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3장 죽음과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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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화한 사람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철학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꾸어 놓는 데 기여하였으며 변론술로도 유명하다. 또한 지행일치를 강조하며, 평생을 아테네 민중을 개혁시키는 데 바쳤다. 아테네의 도덕적 부패는 시민이 자기(영혼)를 자기의 것(명예, 재산, 육체 등)에 족속시킨 주객이 전도된 데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부패한 구렁텅이에서 아테네를 구하는 길은 오직 새로운 도덕을 세우는 것과 진리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중정치를 하던 국가는 그에게 죄를 씌어 사형을 언도했다.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이상한 종교를 선포하고 다니며 청년들을 타락시켰다. 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그는 변호인을 거절하고 자신이 직접 배심원 앞에 나가 자신을 고발한 이유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피력한다.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저는 죽는 쪽을 단호히 택합니다. 왜냐하면 법정에서건 또는 싸움터에서건 적이든 또는 다른 누구이든간에,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쓰는 이런 따위의 짓을 꾀하려 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입니다.(생략) 온갖 위험에 처하여서 죽음만을 피하기 위해, 무슨 짓거리건 무슨 말이건 하려들면야 방도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 어려운 것은 이것, 즉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어려운 것일 겁니다.(생략) 그리하여 지금 저는 여러분들에 의해 죽음의 판결을 받고 떠납니다만, 저들은 진리에 의하여 사악과 부당함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생략)
아테네의 재판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가 형량을 신청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국외 추방 정도로 낙찰될 수 있었는 데 쓸데없이 배심원을 노하게 하는 말을 해서 사형판결을 이끌어내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완곡한 방법에 의한 자살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자기의 입장을 변명하고 대중 앞에서 사과함으로써 살아날 수도 있었건만 이를 거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제자들이 마련한 탈출의 기회마저 외면하였다. 사형판결 후 소크라테스는 30일 동안 옥중에 있었는데 그때 찾아오는 제자나 친구들에게 영혼의 불멸과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켤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육체는 혼의 묘지다. 그러니 우리의 혼을 육체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니 오히려 죽음은 경사스런 일이 아닌가? 소크라테스의 사형과정은 플라톤이 쓴 <파이돈>에 자세히 적혀있다.
에케크라테스가 묻고 파이돈이 답한다. 그분께선 몸가짐에 있어서나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나 행복하게만 보였고, 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얼마나 고결하게 최후를 맞으시는지 제겐 그분께서 신들의 보살핌 없이 저승으로 가시지는 않을 것이고, 그곳에 가셔도 정말 잘 지내실 것 같이 여겨졌어요(생략).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네는 상심하지 말고 나의 육체를 묻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네. 따라서 자네 좋을대로 그리고 가장 관습에 맞는다고 생각되는대로 묻어 주면 되네. 말씀을 마치고 나서 목욕을 하기 위해 다른 방으로 가셨어요. 목욕하고 나와 가족을 잠시 만난 뒤, 집으로 돌아갈 것을 이르시고 우리들한테 오셨어요. 해질녘이 가까워왔어요. 간수가 들어왔어요(생략). 아직 안 되어었나? 독을 준비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가? 소크라테스가 재촉하자 제자들이 울며 말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요. 그래서 독을 만드는 이를 매수했습니다. 천천히 만들라고 설득했지요. 독을 만드는 이가 말했다. 내 평생 독을 만들어왔지만 당신 같은 미치광이는 처음 봤소. 왜 그렇게 서두는 거요. 내가 천천히 하면 당신도 그만큼 더 살아있을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머물 수 있지 않소? 당신은 미치광이처럼 늦는다고 탓했지만 무얼 그렇게 서두르는 거요.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죽음을 보고 싶어 서두르네. 난 죽음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네. 죽음이 일어났을 때 내가 살아남는지 어떤지를 보고 싶은 거야. 만약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끝이야. 하지만 내가 살아남는다면 죽음이 끝이지. 요컨대 죽음에 의해 누가 죽는지 보고 싶어. 죽음이 죽는지 내가 죽는지, 죽음이 남는지 내가 남는지 보고 싶다니까.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도저히 그것을 볼 수 없어.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든 잔을 받았다. 잔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선뜻 그리고 침착하게 잔을 비웠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모를 사람들이로군! 이게 무슨 짓들이람. 그는 제자들을 나무랐다. 임종은 숙연한 분위기에서 맞아야 된다고 들었네. 그러니 조용히들 그리고 의연히들 하게나. 그때서야 제자들이 겨우 울음을 진정했다. 소크라테스는 간수가 시키는대로 이리저리 걷다가 다리가 무겁다고 말하고는 등을 뒤로 하고 누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독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무릎까지 완전히 죽었다. 잘라낸다 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친구여, 내 말을 들어보라. 내 다리는 죽었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나는 내 다리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나는 완벽하게 여기에 있다. 내부의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계속했다. 지금 두 다리가 죽었다. 넓적다리부터 잘라낸다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울고 있는 너희들이 있다. 울일이 아니다. 아주 좋은 기회다. 한 인간이 죽어가고 있고,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고 전하고 있다. 내 두 다리를 완전히 잘라낸다 해도, 그래도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있다. 두 팔이 뒤틀린다. 내 팔도 죽어간다. 아! 얼마나 자주 이 팔을 자신과 동일시해 왔던가. 그 두 팔이 지금 내게서 분리되어간다. 그러나 아직 나는 여기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어가는 동안 말을 계속했다. 천천히 모든 것이 온화해져 간다. 모든 것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아직 나는 건재하다. 좀 더 있으면 너희들에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육체의 이렇게 많은 부분을 잃고도 난 아직 건재한데 조금 더 육체를 잃는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이 끝이라고 할 것인가? 너희들에게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육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니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나는 계속 있을 것이다. 이윽고 마지막 순간에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자 이제 마지막인가 보다. 혀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고 나는 말한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는 크리톤을 향해 한 마디 당부의 말을 더 하였다. 아스클레피오스신께 닭 한 마리를 바쳐야 할 빚이 있는데 잊지 말고 꼭 바쳐주게. 크리톤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하며 다른 것이 더 있느냐고 묻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더니, 조금 지나서 몸을 떨 뿐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제자들을 옆에 두고 죽음 을 가르쳤다. 그리고 나보다 즐겁고 착한 생애를 지낸 인간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면서 자신에 대해 만족함을 가지고 인생을 끝냈던 것이다. 그래서 몽테뉴는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소화하였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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