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6. 기러기의 큰 날개를 가졌어도 때를 만나지 못한다면(공손홍, 원고생, 동중서)
1) 높아지려거든 먼저 몸을 낮춰라(공손홍)
마흔에야 학문을 시작하다
공손홍은 젊어서 옥리로 있다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다. 그 후 그는 바닷가에서 돼지를 키우며 가난하게 살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그는 비로소 "춘추"등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무제가 즉위하고부터 학문을 장려하고 학자를 우대하게 되었다. 무제는 전국에 유능한 선비를 추천하게 했는데, 이때 공손홍도 추천될 수 있었다. 그때 공손홍의 나이는 이미 예순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흉농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올린 보고서가 무제의 마음을 거슬렸으므로 무능자로 간주되어야 했다. 그러자 그는 병을 핑계삼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5년이 지나 나라에서는 다시 선비를 추천하게 했는데, 공손홍은 또다시 추천되었다. 이에 공손홍은 거듭 사양했다.
"저는 전에 벼슬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무능한 탓으로 벼슬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다른 유능한 사람을 추천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 지방 유지들은 기어코 그를 추천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 올라갔는데, 각지에서 추천되어 올라온 선비들은 백여 명 쯤 되었다. 나라에서는 문제를 내어 답안을 써 보게 했는데, 공손홍의 성적은 그 중 하위였다. 그러나 그 답안들을 보던 황제는 공손홍의 답안을 으뜸이라 말하고 그를 불러 들였다. 그리고 황제는 공손홍의 의젓한 풍모가 매우 마음에 들어 박사에 임명하였다. 공손홍은 대인의 풍포를 지녔으며, 견문이 넓었다. 또 그는 언제나,
"임금의 병은 마음이 넓지 못한 데 있고, 신하의 병은 검소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데 있다."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항상 베로 이불을 만들었으며, 상에는 한 접시 이상의 고기를 올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계모가 죽었을 때도 3년상을 치렀다. 조정에서의 회의 때에는 어떤 문제에 대해 찬성할 수 있는 점과 찬성할 수 없는 점을 함께 말해 황제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갔다. 또 언제나 상대방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적하여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황제는 공손홍의 언행이 중후하고 여유 있으며 법률과 사무에 정통할 뿐 아니라 거기에 유학의 이념을 세련되게 가미하는 점을 매우 높이 평가해 그를 총애했다. 그는 또 자기의 제안이 황제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조정에서 캐고 따지는 일이 없었다. 그럴 때는 급암이라는 대신과 함께 황제가 한가한 틈에 찾아가 따로 만났다. 그때도 급암이 먼저 말을 꺼내고 자신은 뒤에 동의하는 식으로 했다. 그렇게 되면 황제는 언제나 기분 좋게 그것을 받아들이곤 했다.
학문이 성해야 천하가 태평하다
그 후 공손홍은 학문이 침체되어 있음을 걱정하여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폐하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짐이 듣건대 백성을 이끄는 데 예절로 하고 풍속을 교화하는 데는 음악으로써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예절은 무너지고 음악은 쓰이지 않아 짐은 매우 슬퍼한다. 그래서 천하의 현명한 선비들을 빠짐없이 등용시키고자 한다. 이로써 학문을 권장하되 강론과 토의로 널리 가르치고, 예절을 일으켜 천하에 모범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박사나 제자들과 협의해서 학문을 널리 권장하여 현명한 인재를 배출시키라.' 원래 하, 은, 주 3대 때는 마을마다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를 하에서는 교, 은에서는 서, 주에서는 상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선은 천하에 널리 알리고, 반면 악은 엄격히 처벌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높은 덕을 밝히고 큰 지혜를 열어서 학문을 권장하고 예를 닦으며 어진 선비를 격려하시고 계십니다. 이야말로 태평성대의 근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옛날의 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학문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백성 가운데 예의와 품행이 단정한 자를 뽑아 박사를 보좌하는 제자로 삼게 해 주시고, 어른을 공경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젊은이들에게는 학업의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하여 1년이 지나면 모두 시험을 치르게 하여 뛰어난 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학업을 게을리 하거나 재주가 모자라는 자는 즉시 돌려보내십시오. 아울러 예를 다스리는 관리에게도 뛰어난 경우에는 승진과 연전의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테면 경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부터 채용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폐하의 가르침과 베푸심이 아래 백성들에게까지 분명히 퍼지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난 무제는, "정말 좋은 제안이오."라고 승인하였다. 이때부터 천하의 뜻있는 사람들이 학문에 정진하게 되었다.
자신을 높이려거든 먼저 낮춰라
언젠가 공손홍은 모든 대신들과 어떤 문제를 논의하다가 이렇게 황제에게 얘기하자고 합의해 놓고는 정작 황제 앞에 가서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급암이 황제에게 공손홍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공손홍은 처음에 신 등과 함께 이 계획을 세워놓고는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불충스런 행동입니다."
이에 황제가 공손홍에게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오?"
그러자 공손홍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신을 아는 사람은 신을 충성되다고 생각합니다만, 신을 모르는 사람은 불충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제는 공손홍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뒤부터 주위의 대신들이 공손홍을 헐뜯어도 황제는 더욱 그를 총애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승상 다음으로 높은 자리인 어사대부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한나라는 북쪽 국경 지방의 삭방군에 성을 쌓고 있었다. 이때 공손홍은 그것이 별 필요없는 일에 국력을 소모하게 만들어 결국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라며 몇 번에 걸쳐 황제에게 중지하자고 간언했다. 그러자 황제는 주매신 등에게 명령하여 공손홍을 비판케 하고 삭방군을 방어해서 얻는 이점 10가지를 제시하도록 했다. 이쯤되자 공손홍은 한마디 변명조차 않고 이렇게 사죄했다.
"신은 산동의 촌사람이라 그 이익이 그토록 클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삭방군을 튼튼히 다스리는 일에 주력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급암이 또다시 공손홍을 비난했다.
"공손홍은 지위가 삼공에 있으며, 그 봉록도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도 베를 이불 삼아 덮고 있으니, 이는 거짓된 행동입니다."
이 말에 황제가 과연 사실이냐고 공손홍에게 묻자, 그는 사죄하며 대답했다.
"급암의 비판은 옳습니다. 지금 조정 대신 중 급암처럼 신과 친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조정에서 신을 비판했는데, 그것은 참으로 신의 결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이 3공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베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은 참으로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여 겉치레를 하며, 이름을 날려 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오나 관중은 재상이 되어 세 부인에게 살림을 차려 주며, 그 사치한 생활이 임금과 맞먹었다고 합니다. 이는 임금에 대해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안영은 재상이 되었지만 밥상에 두 가지 고기 반찬을 놓지 않았으며, 부인에게 비단 옷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래로 백성들의 생활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지금 신은 어사대부의 지위에 있으면서 베 이불을 덮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3공에서 말단 관리까지 차별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급암의 말과 같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만약 급암의 충성이 아니었던들 폐하께서 어떻게 이런 말을 들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이 말에 황제는 그의 겸손함을 더욱 높이 평가하여 후대하더니 마침내 그를 승상에 임명하였다. 그 당시 승상은 제후가 아니고서는 임명되지 않았던 것인데, 공손홍이 승상으로 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공손홍은 이렇듯 겸손하고 또 겉으로 너그러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음흉하고 시기심이 많았다. 자기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에게도 겉으로는 친한 척했지만, 반드시 그를 보복했다. 그래서 주보언을 죽이고 동중서를 귀양가게 만든 것도 모두 공손홍이 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밥상에는 고기를 한 가지 밖에 놓지 않았고 현미로 밥을 지어 먹었으며, 한편 옛 친구나 친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있는 재산을 모두 털어 도와 주었다. 그래서 그의 집에는 재산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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