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영월군수가 되자 단종의 신위를 설치하여 괴상한 변고를 없앤 김륵
김륵(1540-1616)의 본관은 예안이고, 자는 희옥, 호는 백곡이다. 퇴계에게 글을 배웠다. 명종 19년(156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선조 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홍문관의 청환직을 지냈다. 어느 날 차자를 올려 임금의 덕성이 매우 절실함을 논하였더니, 임금이 그를 앞에다 불러 놓고 책망하였다.
"그대가 나더러 영민하고 슬기로움이 너무 지나치다고 하였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가?" "오늘날 처리하는 일들이 바로 그 근거입니다"
임금이 더욱 노여워하다가 깨닫고서 신하를 통하여 김륵에게 사과하고 술을 하사하면서 그 자리를 파하였다. 동왕 17년에 영월군수가 되었는데 이보다 앞서 영월군에 괴상한 변고가 있어 수령이 부임하였다가 번번이 죽어 나가는 일이 있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맨 먼저 용기를 가지고 그 동안 아무도 하지 못했던 노산군(단종)의 묘를 찾아 배알하고 신위를 설치하여 송 부인(단종 비 송씨)을 배향하게 하고는 제수와 예물을 갖추어 정성스럽게 받들었더니 3년동안 영월군에 아무런 변고가 없었다. 그 뒤 임진왜란 때에는 영남 안 집사의 명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경상우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대사헌이 되어 국가를 부흥시키는 열 여섯 가지의 계책을 진달하였다. 그 후 영천의 귀학정으로 은퇴하여 마음이 가는 대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다가 77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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