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강물을 피로 물들인 비운의 왕자 금성대군
금성대군(1426-1457) 유는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다. 인품이 맑고 아량이 넓으며 말씨에 한 점의 티도 없었다. 을해년에 우의정 한확 등이 아뢰었다.
"금성대군이 모반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남군, 영풍군, 영양위 정종과 서로 깊이 사귀고 있으니 서둘러서 그 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드디어 금성대군은 삭녕으로 귀향 가게 되었다. 세조 2년(1456)에 성삼문 등이 죽고 금성대군은 순흥에 안치되고 그 집은 적몰 당했다. 다음해에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금성대군은 안동 감옥에 갇혔다. 어느 날 금성대군이 옷을 발가벗은 채 도망쳤다. 관청에서 그를 잡으려고 큰 수색을 벌였지만 잡지 못했다. 얼마 후에 금성대군은 자기 발로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아무리 많아도 나를 잡지 못하지? 그러나 내가 어찌 끝내 도망할 수가 있겠느냐? 우리 임금이 영월에 계신다"
그는 옷을 입고 북쪽을 향하여 통곡사배하고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 이때 이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연좌되어 죽음을 당했으므로 죽계물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영조 14년(1738)에 예손 이진수의 하소연을 받아들여 금성대군을 복관하고 시호를 정민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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