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미녀들의 신화 - 김남석
제1장 사랑은 전설이 되어
대영제국의 왕관을 버리게 한 여자 - 심프슨 부인
불륜도 사랑에 속할까? 그것이 불륜이든 사랑이든 당사자들에게는 '진정한 사랑'일 것이고, 타인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일 것이다. 한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역사를 바꿔 놓은 여자가 있다. 유부녀인 심프슨 부인.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대영제국의 국왕이었다. 왕관을 건 이 세기의 사랑은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나 그들은 끝내 사랑을 이루고야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세기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결혼이라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명예와 지위와 가정을 버리고 사랑을 위해 결혼한 두 사람의 행동을 가장 용기 있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세기적 사랑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0년, 겨울에 이루어졌다. 독일의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방공호로 대피한 사람들 중에 이 두 사람이 있었고, 그곳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세기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 국왕의 자리를 빼앗아 버린 심프슨 부인은 과연 어떤 여자인가? 심프슨 부인은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고, 두 번째 결혼으로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살아가던 평범한 미국 여자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당시 에드워드 황태자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미혼의 청년이었으며, 영국의 어떤 여성이라도 가슴이 설렐 만큼 미남이었다. 이무렵 유럽의 여러 공주들이 에드워드 8세의 프로포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에드워드 8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은 윌리스 심프슨이었다. 미국 볼티모어의 평민 여성이며 이미 3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 황태자는 서른여섯이었다. 방공호에 대피해 있던 그날 마침 윌리스는 감기에 걸려 있었다. 재채기를 하자 옆에 있던 황태자가 말을 걸어 왔다.
"이곳엔 미국식의 중앙 난방이 없군요. 그렇죠?"
그러자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말로 대답했다.
"전하는 저는 실망시키셨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영국 황태자 앞에서 그런 언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황태자는 그녀의 말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뭐라고요?" 그녀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영국에 와 있는 미국인은 어느 누구에게나 이런 질문을 받아요. 저는 전하께서 독창적인 말을 하시리라 기대했거든요."
그녀는 또박또박 한치의 떨림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것도 눈웃음을 흘리며.황태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자기 앞에서 속생각을 그렇게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프슨은 그런 여성이었다. 재치가 넘치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런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가정 생활은 평범했지만 뭔가 비범한 기질을 타고났던 것이다. 방공호에서의 첫 만남, 그 짧은 대화로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역시 그런 타고난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황태자는 말을 잘 하고 언제나 편안한 웃음을 주는 이 미국 유부녀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은밀히 황태자의 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고, 귀족들의 파티에 심프슨 부인을 데리고 나타나기도 했다. 정해진 수순처럼 이는 곧 상류 사회의 이야깃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자 심프슨 부인은 당당하게 그녀의 가족들과 인사를 시키기 위해 저녁 식사에 황태자를 초청하기도 하였다. 황태자가 집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친해져 공식적인 파트너가 되기에 이르렀다. 황태자는 그녀에게서 지금까지 자기가 만난 여자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발견했다. 상류 영구 여성은 장갑을 낀 채 악수하는 듯한 느낌이었으나, 이 여성에게서는 맨손의 따뜻한 감촉을 느낀 것이다. 그녀의 미소와 밝은 웃음소리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황태자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는 소리를 내어 웃는다는 것은 품위 없는 행위로 여겨져 왔기에, 그녀의 웃음은 더욱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다. 윌리스는 잘 웃었다. 그것도 유쾌한 소리로 웃었다. 가식없이 마음껏 웃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말을 주위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녀가 있는 자리엔 늘 웃음이 넘첬으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두 사람을 맺어 준 것은 바로 그 웃음이었다. 황태자는 그녀 같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해방감을 맛볼수 있었다.
두 사람이 여러 장소를 전전하며 웃음을 나누는 동안 사랑은 점점 깊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범한 남성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국왕이 될 사람이었고. 윌리스 역시 자유의 몸이 아니라 엄연히 한 남자의 부인이며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였다. 황태자가 빈번하게 자동차를 집 앞으로 보내고, 또 자주 드나들며 그녀를 사교계에 데리고 나가는 일련의 변화에 대해 남편이 태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화려한 의상을 해 입느라 지출이 부쩍 늘기도 했다.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더 이상 그대로 놔 둘 수 가 없었다.
"이봐. 황태자의 청을 딱 잘라 거절할 수는 없겠어?" 윌리스는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말했다. "이것은 전하의 명령이에요." "알아. 하지만 당신은 한 가정의 어머니야. 당신의 신분에 맞게 생활해야 돼." "지금 나에게 설교하시는 것예요? 저는 전하의 명령에 따라 파티에 가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이 얼마나 큰 고통과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도 황태자의 명령이란 말로 모든 사실들을 정당화하려 했다.
"당신은 지금 정상이 아니야. 불장난을 하고 있어."
그녀의 남편은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녀는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남편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사교계의 모임에 들락거리는 데 온통 정신이 빠져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말을 듣지 않자 황태자에게 직접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내와 황태자의 불장난을 지켜보며 그저 매일 매일 가슴만 앓고 있었다. 가정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갓따. 여자 그리고 엄마의 자리가 비게 되자 모든 질서가 무너녀 버리고 마랑ㅆ다. 그녀가 황태자와 함께 파티에서 춤을 추는 날이면 남편은 술로 마음을 달래며 몇 번이고 "내 아내를 유혹하지 마시오."라고 혼자 소리첬다. 그러나 행여 황태자에게 직접 이런 말을 전했다가는 그 즉시 아내를 잃을 것 같았다. 그는 아내를 잃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막강한 황태자와 맞서 싸울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 고독하고 처절한 시간을 감내하면서 언젠가는 아내의 불장난이 끝나 가정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의 마음이 식으면 아내는 나에게로 돌아오겠지. 전에도 황태자는 몇 사람의 유부녀들과 지내다가 결별을 했으니까."
하지만 심프슨은 다른 유부녀들과는 달랐다. 그는 황태자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았다. 두 사람의 사이가 급진전되자 결국 남편은 더 이상의 미련을 갖지 않았다.
왕관을 벗어던지더라도 결혼을 하겠다
1936년 부왕 조지 5세가 별세하고 황태자는 그 뒤를 이어 에드워드8세가 되었다. 이는 곧 국민의 신망의 부응해야 하는 공인의 몸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황태자의 자리와 국왕의 자리는 연장선상이라기보다는 전혀 벌개의 세계였다. 이제 영국 전국민의 정신적인 지주인 국왕이 스캔들을 일으키며 생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 여자와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하시오."
영국 왕실은 국왕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충고해 왔다.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자 윌리스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 국민이 결혼한 여자를 왕비로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해요. 나도 왕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은 딱 질색이니까요. 저는 그저 폐하의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요."
그녀는 그저 국왕의 애인으로 머물러 있고 싶었다. 때때로 국왕이 그녀를 불러 주거나 집을 방문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왕은 윌리스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할 생각이오." 그말을 들었을 때 윌리스는 새파랗게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미친 짓이이에요."
그녀는 겁이 났다. 수많은 영국 국민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난 당신 없이 국왕이 되고 싶지는 않소." "폐하. 전 이대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녀는 울먹이며 국왕에게 말했다. 그러자 국왕은 그녀의 흔들리는 어깨를 살며시 껴안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과 절대로 헤어지지 않겠소. 왕관을 벗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윌리스는 사교장에서나 왕가에서 할 비난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잘못했다간 미국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국왕과는 영원히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했다.
"국왕의 자리를 떠나는 일이 발행한다 해도..."
국왕은 그녀의 입술을 가져다 살며시 키스를 하였다.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윌리스의 귓가에서 국왕의 나지막한 음성이 맴돌았다. 윌리스는 몸이 떨렸다. 국왕의 사랑이 진정이라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영국의 운명은 윌리스의 대답 한마디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냉정히 자신을 추스리며 말했다.
"폐하! 그건 안 돼요. 당신이 나하고 결혼을 한다면 전세계 사람들이 날 비난할 거예요. 그리고 영국 국민들은 국왕으로부터 자신들이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나는 당신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직무를 단 하루도 해낼 수 없소." "폐하. 지금처럼 곁에서 폐하를 돕겠습니다. 언제고 절 만나러 오실 수도 있고,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가겠어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 난 싫소. 나 혼자만 당신을 가까이 하고 싶소. 이건 내 진정이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이 문제로 심하게 충돌했다. 이때 윌리스가 본심과는 다르게 완강하게 거절했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또한 국왕의 지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국왕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곽 아이들과 헤어진다 해도 국왕과 함께 남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가고 싶었다. 윌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 같은 걸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모두가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지 않으려 하거든요."
윌리스의 이 교묘한 말이 국왕의 마음을 자극하고 말았다.
"누가 우리 두 사람을 갈라 놓을 수 있단 말이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하고 말겠소."
이 순간 두 사람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다툴 일도 없었다. 국왕은 그녀의 남편을 직접 만났다.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소. 당신과 가족에겐 미안한 일이오만, 난 이 여자가 옆에 없으면 단 한 시간이라도 삶의 의미를 못 느끼겠소." "폐하. 일시적인 감정으로 모든 걸 결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폐하를 지켜보는 눈들이 많습니다." "난 세상의 비난 따윈 두렵지 않소. 오직 그녀와 함께한다면......"
더 이상 그녀의 남편은 국왕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서둘러 그녀와 이혼을 하였다. 이혼이 결정된 후 그녀와 국왕은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를 꾸미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의 언론들이 연일 떠들었고, 영국 국민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왕가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자존심 강한 영국 국민들은 달라진 세상, 달라진 국왕을 한탄했다.
"영국은 국왕이 이혼 경력 있는 여자와 결혼하는 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두 차례의 이혼 경력을 가진, 애까지 낳은 여자와는 하늘이 두 쪽이 된다 해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두 아이를 낳은 중년의 나이 때문에 왕가의 혈통을 이을 자녀를 충산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도 많이 작용하였다. 왕실에서는 국왕에게 다른 나라의 공주와 결혼할 것을 강력히 종용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내각은 심프슨 부인과 결혼을 한다면 모두 사퇴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국왕 혼자 힘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군은 아무도 없었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 계속되었다.
"폐하. 저 한 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더구나 폐하께는 고통만 전해 드리고......."
나라 안팎에서 거센 반발이 일자 국왕과 왕실은 연일 회의를 거듭했지만 국왕의 의지는 변할 줄 몰랐다.
"폐하. 고집을 꺾으세요. 이제 저를 잊어 주세요. 당신과 당신 나라를 위해서 저는 미국으로 떠나겠어요."
그녀는 더 이상 영국에 머무는 것이 국왕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왕의 생각은 단호했다.
"난 결코 당신을 포기할 수 없소. 만일 나라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난 왕위를 물러나겠소."
국왕은 그녀를 껴안고 통곡했다. 한 여자와의 사랑 때문에 영국의 국왕이 울고 있었다. 그는 왕실과 국내외의 비난에 이미 자제심을 잃고 지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수상 볼드윈이 나섰다.
"폐하. 국왕으로서 국민의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이 말이 제가 국왕께 드리는 마지막 청이옵니다."
수상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하지만 국왕의 대답은 냉정했다.
"국민에겐 미안한 일이오만, 나는 그녀와 결혼할 작정이오."
수상도 더 이상 국왕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다. 왕실과 내각은 에드워드 국왕의 퇴위를 준비하기에 바빴다. 국와 즉위식을 준비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 퇴위식을 준비해야 하는 관리들은 비통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드디어 12월 10일, 에드워드 8세는 퇴위 선언서에 서명을 하였다. 국왕에 즉위한 지 불과 1년도 안 된 325일 13시간 57분이었다.
사랑의 승리자
국왕의 퇴위 소식을 들은 영국 국민들은 놀라움과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원래 여자를 좋아하여 자유롭게 스캔들을 일으키는 사람이긴 하였지만, 이혼을 두 번이나 한 유부녀와 결혼을 하기 위해 국왕의 자리까지 차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영국 사람들 너무 실망한 나머지 국왕의 퇴위 소식에 차갑게 침묵했다. 오래 전부터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은 "만일 국왕이 퇴위하고 당신과 결혼한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성이 될 것이다." 라며 우려를 나타냈었다. 그 우려는 즉각 현실로 다가왔다. 윌리스는 글자 그대로 사면에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가 되어 버렸다. 외출은 물론 사교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언론은 세계의 비난과 침통함을 재빠르게 전해 주었다. 증오와 살의가 가득한 내용의 편지들이 연일 그녀의 숙소로 배달되었다. 수천 통의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 갔다. 영국 자존심의 상징이며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사람들로부터 국민을 배반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렇게 매도되었다. 버킹검 궁은 그에게 2년 동안 영국을 떠나 있으라는 유배의 명을 내렸다. 전 국왕은 국민에게 라디오를 통해 작별을 고했다.
"여러분은 내가 왕위를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 오랫동안 봉사하고 노력해 온 국가의 일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이것만은 국민도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모든 것을 이미 포기한 상태인지라 그의 음성은 차분했다. 오히려 이 고별 방송을 듣는 국민들의 심정이 더 착잡했다. 윌리스는 칸느의 친구 별장에서 그 방송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동안 국왕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스트리아의 스키 여행, 요트 여행, 스페인에서의 피크닉, 마조르카 섬의 한적한 해변, 남편과 별거 후 집으로 매일 보내왔던 국왕의 장미꽃,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걸어 주었던 전화, 밤마다 그가 그녀의 손님이 되었던 아름다운 날들.......
"왕위를 버리면서까지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사랑하는 여성의 조력과 도움이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중책과 의무를 다할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윌리스의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윌리스는 국왕 한 남성만을 사랑했지만, 국왕은 그녀를 위해 자신의 왕실과 국가와 온 세계를 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한없이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곧 자신을 위해 희생양이 되어 버린 전 국왕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만 했다. 윈저공으로 불리게 된 전 국왕은 자신을 윌리스에게로 태워다 줄 영국 해군의 구축함 갑판에 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조국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러한 결정은 내가 또다시 태어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영원한 승리자이다."
조촐한 결혼식
윌리스와 윈저공의 결혼식은 그녀의 이혼이 성립된 지 6개월후인 1937년 6월 3일에 거행되었다. 초대손님으로는 고작 16명으로 친한 친구와 친척들뿐이었다. 윈저공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영국 왕실에서는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새로 국왕의 자리에 오른 윈저공의 동생은 윌리스를 몹시 원망했다. 동생 또한 국왕의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어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결정짓게 한 장본인 윌리스를 맘에 들어할 리가 없었다. 그의 형 에드워드 8세를 왕위로부터 끌어내려 파멸시킨 그녀에게 왕실은 공작 부인의 칭호를 주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윌리스는 비록 공작 부인의 칭호를 받진 못했지만 언제나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조촐한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식장 안이 너무 썰렁해 참가한 사람들조차 슬픈 표정을 지었다.
"행복한 얼굴을 지어 주십시오."
카메라맨이 웃으며 주문을 하였다. 그러자 윌리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언제나 행복해요."
윌리스의 말에 윈저공은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그들은 며칠 이상 떨어져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함께였다. 1974년 그의 조카인 에리자베스 공주가 결혼할 때 윈저공은 아내와 함께 아니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킹검 궁은 끝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실의 태도는 여전히 두 사람에 대해 냉담했다. 여왕이 프랑스를 방문할 계획이 있었다. 그러자 두 삶에게 무언의 압력이 다가왔다.
"여왕께서 파리에 오시는 데 자식 된 입장으로 안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만나자니 세상에 또 한번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고..."
결국 윈저공 부부는 여왕이 파리를 방문하는 동안 은밀하게 파리를 떠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언론의 지면을 뒤덮었던 두 사람의 세기적 사랑도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1972년 윈저공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윈저공이 누워있는 병실로 찰즈 왕자와 함께 찾아왔다. 윌리스는 우아하고 위엄을 갖춘 그의 어머니를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어머니가 다녀간 얼마 후 그녀는 버킹검 궁으로부터 결혼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윈저공은 그녀가 공작 부인의 작위를 받기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장례식엔 100여 명 정도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영국을 떠날 때와는 달리 이제 국민들의 감정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오히려 사랑을 위해 과감하게 왕관을 벗어던진 그의 용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 사람은 3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시곗바늘이 거꾸로 돈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오."
그녀는 영국 황실 공동묘지로 향하는 남편의 관을 바라보며 옛날 일들을 떠올렸다. 세월은 흘러 심프슨 부인에서 윈저공의 공작 부인으로 신분이 바뀐 그녀도 죽음을 맞이하여 영국 왕실 공동묘지 구역에 고이 묻혔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세기적 사랑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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