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안갑내 다리의 유래
조선조 후기의 일이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공부 잘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내외 요직을 두루 거쳐 판사와 정승까지 다 지내고, 치사(나이 많으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한 팔자 좋은 대감이 한 분 있었다. 별로 출입을 않다 보니 행랑에 사는 수많은 하인들도 할 일이 없다. 나들이를 하셔야 가마도 메고 일산도 받치고, 앞뒤로 갈라서서 `에이 비켰거라, 물렀거라.` 벽제를 치며 큰 길을 휩쓰는 것인데, 그럴 일도 드물다 보니 정말로 심심해 죽겠다. 그래 여럿이는 새벽마다 저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문 앞서부터 큰길 저 멀리까지 쓸어 나갔다. 그리고는 길가 해장국집으로 들어가 구뚜름하게 끓인 술국에 막걸리 한 잔씩으로 목을 축이곤, 기분이 좋아서 돌아와 그 집의 술국 끓이는 솜씨와 아침의 해장하는 맛을 떠들어댔다. 대감이 측간에 앉았다가 그들의 떠드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첫새벽 술국 맛이 그렇게 좋담!` 대감은 저으기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다고 저들과 어울려 갈 수도 더욱 없으려니와, 통량갓에 도포 차림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어느날 아침 일찌감치, 동저고리 바람으로 하인들과 맞부딪치지 않을 만큼 시간을 안배해 저들이 떠들던 술집을 찾았다.
“할아버지! 무얼 드릴깝쇼?” “국하고 막걸리 한 잔.”
막고추가루를 쳐 저어서 훌훌 마셔보니 과연 속이 확 풀리는 것 같다. 그리고는 슬쩍 거냉한 그 막걸리 맛이라니! 다시 국물을 마시고 났으니, 이제 계산을 해야겠는데
“아차차.”
대감이 언제 돈을 만져나 봤나? 허리께를 더듬어 봤자 돈이 있을 리 없다.
“여보시우 주인! 늙은이가 정신이 없어 돈 갖고 오는 걸 잊었으니, 누굴 좀 딸려 보내면 내 그 편에 보내주리다.” “아니! 이 바쁜데 누굴 딸려 보냅니까? 참 할아버지도...”
그러는데 저쪽에 여럿이 둘러서서 먹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다가온다.
“뭔데 그러십니까?”
주인의 하는 얘기에 젊은이는
“아따, 이 양반아! 우리들 계산에 넣어. 단 한 잔 잡순걸 가지고... 할아버지 그냥 올라가셔요.” “그렇소! 참 고맙소이다. 이렇게 서로 알게 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니, 며칠 안에 내 집을 한 번 찾아주오. 조 궁우물에서 왼쪽으로 빤히 들여다 보이는 집이야. 꼭 찾아와야 되우.” “예 예, 염려 마시고 어서...”
평나막신은 노인들이 이웃 출입할 때 흔히 신는다지만, 하얗고 조그만 상투엔 금동곳이 아침해에 반짝 빛났다. 그날은 그걸로 끝나고 다음날 아침 젊은이는 빈 소를 끌고 궁우물께를 찾아가 두리번거렸다.
“당신, 하얀 노인네 댁을 찾으시구랴. 날 따라 오우.”
으리으리한 솟을대문 앞에 이르더니 젊은이는 고삐를 하마석에 매면서 너스레를 떤다.
“대감마님! 기다리시던 젊은 친구가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영창을 두루루 열고 내다보는데 그때 그 노인, 삼층 관을 받쳐써서 인자한 얼굴에 위엄이 넘친다.
“대감마님! 소인 문안드리옵니다.” “무슨 소린가? 우리 사이에 그런 인사 따질 형편인가? 어서 올라오게.” “오니올시다. 끄레발인걸입쇼.” “괜찮아! 장판방이라 훔쳐 올리면 그만 아닌가? 어서...”
엉거주춤 들어선 그에게 자리를 권한다.
“일전엔 참 고마웠네. 그땐 자네 술 먹었으니 오늘은 내 술 한잔 마셔보게.” “얘, 약주상 보아온.” 상노에게 이르고, “그래 어디 살며 무얼로 생업을 하기에 새벽 일찍 예까지 오고 하나?” “예. 뚝섬 사옵는데, 저희 뚝섬 육백 호는 무 심는 걸로 생계를 삼읍지요. 그래서 무를 가지고 뚝섬갈비라고들 한답니다. 가을에도 내지만 대부분 땅속에 묻어놓고 겨우내 소바리로 실어다 거래처에 넘기는데, 아침 한 행보하고 나서 낮에는 다른 일을 합지요.” “그래! 자 어서 한잔 들고..., 그런데 여보게! 나는 이렇게 들어앉아 있네만 집의 아이가 지금 조정에 몸 담고 있어 한 가지 정도 청이라면 들어 줄 수 있으니, 어떤가? 사양말고 어서 얘기해 보게.” “그렇습니까? 그럼... 다른 게 아니오라, 뚝섬서 무 실은 소바리가 살곳이 다리를 거쳐서 오노라면, 동대문 밖 저만치서 꼭 개울을 건너야 하옵는데, 추운 날 발빼기가 괴롭고... 소등에 올라앉기도 합니다만 그놈인들 좀 고생스럽겠습니까? 거기 튼튼한 다리나 하나 놓아 주셨으면...“
옛날 왕십리서 광희문까지는 자락자락 쪽박 엎어놓은 것처럼 묘지 사이로 작은 길이 나 있었을 뿐, 달구지나 소바리가 연락 부절하게 다닐 길이 못 되었다.
“좋은 말일세.힘써보지.”
그런 뒤로 요망하는 자리에 다리를 놓았는데, 그 마음 착한 뚝섬갈비 장수의 이름이 안갑내였다고 한다. 지금도 안암동 예전 다리께가 그 고장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모두 안갑내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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