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어릴 때부터 대가가 될 것이라고 촉망받은 신항
신항(1477-1507)의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용이이다. 열네 살에 성종의 딸 혜숙옹주에게 장가들고 고원위에 봉하여졌다. 나이 7, 8세 때부터 이미 '시경'과 '서경'을 익혔으며 겸하여 황산곡의 시를 모두 외웠다. 하루는 아버지인 신종호가 시험삼아 외워 보라고 하였더니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산수도를 꺼내어 절구를 짓게 하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리를 내어 응답하였다.
물은 푸르고 모래는 희어 가을 기운 드높은데 볕을 따라 날던 기러기 갈대밭에 내리네 다시 보니 연기 같은 비 창망히 내리는 저쪽 밖에 털끝같이 푸른 산이 우리 집이로다
이 절구를 들은 아버지는 매우 감탄하였다. "이 아이는 후일에 반드시 대가가 될 것이다" 혜숙옹주를 출가시키려고 할 무렵 대상자를 선발하는데 성종이 신항을 한 번 보고 좋다고 하였다. 당시 점을 잘 치는 자가 수명이 길지 않다고 하였지만, 성종은 개의치 않았다.
"사람을 취함에 있어 그가 현명한가 현명하지 않은가를 가리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장수하고 요절하는 것을 논하겠는가. 이 사람은 기상이 범상하지 않으니 그 마음속에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을 것이다" 성종은 마침내 그를 사윗감으로 결정하였다.
어느 날 성종이 신항에게 물었다.
"네가 글 짓는 것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지은 것이 몇 수나 되는가?"
신항이 몇 수를 적어서 올렸을 뿐이었는데, 이때부터 성종의 대우가 더욱 융숭하였다. 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는 운명할 즈음에 동생 신잠을 불러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근신이 첫째이고, 재예가 다음이다. 이 두 가지를 겸해서 갖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재예를 버리고 근신을 지켜야 한다"
잠시 후 조용히 읊조리며 세상을 떠났다.
"살아서 좋은 집에 살다가 죽어서 산언덕으로 돌아 가도다" 시호는 문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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