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3. 복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다(원앙, 조착)
2) 개혁가는 온전하게 죽기 어렵다(조착)
조착은 일찍부터 법가의 학설을 배운 수재였다. 당시 천하에는 "서경"에 통달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진나라 시절의 박사였던 복생이라는 사람이 "서경"에 통달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90세를 넘긴 노인이었으므로 조정에 불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적당한 인물을 복생에게 파견하여 자기도 배울 수 있도록 그 인물을 천거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천거된 사람이 바로 조착이었다. 조착은 복생에게 "서경"을 배우고 와서 정치를 논할 때마다 " 서경"을 인용하여 조목조목 정리해 말했다. 문제는 그를 매우 아껴 높은 자리에 등용했으며, 특히 태자의 신뢰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태자는 늘 그를 '지혜 주머니'로 부르며 곁에 있게 했다. 조착의 주장은 제후의 영지를 삭감할 것, 법령을 엄격히 적용시킬 것, 농민의 권익을 보호할 것 등이었다. 하지만 그의 견해에 찬성한 사람은 태자뿐이고, 원앙을 비롯한 고급 권리들은 모두 조착을 싫어했다.
개혁과 수구세력
이윽고 문제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바로 경제였다. 경제는 즉시 조착을 중용하여 그의 말에 언제나 따랐다. 이제 모든 실권은 조착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런 가운데 법령들이 잇달아 바뀌었다. 이때 승상 신도가도 조착을 매우 못마땅해 했으나 손을 쓸 수 없었다. 당시 조착의 근무처는 유방의 아버지를 모시는 묘의 경내에 있었는데, 문이 동쪽으로만 나 있어서 출입이 매우 불편했다. 이에 조착은 남쪽으로도 출입할 수 있도록 묘의 바깥 담에 구멍을 뚫어 출입문을 만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승상은, '옳지, 이번 기회에 내 조착이라는 놈을 없애 버려야지.'하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조착은 즉시 경제를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설득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승상은 다음 날 어전 회의에서 조착이 방자하게 묘의 구멍을 뚫은 죄를 들어 조착을 처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조착에게 설득된 경제는 그 의견을 묵살해 버렸다.
"그것은 묘의 담이 아니라 경내의 바깥쪽 담에 불과한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소."
승상은 도리어 사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탄식해마지 않았다. '풋나기 놈을 내가 미리 죽이고 뒤에 폐하께 보고할 것을 그랬나. 황제의 허락을 받고 죽이려다가 내가 당했구나. 이 분함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는 말인가!' 승상은 끝내 그것이 병으로 도져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후 조착의 위세는 더욱 강해만 갔다. 그는 죄과가 있는 고관들의 땅을 삭감했고, 심한 죄가 있을 경우에는 몰수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법령을 개정해 자그만치 30항목의 법령이 바뀌었다. 그러자 고관들 사이에 조착을 원망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두 적수
특히 원앙 조착은 견원지간의 적수였다. 조착이 나타나면 원앙이 자리를 떴고, 원앙이 나타나면 조착이 자리를 뜰 정도였다. 서로 말 한번 주고 받지도 않았다. 어느 날 조착은 원앙이 예전에 오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씌어 취조하게 하였다. 그러나 원앙은 형 집행은 보류되고 다만 파면으로 그쳤다. 그 후 오나라 반란을 일으키자 조착은 이를 갈며 분개했다. '역시 원앙이라는 자가 관련되게 분명해. 반란의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니 이렇게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가. 다시 취조를 해 반드시 놈을 처벌하고 말리라.' 그러나 부하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이미 반란군이 몰려오고 있는데, 이제 원앙을 취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에 조착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 사실을 원앙에게 알려 준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란 원앙은 즉시 두영을 찾아갔다. 두영 역시 조착에 의해 토지를 몰수당하고 복수만을 노려오던 터였다. 원앙은 두영에게,
"이 사건을 직접 황제께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대감께서 만나게 주선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두영은 황제와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드디어 원앙은 황제를 만나 오나라가 반란을 일으킨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이 난을 피흘리지 않고 평정시킬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황제가 귀가 번쩍 뜨이는 듯이 물었다.
"아니, 어떤 방법이 있소?"
"지금 반란의 기치는 황제 주변의 간신을 제거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간신으로 저들이 지목하고 있는 조착을 제거하면 난은 자연히 평정될 것입니다."
개혁가의 최후
그런데 이미 며칠 전에 조착의 아버지가 조착이 염려되어 서울로 찾아왔었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뭐냐? 고관들의 땅을 빼앗고 법을 고치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느냐? 모든 사람들이 네 욕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그러자 조착은 정색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님의 말씀은 다 옳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아니, 나라라고? 나라가 태평하면 우리 조씨는 망해도 좋다는 것이냐? 이제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리고는 이튿날 아버지는 약을 먹고 자살했다. 한편 원앙의 말을 들은 경제는 고민에 빠졌다. '조착은 나라의 보배요, 나의 둘도 없는 충신인데.... 아니지, 난을 평정하려면, 그래서 나라를 지키려면 어쩔 도리가 없지.'
드디어 경제는 결심했다. 며칠 후 조착은 경제의 부름을 받고 의관을 갖춰 수레에 올라탔다. 그러나 수레는 궁궐로 가지 않고 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목이 베어졌다. 하지만 조착을 처형시킨 후에도 반란은 평정되지 않았다. 원래 간신 제거란 명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제는 반란군 진압의 책임을 맡고 있는 등공을 불렀다.
"과연 반란군들이 조착의 처형 사실을 알고 전투를 중지하던가?"
그러자 등공이 대답했다.
"반란을 주도한 오왕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영지를 삭감당하자 분개하여 조착 제거의 명분을 내세웠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신은 이제 천하의 선비들이 입을 다물고 폐하께 직언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뜻인가?"
"원래 조착은 제후들이 비대해지고 강성해져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세력을 통제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영지 삭감은 그 과정에서 나온 좋은 방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개혁이 시행되자 그 자신이 화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안으로는 충신들의 입을 막고, 밖으로는 제후들을 위해 원수를 갚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황공하오나 조착은 죽이지 말았어야 좋았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경제는 한참을 아무 소리도 없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귀공이 잘 얘기했소. 나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소."
3)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명예 때문에 망한다
앞날이란 장담할 수 없다
조착이 죽은 후 원앙은 반란이 일어난 오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오왕은 자기 밑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원앙은 거절했다. 그러자 오왕은 군대 안에 원앙을 가둬놓고 죽이고자 했다. 그런데 전에 원앙이 오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을 때 어떤 호위병이 하녀와 통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원앙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그 호위병을 평상시와 똑같이 대우해 주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 호위병에게, '나으리께서 너의 통정 사실을 알고 계신다'고 귀뜸해 주자, 그는 곧바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원앙은 말을 타고 쫓아가 하녀를 그에게 주고 다시 호위병으로 일하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 그 호위병이 이제 원앙을 감시하는 책임을 맡은 지위에 있게 되었다. 그는 옷가지 등을 팔아 2천 말의 독한 술을 사놓았다. 그때 날씨는 매우 추웠고, 병사들은 목이 말라 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술을 먹이고, 모두 술에 취해 잠이 들자 원앙을 깨웠다.
"나으리께서는 지금 탈출하셔야 합니다. 오왕은 내일 아침에 나으리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원앙이 이 말을 믿지 못하며 물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당신은 누구인가요?"
"예, 바로 옛날 나으리의 하녀를 가로챘던 호위병입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이에 원앙이 놀라 일어나 인사하였다.
"기억이 나오. 그런데 당신께는 부모와 처자가 있는데 이런 일로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저는 이미 망명하려고 부모와 처자를 피신시켜 놓았습니다. 안심하시고 얼른 저를 따르십시오."
그리고는 원앙을 인도하여 잠든 병사들 사이를 헤치며 도망쳤다. 반란이 진압된 후 원앙은 병을 얻어 고향에 머물렀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고, 닭싸움이나 개달리기 등의 놀이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극맹이라는 협객이 원앙을 방문했는데, 원앙은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자 어떤 부자가 원앙을 비난했다.
"극맹이란 자는 도박꾼이라는데, 왜 그런 자를 대우하는 것입니까?"
이에 원앙이 대답했다.
"극맹이 도박꾼인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그의 모친이 죽었을 때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이 타고 왔던 수레만도 천 대가 넘었소. 그는 다른 사람이 급하게 그이 대문을 두드리면 그 부탁을 거절하거나, 있으면서도 없다면서 되돌아가도록 만든 적이 없었소. 그래서 천하 사람들이 지금 우러러보고 있는 사람은 의리있는 협객으로 소문난 계심(계포의 동생으로 용감하고 의협심이 강해 선비들이 앞을 다투어 그와 사귀기를 원했다)과 극맹뿐이오. 지금 당신은 항상 몇 명의 호위병을 데리고 다니지만, 만약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그들만 믿을 수 있겠소? 사람이란 언제 위급한 일이 터질지 모르는 법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크게 꾸짖고는 절교해 버렸다. 사람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모두 원앙을 칭송하였다.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명예 때문에 망한다
원앙은 비록 고향에 내려와 묻혀 살았지만, 황제는 자주 사자를 보내 국정에 관하여 그의 자문을 구하곤 했다. 한편 전에 경제의 아우인 양왕이 자기에게 제위를 물려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때 원앙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는데, 이후 양왕은 원앙에 양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자객을 원앙에게 보냈다. 자객이 서울에 들어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원앙을 칭찬하고 있었다. 자객은 원앙을 찾아갔다.
"저는 나으리를 죽이기 위해 양왕이 보낸 자객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으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겠습니다. 나으리만한 인물을 죽일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십시오. 아직 10여 명의 자객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그 뒤 원앙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원앙은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미행하던 자객에게 칼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원앙은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뛰어난 생각에 의해 여러 가지를 종합함으로써 체계적인 이론을 세웠다. 그는 어진 마음을 바탕으로 정의감에 비추어 세상을 개탄했다. 하지만 효문제가 즉위하자, 그의 재능은 때를 만났다. 그 후 시대는 변하고 바뀌어 오, 초의 반란이 일어나고 효경제를 한번 설득시킴으로써 그의 주장이 관철되었으나, 반란을 평정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는 명예를 중시하고 재주를 뽐냈으나 결국 그 때문에 죽었다. 한편 조착은 젊을 때 자주 조정에 건의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드디어 권력을 얻어 마음대로 행사하면서 법령을 많이 뜯어 고쳤다. 그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 당연히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는 데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데에 몰두하다가 오히려 스스로 망치고 말았다. 옛말에 '옛부터 내려오던 법을 바꾸고 상식을 어지럽히는 자는 죽거나 망한다'고 했는데, 이는 바로 조착의 경우를 가리키던 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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