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기생을 사랑하여 눈물 흘린 박신
박신(1362-1444)의 본관은 운봉이다. 어릴 적부터 명성이 있던 그는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강원도 감사로 있을 때 강릉 기생 홍장을 몹시 사랑하였다. 그가 도내 여러 군을 순시하고 돌아오자 강릉부윤 조운흘(호는 석간)이, 거짓으로 홍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박신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운흘이 찾아와서 경포대에 뱃놀이하러 가자고 권하였다. 운흘은 오기 전에 홍장을 불러 예쁘게 꾸미고 또 호화로운 놀잇배도 따로 준비하고는, 처용을 닮은 관리 하나를 뽑아서 홍장을 태우도록 미리 일러두었다. 박신이 운흘과 함께 경포대로 나가니 미인을 실은 호화 유람선이 호수위에 두둥실 떠 있는데, 그 위에 채색으로 단장한 편액이 하나 걸려있고 그 편액에 다음과 같은 시가 씌어 있었다.
태평성대 신라에서 조용하게 늙은 이 몸 천년세월 흘렀건만 풍류는 그대로일세 관찰사가 경포대에 뱃놀이 나왔으나 놀잇배에 미인을 어이 차마 태우리
관찰사 일행이 천천히 포구로 들어가서 바닷가를 배회하던 중 갑자기 운흘이 박신에게 말했다.
"이곳엔 전해 오는 신선 이야기가 있지요. 지금도 달 밝은 저녁이면 신선들이 나와 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그냥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산천과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신선이 없겠는가!"
박신이 눈물을 글썽이다가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홍장이었다. 좌석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이날의 놀이는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다. 조선조에서 그의 벼슬은 찬성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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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07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