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오랑캐들을 벌벌 떨게 한 이징옥
이징옥(?-1453)의 본관은 양산이다. 형 이징석은 18세, 징옥은 14세 때의 일이다.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산돼지가 보고 싶다고 하였다. 두 아들은 집을 떠났다. 형 징석은 산돼지를 잡아서 돌아왔고, 징옥은 이틀 뒤에 맨손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의아해 하며 이징옥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말이 형의 용맹이 너보다 못하다고들 하는데 어찌하여 너의 형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왔는데 너는 이틀 후에 오면서 빈 몸으로 왔느냐?" "어머니 문 밖을 보십시오"
어머니가 문 밖으로 나가 보니 마당에 큰 산돼지 한 마리가 누워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징옥은 어머니가 산 산돼지를 보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하고 밤낮으로 추격하여 그 돼지가 기진맥진했을 때를 기다려 사로잡아 온 것이다.
언젠가 이징옥은 길을 가다가 슬피 우는 젊은 부인을 만났다. 징옥이 그 까닭을 물었다. "저의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갔습니다. 그 호랑이가 지금 대밭 속에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징옥은 팔을 걷어붙이고 즉시 대밭으로 들어갔다. 칼로 호랑이 배를 갈라 보니 고기가 아직 소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징옥은 그 고기를 보자기에 싸서 부인에게 주었다. 부인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였다. 이징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징옥의 아내가 집안의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기를 원했으므로 이징옥은 억지로 붙들지 않고 가게 내버려 두었다. 뒤에 이징옥이 영남 절도사가 되었는데 그때 그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지 오랜 뒤였다. 이징옥은 사냥해서 얻은 수백 마리의 짐승을 시집간 아내 집으로 보내 주었다.
이징옥의 무용은 따를 사람이 없었으므로 중국인이나 오랑캐들이 모두 겁을 내었다. 그는 육진을 설치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김종서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김종서가 죽음을 당하고 세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 이징옥은 함길도 절제사로 있었다. 이징옥을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세조는 이징옥에게 서울에서 내려간 박호문에게 절제사의 자리를 넘겨 주고 서울로 돌아오라는 명을 보냈다. 박호문에게 절제사의 자리를 넘겨준 이튿날 이징옥은 생각했다. '절제사는 무거운 책임이 있는 자리인데 박호문이 소문도 없이 갑자기 와서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는 즉시 절제사가 있는 경성으로 달려갔다. 그는 박호문에게, 상의할 일이 있으니 만나자고 불러낸 뒤에 그가 나오자마자 쳐서 죽이고 자기의 부하들을 모아 남쪽으로 향하였다.
"이제 강을 건너가 내가 대금황제가 되면 만족하겠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그 이튿날 행군을 하기로 하였다. 이때 판관 정종이 이징옥을 죽이려고 사람을 지붕 위에 매복시켜 두었다. 밤이 되어 이징옥이 의자에 앉아 잠깐 졸고 있는데 의자 밑에 있던 이징옥의 아들이 갑자기 말하였다.
"꿈에 아버지가 머리에서 피를 흘려 그 피가 다리에까지 흘러 내려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징옥은 그것은 좋은 징조라고 말하였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종이 군사들을 데리고 돌진해 들어왔다. 이징옥이 그들과 싸워 수십 명을 죽이고 그 자신도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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