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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기문 완역본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하)
편저자: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차례
대동기문 서
1. 예론이 당쟁으로
노정승의 몸으로 아버지의 치매를 간병한 효자--조익
친구간이라도 주지 않는 것은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훈계한--심지원
신의를 잃으면 세상에 설 수 없다고 혼인 약속을 지킨--박서
승문원 정자에게 종이와 벼루를 갖고 오게 한--정태화
어여뿐 기생의 유혹으로 인생의 진로가 바뀐--오성군
국수로서 시골 하수에게 당한--덕원령
임금이 내린 명을 받들 수 없다고 한--이경휘
효종의 제삿날 하루 종일 통곡한--송 장군
의로운 신하의 울음소리에 여름서리가 내린다고 한--김홍욱
심양에서 봉림대군의 시중을 든 영리한--논학
불상에 고기를 문지르고 그날 밤에 죽은--어느 선비
꿈을 통해서 전생의 인연을 만난 평안 감사--유심
천문을 잘보아 경술년 기근을 재상에게 당부한--김시진
살아서 백도요, 죽어서 대제학이 된--정두경
꿈에 신덕왕후 강씨를 만난--권유
한 쌍의 학이 양 어깨에 내려앉은 꿈의 주인공--신천익
늦팔자가 좋은--조계원
계속 일곱 대가 골고루 수를 누린--이의전 집안
복이 과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고 경고한--정유성
국법에 따라 연좌되어 죽는 것이 옳다고 한--허적
금관자 대신 쇠뿔로 된 관자를 한 재상--송시열
태어날 때 천인이 산구를 보내 온--송준길
산적 두목으로부터 목숨과 재물과 여인을 얻은--이완
순가의 재치로 평안 병사까지 한--이무
병사의 청을 군명으로 들어주지 않은--조석윤
두 아들로부터 술주정 행패를 당한--민정중
나이 겨우 일곱에 피난길의 식구를 모두 살림--민유중
목소리만 들어보고도 죽음을 예견한--심만
앞을 내다보고 난세에 신중한 처신을 한--신정
재주가 없어 백이전을 10만 번 읽은 억만재의--김득신
시재가 뛰어나 까다로운 운자에 강한--홍석기
전서에 동방 일인자--허목
원혼들로부터 철저히 복수당한--김석주
신분이 천한 무인에게 큰 교훈을 얻은--정재숭
유응부의 계시를 받은 숙종조의 충신--오두인
친국을 받으면서 임금에게 간한--이세화
'공의 힘으로 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면했다'고 칭송받은--박태보
한번 내뱉은 '말'은 달리는 '말'로도 못 따라 잡는다고 한--이현조
지혜로운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윤휴
과거 급제를 기뻐하다 장인으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권변
꿈에 생사당을 가느라고 임금 앞에서 졸았던--이민서
한쪽 다리가 잘린 뒤 더욱 출세한--윤지완
시골 선비에게 속아 급제시킨 상사관--김진규
기생들로 하여금 누추한 이름을 남기게 한--한지
남을 돕는 일로 즐거움을 삼은--임준원
2. 기사환국과 신임사화
일본 땅에서 제주 귤을 먹은--신유한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배나무를 안고 통곡한--유혁연
상복 차림으로 밭을 간--최신
서북인 출신으로 최초로 충청 병사가 된--전백록
늦게 글을 배워 출세한 무인--전종영
대를 이어 학업을 연마하여 훌륭한 선비가 된--윤거형
제비를 시제로 하여 대제학에 뽑힌--권유
숨차 헐떡이는 소를 보고 일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은--김주신
착한 끝은 있는가? 늦팔자가 활짝 핀--김우항과 권 참봉
시를 보고 작자의 미래를 점친--남용익
귀양가면 그곳에 술이 있느냐고 물은--오도일
덕천에 귀양 가서 관아의 뜰을 청소한--이관명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있다고 할 만한--윤지술
의사의 피로 죽어서 사람을 감복시킨--임창
황룡이 버드나무에 걸려 있는 꿈을 꾸고 장원 급제한--이만성
관상을 보면 기이하게 들어맞는--김창흡
거짓말을 한 아전을 도와준--조태채
'양'자 때문에 화를 당한--이이명
참형당할 때 휜 기운이 목에서 나와 하늘에 뻗친--이건명
백수의 노신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세제책립을 반대한--조태구
학질이 떨어질 정도로 위엄이 높던--이광좌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의 욕심을 꺾은--신임
목호룡의 기를 꺽은 비파의 명인--김성기
몹시 어둔하여 서당의 스승조차 포기하려 했던--윤봉구
꿈에 하늘로부터 난초화분을 받고 출세한--이재
숙질이 변란에 항거하여 나라를 위해 몸바친--이봉상
30년 묵은 옥사를 처결하고도 애통해 한--황인검
거지와 어사를 분별할 줄 아는 어린 기생에게 감동된--이광덕
체통과 예법을 잃은 감사를 탄핵한--김굉
대나무 찍은 뾰족한 끝을 분별하여 잃은 돈을 찾아준--고유
담을 뛰어넘게 하여 폐세제 전교를 거두게 한--송인명
선정을 펴 삼한을 이룬--최규서
끝내 이름을 고치지 않은--정호
돈피갖옷을 벗어 정순왕후에게 바친--이사관
3. 탕평과 선비들의 의리
사적으로 원수지간이나 공적으로는 도움을 준--이종성
소를 타고 온 객을 보고 초헌에서 내린--윤급
영조의 육상궁 참배를 반대하다 처형될 뻔한--조중회
관아에 불을 질러 잃어버린 병부를 찾은--이만원
삼종제수의 꿈 징조로 문과에 급제한--이태중
원수에게 은인이 된--박문수
어영대장의 마부를 가둔 성균관 장의--서유망
임금이 신하에게 농을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송명흠
눈과 코가 베어졌어도 역신을 꾸짖은--이술원
막하의 비장으로 인하여 아들 하나를 보전한--이사성
못쓰게 된 한 푼을 위하여 두 푼을 들인--정홍순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완강히 거절한--양완
하찮은 물건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을 깨우친--이성원
기생 덕분에 화를 면한--조운규
나무를 실은 남의 소를 타고 가서 급제한--윤필병
처자가 정절을 지킨--김하재
4. 변란과 풍운의 국운
교만한 종사관을 반란을 평정시킨 인재로 만든--이창운
'꽃이 진 뒤에 그 위에 다시 피는 꽃'의 뜻을 알고 있었던--채제공
어머니의 병구환 때문에 벽파를 붙좇은--심환지
해흥군의 넋을 머리에 인--김이소
큰 뱀이 배 위에 서려 있었던--김종수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비난한 갈처사를 의로운 친구로 사귄--김유근
얼굴은 지독히 못생겼어도 복이 많았던--윤명렬
임금이 내려준 집을 거절한--윤득부
스승의 꿈대로 우부빈객이 된--이의철
성실과 솔직함으로 끝내 아내를 효부로 만든--이규복
귀신도 꺼려하는 억센 기상의--김정묵
과장의 문란함을 보고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이직보
사치하고 망하지 않은 사람 없다고 책망한--김용겸
제자에게 좌우명이 될 시를 지어 경계한--정종로
술과 시를 즐기며 경치 좋은 곳에서 숨어 산--이양연
수절하는 기생 무운을 사랑한--이경무
순라군으로 시문을 잘하여 어전에까지 불려간--왕태
도둑에게 해진 갓을 되돌려 받은--정민수
소탈한 천성을 타고난 화가--김홍도
산은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은 산수화가--최북
대나무와 난초를 잘 그린--임희지
닥쳐 올 일을 미리 짐작하고 대처한--이서구
장례 때 백학이 상여를 인도한--이제로
도둑도 감복하여 종이 되겠다고 자청하게 한--홍기섭
용호영의 장교를 곤장으로 다스린--임익상
솔개가 병아리 채가는 것을 보고 운명을 점친--임치종
관서지방에 발길을 끊었던--김삿갓
의주에서 꿈에 선조대왕을 본--임백수
필명은 천하에 떨쳤으나 운명이 기구했던--김정희
노루가 간 길을 따라가서 사형을 면한--이인응
자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홍순목
외국과의 개방과 통상 논의를 맨 먼저 꺼낸--박규수
효성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초상화를 얻게 된--이희익
민 중전을 변장시켜 장호원까지 피신시킨--홍계훈
피묻은 옷 곁에 대나무가 돋아났던--민영환
이 책을 읽고
대동기문 서
오확(전국시대 진나라의 역사)은 무게 천근을 드는 장사였지만 자기의 몸은
들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물건을 드는데 강하고 자신을 드는 데는 약하였던가.
이주의 시력은 가을 털 끝은 살필 수 있어도 자신의 눈썹은 볼 수 없었으니
어찌하여 털 끝을 보는 데는 밝고 눈썹을 보는 데는 어두웠던가. 이는 형체에
구애된 때문이다.
초나라 무당은 남을 위하는 데는 혼령도 불러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재앙도
물리칠 수 없었고, 진나라 의원은 남의 목숨은 살려냈지만 자신의 병은 낫게 하지
못하였다. 어찌하여 남에겐 신비한 효험을 보이면서 자신에겐 보이지 못했을까.
이는 사심에 가리워진 때문이다.
노나라에 살면서 "춘추"(노나라의 역사서)는 읽지 않고 "승"(진나라의 역사서)을
읽는다거나 송나라에 살면서 장보(송나라 의관)를 착용하지 않고 깃 털모자를
쓴다면 이는 형체에 구애된 때문일까, 아니면 사심에 가리워진 때문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어리석고 미혹되기 짝이 없음을 느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을까?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함을
숭상하며 우리 것은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배우기에 급급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주, 진, 한, 당 등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부녀자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설명하면서 단군, 기자 등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노숙한 선비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상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세대를 내려올수록 더욱 어렵고 우리와 가까운 일일수록 더욱 소홀하다.
의로움과 이로움을 가리지 못하여 도척을 순임금으로 잘못 아는가 하면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혼동하여 은을 철이라 우기며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며
주황색을 자주색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 아니 이러한 자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사람의 이름은 알면서 그 사람의 산 시대는 알지 못하는가 하면, 그 사건은
알면서 그 사건이 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성은 알면서 본관을 알지
못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 조상에 대한 역사는 캄캄하여
누가 물으면 아예 입도 벌리지 못하고 딴전만 피다가 외국 역사에 대해 말하게
되면 산바람이 나서 바다 건너 멀고먼 불모지까지도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말하듯 소상하게 설명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병폐인가? 우리들의 의문은 여기서 더욱 심하게 된다.
나의 벗 금천자는 이 땅 대동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늙은 사람이다. 언젠가
그는 내게 말하기를, 고려 이전의 일은 이미 기록이 정비되어 있으니 두어두고,
조선 태조부터 고종까지 사이에 일어난 기괴한 일들을 기록하여 4권 1책으로
만들어 이름을 "대동기문"으로 했다고 하였다. 또 나도 이 땅 사람이란 이유로
그는 나에게 서문을 쓰도록 하였다.
이 책은 기이한 일을 실은 책이므로 괴이한 이야기도 있고 익살맞은 사실도
실렸으며 야인의 사적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역사 속의 패사라면 말이 되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적인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이 속엔 이름난 공과 큰 업적에 관한 이야기며 뛰어난 충신, 효자 이야기며
숭고한 도학과 빛나는 문학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어찌 단순한 한낱 패사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속엔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악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고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가 섞여 있으니 그 가치 판단은 마땅히 독자가
해야 한다.
만약 새것을 좋아하고 우리 것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곁에 있다가 하하
웃으면서 이 책이 진부하면 진부했지 기이할 게 무엇이냐고 비웃는다면, 아마
자네는 틀림없이 송나라 사람은 송나라 관을 써야 되고 노나라 사람은 노나라
역사를 읽어야 하듯이 우리나라 사람은 노나라 역사를 읽어야 하듯이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할 걸세.
을축년(1925) 죽취일(음력 5월 13일, 대를 심는 날) 번천 김영한이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