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원님, 둥우리 타시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차례로 치르고, 그 상처가 조금 아물기 시작할 무렵부터 조정의 기강은 썩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탐관오리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았는데 이들에게 가장 쉽게 돈 생기는 길이 남을 등쳐먹는 것과 매관매직으로 벼슬자리를 파는 일이다. 세간에서 흔히 `등쳐먹는데 이골이 났다`고 하는데 사람이 너무 큰 고기점을 삼키거나 하면 옳게 삭이지를 못해서 목에 걸리고, 그럴때 등을 두드리면 웨익 하고 토해 놓는데, 뱉어놓은 그것을 낼름 집어먹는 것이 등쳐먹는 것이고 하도 그런 짓을 자주 해 이력이 차서 곬이 생긴 것을 이곬이 났다고 하는 것이다.
서울의 명물이라면 좀 미안하지만 정수동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남다른 재간이 있었지만 가문이 낮아 뜻을 펴지 못하고 지내던 사람이다. 그가 사귀던 대감이 누구에게 돈 2만냥을 먹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
“그 분만은 그렇지 않을 사람으로 알았는데...”
하루는 대감 댁을 심방했더니, 그 집 행랑 사는 하인 내외가 우는 어린 것을 붙들고 쩔쩔 맨다.
“왜들 그러나?” “글쎄 돈을 삼켰지 뭡니까? 가지고 놀라고 엽전 한닢을 줬더니 입에 넣었다 그만 삼켜 버려서...” “그게 누구 돈이지?” “그야 녀석에게 줬으니까 제놈 돈입지요.” “그래?”
그러고는 사랑에까지 들리도록 목청을 돋구어서 떠들었다.
“염려말게, 주인대감은 남의 돈 2만냥을 삼켰어도 끄덕 없는데, 제 돈 한푼 먹은 게 뭐 그리 대사라고...”
물론 주인이 들었고, 그는 부끄러워서 그 돈을 원래의 임자에게 돌려 주고야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한다.
그럴 무렵에 경기도 포천 땅에 원님 하나가 왔다. 이 자가 정사 돌보는 것은 둘째고 돈 나올 구멍부터 눈여겨 살폈다. 그리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 들였다. (이런 것을 옛 어른들은 갈퀴질이라고 하였다.) 이러다간 포천고을에 기둥뿌리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쑤근쑤근 사방에서 공론이 일었다.
"이 자를 언제까지 그냥 내버려둬야 한단 말인가?”
이 동네서 저 동네로 저 동네서 이 동네로 전갈이 통하여 온 고을안이 뜻을 모았다. 그대로 들고 일어나 소란을 피우면 이를 민요라 하여, 폭행, 약탈에 살상으로까지 번지는 수가 있으나, 여기는 이웃 영평과 함께 양반고을로 치는 곳이다. 그래 아주 조용히 원님이라는 자를 집어다 내버리기로 하였다. 둥우리라고 닭 키우는 제구가 있는데, 놓아 먹이는 닭이 올라가 달걀도 낳고 품어서 병아리를 까게 그냥 위가 열려 있는 것이 있고, 닭을 산 채로 넣어 장터 바닥에 누구나 보게 말뚝을 박고 발목을 매어 놓고 팔기도 했다. 사람타는 가마를 닭의 둥우리처럼 새끼줄로 결어서 메고 들어가, `원님, 둥우리 타시오` 하는 날이면 꼼짝없이 타야 하고, 그러면 여럿이 메고 가서 지경 밖에다 팽개치는 것을 `둥우리 태운다`고 하여 조정에서 파면당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큰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갈퀴질의 명수인 원님은 둥우리를 타고 서울 가까운 양주 지경 축석령 고갯마루 땅바닥에 팽개쳐졌다. 그런데 이 자가 울어도 시원치 않을텐데, 맨바닥에 주저앉은 채, 하늘을 쳐다보면서 껄껄거리고 웃는 것이 아닌가?
“저런! 너무 충격이 커서 아주 미쳐버린 거 아냐?”
군중 가운데 하나가 다가가서 물었다.
“원님! 무엇이 우스워서 그리 웃소?”
“나 너희들 못난 짓 하는 것이 하도 우스워서 웃는다.” “당신 신세는 인제 끝장인데, 우리 하는 것이 무엇이 못났단 말이오?” “아, 이 사람아! 이문 안 남는 장사를 누가 한다던가? 내가 이 고을 원 자리를 5천냥 주고 사서 해왔는데, 어제까지 모두 만냥을 거둬들었으니 이제 남은 임기동안 좀 옳은 정사를 펴보려고 했는데, 그동안을 못참아서 나를 둥우리를 태워? 며칠 안있어 만냥 밑천들인 원님이 부임해 올 것이니, 그땐 갈퀴질커녕 나올게 없으면 쇠스랑을 들고 파서라도 거둘 것이니, 그렇다고 못견디어 또 내다 버리고...“
여럿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리곤 그 중의 하나가 웃옷을 홀랑 벗어서 탁탁 털어 바닥에 깔았다.
“이리로 올라 앉으십시오.”
그리고는 일행 중에서 제일로 긴 장죽을 가져다 담배를 재웠다.
“이거 대라곤 시원치 않습니다마는...”
이 약삭빠른 원님은 군말 않고 그것을 받아 물고, 백성이 붙여 올리는 대로 뻑뻑 빨았다. 그리곤 새삼스레 꾸며 가지고 온 사인교를 타고 다시 동헌으로 들어가 정사를 돌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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