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풍자했던 어득강
어득강(1470-1550)의 본관은 함종이고, 자는 자유, 호는 관포 또는 혼돈산인이라고도 하였다. 성종 23년(149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2년(1496)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어득강은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문장에 능하였다. 그는 영남 진주에 살았는데 학문을 좋아하고 우아한 운치를 즐겼다. 과거에 급제한 뒤로 외직을 자청하였고, 성품이 영리에는 담박하고 물러나는 데는 미련이 없었다. 벼슬하는 데 뜻을 두지 않아 조정에서 좋은 벼슬로 그를 불렀지만 모두 물리쳤다. 그는 조그마한 초가집을 산수 사이에다 지어 가족들과 함께 기거하지 않고 아이 종 하나만을 데리고 간단하게 아침, 저녁으로 밥을 지어 먹었다. 그의 생활은 담담하기가 속세를 떠난 중의 생활과 같았다. 그는 평소에 우스갯소리를 잘했다. 어느 날 여러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전하였다.
"도사 정만중이 세자시강원의 문학으로 갈려갔다" 어득강이 문득 그 소리에 맞추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찍이 문학이 되었는데 어째서 정만중이 문학이 되었다고 하는가?" 좌우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더니 어득강이 대답하였다. "'논어'에 문학에는 자유(공자의 제자)와 자하(공자의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듣는 자들이 허리를 잡고 웃었는데, 어득강의 자가 자유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한 것이었다. 벼슬은 대사간에 이르렀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는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특별히 가선대부로 증직되었으며, 저서에는 '동주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