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남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강순
강순(1390-1468)의 본관은 신천이고, 자는 태초이다. 상상부원군 강윤성의 증손으로, 음직(과거에 의하지 않고 조상의 공로로 하는 벼슬)으로써 벼슬했다.
세조 13년(1467)에 길주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다. 세조는 귀성군 이준을 도총사로 삼고, 호조 판서 조석문을 부총사로, 상중에 있는 허준을 기용하여 함길도 절도사로 삼고, 강순과 이유소를 대장으로 삼아 이시애를 토벌하게 하였다. 토벌군은 홍원에서 싸우고, 또 만령에서 싸워 반란군을 대파하고, 이시애를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
건주의 이만주가 반란을 일으키자 명나라는 우리 나라에 원병을 요청해 왔다. 세조는 어유소를 좌장군으로 삼고, 남이를 우장군으로 삼고, 강순을 정서주장으로 삼아 정병 2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건주의 동북쪽을 공략하여 그들을 소탕하였다. 큰 나무를 베어 하얗게 깎은 뒤에 "모년 모월 모일에 정서주장 강순과 좌대장 어유소 등은 건주위 올미부를 토벌하고, 이에 돌아간다"고 쓰고 돌아왔다. 그는 일등공신에 녹훈되고, 신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세조 14년에 우의정에 오르고, 이어 영의정이 되었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하였다. 이때 남이 장군이 유자광의 모함을 입어 반란죄를 입게 되고, 국문을 받게 되었다. 강순이 영의정으로서 국문에 참석하여 남이가 정강이뼈가 부러지도록 국문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변명을 해주지 않자, 남이는 "강순이 나에게 모반을 시켰소" 하고 강순을 끌고 들어갔다. 강순은 어이가 없어 말했다. "미천한 몸이 다행히 성군을 만나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신의 나이 지금 칠순이 넘었거늘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모의를 했겠습니까?" 예종 임금이 강순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기자 남이는 또다시 모함하였다. "성상께서 거짓말에 속아 죄를 면해 주신다면 무슨 방법으로 죄인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남이의 말을 듣고, 다시 의심이 난 임금은 국문을 시작하였다. 강순은 늙은 몸에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서 허위 자복을 하고 말았다. 이를 본 남이가 강순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불복한 것은 장래를 기대한 때문이었는데, 이제 다리뼈가 부서져서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살아서 무엇하겠소. 나 같은 젊은 사람도 억울하게 죽게 되었거늘 살만큼 산 노인이 죽는다고 한들 무엇이 억울하오" 드디어 남이와 함께 사형을 당하게 된 강순이 남이를 불렀다. "남이야, 너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나를 모함했느냐?" 남이가 대답하였다. "억울한 것으로 말하자면, 내나 대감이나 같지 않소. 당신은 수상으로서 나의 억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한마디 변론도 하지 않았으니, 당신도 억울하게 죽어야 마땅하오" 강순은 어처구니가 없어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젊은이를 친하다가 이런 화를 당하는구려. 반역이 어떤 죄인데 장난을 치다니..."
강순의 아내와 자제들도 죽음을 당하고, 가산은 몰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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