쿠란의 아랍어에 근거한 고전 아랍어의 위상을 높이려고 모든 아랍국가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랍어는 단순히 이슬람의 부수물이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 특히 아프리카에서 괄목할 만하게 급성장함으로써 아랍어 사용지역에서의 문화와 국가부흥의 매개체로 쓰이고 있다. 오늘날 아랍어는 중동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1억 8천만 명이 쓰고 있는데, 즉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수단 등의 북아프리카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오만,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등의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 그리고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이른바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국어로 쓰인다. 심지어 이스라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 250만 명의 모국어이기도 하다. 그 밖의 이슬람 국가에서 12억 이상의 무슬림들이 쓰는 예배언어이다. 무슬림들은 적어도 예배시에 쿠란 본문을 아랍어로 암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필자가 이라크에 갔더니, 이라크의 시리얀 옛 교회에서도 젊은이들이 아랍어를 주로 쓰고 있었고, 단지 나이든 신자들만 시리얀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 시리얀어는 곧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랍어는 고대, 중세, 현대에 이르는 여러 시기와 장송에서 수많은 언어로부터 많은 어휘를 차용했고 동서양의 여러 언어에도 공헌을 하였는데, 이들 언어에서도 아랍어 어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예로,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커피, 슈거, 알코올, 시럽 등의 낱말이 아랍어에서 왔고, 아랍어 어휘는 페르시아어, 우르두어, 터키어, 소말리아어, 스페인어 등에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아랍어는 아카드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인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등의 여향을 받았다. 가령 페르시아어는 아랍어 글자체를 그대로 쓰면서 30퍼센트 이상의 아랍어 어휘를 담고 있고, 터키어는 1920년대 언어개혁을 통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내쫓으려고 라틴어를 도입하였다. 이 밖에 지중해의 몰타섬의 언어인 몰타어는 라틴어를 쓰지만, 이곳의 언어는 아랍어와 이탈리아어가 혼합된 것이다. 그리고 아랍어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영어에 쓰이는 낱말 중에서 흔히 알고 있는 영(ciper), 대수학(algebra), 병기고(arsenal), 해군대장(admiral), 공원의 정자(alcove), 알칼리(alkali), 알코올(aicohol), 레몬(lemon), 설탕(sugar), 커피(coffee), 쌀(rice) 등은 아랍어에 어원을 두었거나 아랍어를 매개체로 하여 서구에 전달된 단어들이다. 아랍어는 7세기 이후 아랍 정복자들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때 괄목할 만하게 발전을 거듭하여, 동으로는 인더스강까지, 서로는 대서양, 남으로 아라비아해, 그리고 북으로는 터키 국경과 코카서스 지방에 이르렀다.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지역에서 출발한 정복자들은 이슬람이 가는 곳에 아랍어도 함께 갔다. 아랍어는 대규모 문학적 유산을 지닌 기존의 언어들과 경쟁하며 새로운 환경 속으로 파고들었다. 원래 유목민이나 반유목민의 방언이었던 아랍어가 적응과 조정의 시기를 거치면서 8세기 초에는 제국의 언어로 부상하였고, 이제는 아랍인들뿐만 아니라 정복된 지역의 사람들도 그들의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특권을 가진 아랍어는 아랍제국이 중대한 정치적 혼란과 지방분권에 직면해 있었을 때에도 커다란 동요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역설적이지만, 아랍어는 이러한 분열기를 통해 활력을 잃지 않고 황금기를 맞았으며, 제국이 분열되었을 때에는 아랍어와 이슬람이 점증하는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 형제애 유대를 강화시켜 주었다. 이와 같이 아랍어는 무슬림 세계에서 문화적인 통일과 계속성을 유지시키는데 주된 역할을 해왔고, 아랍, 무슬림들 국가의 흥망성쇠와 그 운명을 함께 하였다. 그리하여 역사를 거치면서 아랍, 무슬림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쇠퇴기도 맞게 되었다. 쇠퇴기에는 아랍어에 대한 강한 애착이 약화되었고, 아랍, 무슬림의 마음 속에도 아랍어의 이미지는 조금씩 약해져 갔다. 그러면서 아랍, 무슬림들은 언어로서 아랍어가 갖고 있는 위치와 기원, 아랍어의 우수성, 그리고 종교와 학술에 쓰이는 기능에 따른 특성과 국가형성의 주춧돌로서의 지위를 연구하고 이를 알리게 되었다.
아랍어는 예나 지금이나 지식층과 일반대중에게서 강한 지지를 받았으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아왔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아랍어가 대중연설에서 강력하고, 심지어 마력있는 힘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인식하여 대중 연설가나 정치인, 이슬람 신학자들이 정확하고 순화된 아랍어를 구사하려고 힘쓴다. 아마도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도 그들의 문학적인 표현에 아랍인들처럼 모국어에 열정적인 애정과 감탄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나 경상도 사투리를 드라마나 소설의 대화체로 써서 향토색이 진한 작품을 쓸려는 한국 작가들에 비해 아랍 작가들은 가급적 사투리보다 표준말을 쓰려고 고집을 부렸다. 아랍, 무슬림들에게 아랍어는, 곧 쿠란의 언어라는 인식이 뿌리 박혀 있어서 신성한 언어, 하늘이 내려 준 언어로 글을 쓴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집트인의 50%는 문맹인이다. 그것은 오로지 이슬람이란 종교에 얽매여 앞뒤 생각 없이 그저 쿠란을 외운 대로 언어가 바뀌지 않게 붙잡아 두려는 무슬림들의 왜곡된 언어관에서도 고전아랍어의 교육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세상 어느 언어도 아랍어가 갖는 힘과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카이로, 카르툼에 가보면 시낭송 대회를 열고 청중은 시낭송이 끝날 때까지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것을 본다. 율격과 각운을 맞춰 읊조리는 시낭송은 곧 음악을 연상케 하며, 또 매년 각 도시에서 열리는 쿠란 암송대회는 무슬림들에게 허용되는 마술로 간주한다. 시낭송과 쿠란 암송을 듣노라면 아랍인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하는 그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것이 곧 언어와 종교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슬람에 의한 통일과 아랍어에 의한 통일을 끊임없이 모스크의 아잔(기도의 부름)을 통해 외치고 있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다소 성정적이며 구슬프게 들리는 아랍음악도 우리에게는 다소 단조롭게 느껴지나, 아랍음악은 악기들의 화음에 의한 소리라기보다도 단어들이 마술적으로 짜여진 소리라 할 수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긴 노래로만 인식된다. 아랍어는 그것의 단어나 이미지에서 아랍인의 심금을 울려 주는 힘과 음악성을 지닌다. 쿠란이 각운이 있는 산문체로 쓰였다는 것은, 곧 쿠란 낭송이 노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 음악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 무슬림들의 생각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요즈음 젊은이들은 외국악을 더 좋아한다. 대체로 전 무슬림과 일부 아랍인에게 아랍어는 신이 준 언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인간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어느 언어보다도 아랍어가 가장 아름답고 장엄하며 가장 웅변적인 언어라 여긴다. 그러한 믿음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고, 아랍 민족주의자에게는 신앙의 들보요, 민족주의의 기둥이며, 민족을 구별짓는 요소로 인시괴어 왔다. 게다가 아랍어에 역사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여 역사를 통한 아랍인들의 경험과 성취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로 써 왔다. 또한. 아랍어는 오늘날 아랍민족을 깨우고 아랍인들에게 자기실현을 위한 도구로 인식되었고, 예술적이고 정확한 표현의 수단이 되었으며, 종교의 도구, 문화의 전달자,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의 주춧돌로서 그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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