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병풍에 시를 썼다가 죽음을 당한 임희재
임희재(1472-1504)의 본관은 풍천이고, 자는 경여, 호는 물암이다. 간신 임사홍의 아들이다. 성종 17년(1486)에 진사시에 장원하고 연산군 4년(1498)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는데, 이 해에 김종직의 문도라 하여 곤장을 맞고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요순을 본받으면 저절로 태평할 텐데 진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을 괴롭혔나 재앙이 집안에서 일어날 줄 알지 못하고 오랑캐 막으려고 부질없이 만리장성 쌓았구나
하루는 연산군이 임사홍의 집에 갔다가 병풍에 씌어 있는 시를 보고 물었다.
"누가 쓴 것인가?" 임사홍이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연산군이 성을 내며 말하였다. "경의 아들이 불충하니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임사홍이 꿇어앉아 말하였다. "이 자식의 성품과 행실이 불순한 것은 상감의 말씀과 같습니다. 신이 바로잡으려 했으나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임희재는 죽음을 당했는데, 그 아비 임사홍은 희재가 사형 당한 그날도 평일과 다름없이 잔치를 베풀어 마음껏 먹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연산군이 그런 사실을 탐문해 알고는 임사홍을 더욱 총애하였다. 임사홍의 맏아들 광재는 예종의 딸 현숙공주에게 장가들었고, 넷째 아들 숭재는 성종의 딸 휘숙옹주에게 장가들었다.
임숭재는 남의 아내와 첩을 빼앗아다가 임금에게 바쳐 총애를 받았다. 임금이 자주 임사홍의 집에 들렀는데, 어느 날 임사홍이 울면서 고해 바쳤다.
"폐비 윤씨가 엄 숙의, 정 숙의의 참소로 인하여 사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연산군이 크게 노하여 엄 숙의와 정 숙의를 죽이고 조정의 선비 백여명을 죽였다. 시인이 시를 지어 임사홍 부자를 비방하였다.
작은 임가 숭재와 큰 임가 사홍은 천고의 간웅 중에 가장 큰 간웅이네 천도가 돌아오면 갚음 응당 있으리니 네 뼈 또한 바람에 흩날려짐을 알겠도다
처사 조광보가, 연산군이 임사홍을 총애하여 그가 권한을 휘둘러서 조정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송당 박영에게 말했다.
"너는 무부인데, 어찌하여 이놈을 죽이지 않느냐. 네가 죽이지 않으면 나는 너를 죽이겠다" "한 적을 목베어 나라의 근심거리를 제거하는 것은 진실로 마음에 달갑게 여기는 바이지만, 후일 역사에 '도적을 죽였다'라고 쓰면 어찌하겠소"
송당이 답변하자, 조광보가 웃으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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