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3. 복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다(원앙, 조착)
1) 명예로 일어선 자 명예로 망한다(원앙)
여후의 시대가 끝나고 천하는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유방과 더불어 한나라를 세운 공신들은 거의 죽고 없었다. 이제 전쟁터에서 용맹스럽던 장군의 시대는 가고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가 제일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른바 '관료 체제'가 탄생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세대교체를 동반하였다. 이러한 시대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 바로 원앙이었다. 원앙은 어릴 적에 여씨 문중의 세력가였던 여록의 식객이었다. 그러다가 여씨 세도가 끝나자 형의 도움으로 황제를 모시는 비서관이 되었다.
신하를 다스리는 법
당시 승상은 주발 장군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공로를 지나치게 과신하여 황제인 문제조차 얕보고 있었다. 오히려 황제가 그를 정중하게 대접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주발이 끝내고 돌아갈 때 황제가 따라가서 배웅을 할 정도였다. 어느 날 황제가 역시 주발을 배웅하는 모습을 지켜본 원앙은 따로 황제에게 진언했다.
"폐하께서는 승상을 어떤 인물로 생각하십니까?"
"그야 나라의 중심 기둥이겠지."
그러자 원앙은 이렇게 말했다.
"승상께서는 고작 공신일 뿐 나라의 중심 기둥이 아닙니다. 나라의 중심 기둥이란 오직 황제뿐인 것입니다. 사실 승상 주발은 여후가 천하를 쥐고 흔들 때 그저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 여후가 세상을 뜨고 각지에서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자, 우연히도 병권을 쥐고 있던 주발 장군이 고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주발 대감은 걸핏하면 폐하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폐하 역시 그것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군신의 도리에 맞지 않게 되고, 폐하께서도 좋지 않게 됩니다."
그 뒤로 황제는 주발에 대해 위엄있게 대하였고, 이에 따라 주발도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주발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아내고 원앙을 크게 꾸짖었다.
"젊은 놈이 나를 짓밟으려 하다니!"
하지만 원앙은 한 마디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주발이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이때 주위에서 아무도 주발을 변호하지 않았으나, 오직 원앙만이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리고 원앙의 주장은 크게 영향을 끼쳐 주발이 풀려나오는데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이후부터 주발과 원앙은 가깝게 지냈다.
원앙의 말이라면
문제 3년에 문제의 동생인 회남왕이 벽양후 심이기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뿐 아니라 당시 회남왕의 오만방자함은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원앙이 문제에게 아뢰었다.
"교만한 제후를 처벌하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회남왕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뒤 회남왕의 횡포는 더욱 극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모반 사건이 발각되었는데, 취조하는 과정에서 회남왕의 관련 사실이 밝혀졌다. 그때서야 비로소 문제는 회남왕을 직접 취조하고, 그를 귀양보냈다. 이때 원앙이 다시 아뢰었다.
"폐하께서 평소에 감독을 소홀히 하셔서 이러한 사태까지 빚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귀양을 보내시면 그 멀고 먼 귀양길을 회남왕이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만약 도중에 회남왕의 신변에 일이 생기는 날이면, 폐하께서는 광대한 천하를 다스리면서 동생 하나 포용하지 못하고 죽였다는 오명을 벗기 어렵습니다. 아무쪼록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 그 의견을 묵살하고 귀양을 강행시켰다. 그런데 원앙의 예언대로 회남왕은 귀양길에서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문제는 식사를 하다가 젓가락을 떨어뜨리며 통곡했다. 원앙은 문제 앞에 엎드려 자기가 좀더 강력히 요청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죄하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나야말로 당연히 그대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소."
"폐하, 이미 지나간 일이오니 너무 자책하시지 마옵소서. 이 정도로 폐하의 높은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는 세상에 비길 수 없는 세 가지의 훌륭한 공적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공적이라니, 무슨 공적이오?"
그러자 원앙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첫째, 폐하의 높으신 효도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모후이신 박태후께서 3년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계실 때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않은 채 간호하셨고, 약은 반드시 먼저 맛본 후에 드리셨습니다. 이는 효자로 이름난 증삼을 능가하는 효도이옵니다. 둘째, 폐하께서는 여시 일족의 횡포가 끝난 직후 변경 지방에서 장안까지 고작 6대의 수레로 달려 오셨습니다. 당시 장안은 그야말로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복마전과 같은 불안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맨몸으로 달려오신 페하의 용기에는 용기의 화신이라 하는 맹분이라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 폐하께서는 천자의 자리를 다섯 번이나 사양하셨습니다. 고결한 선비로 추앙받는 허유조차도 한 번밖에 사양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그보다 네 번이나 더 사양하는 미덕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번 일도 단지 회남왕의 과오를 깨우치려 한 목적이었는데, 병사하신 것은 전적으로 호위 관리의 잘못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문제는 기분이 풀리는 듯했다. 문제는 다시 원앙에게 물었다.
"그러면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회남왕의 세 아드님을 잘 대우하십시오."
그리하여 문제는 회남왕의 세 아들에게 각각 왕위를 주었다. 그 뒤 원앙의 명성은 천하에 드날리게 되었다. 한편 어느 날인가 문제가 황후와 신부인을 데리고 상림원에 나들이를 나갈 때였다. 그때까지 신부인은 황후와 똑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상림원을 지키던 관리들도 예전처럼 두 사람의 자리를 나란히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원앙이 그것을 보고는 신부인의 자리를 한칸 내려놓았다. 그러자 신부인은 화가 나서 궁궐로 돌아가 버렸다. 문제도 기분이 잡쳐 그대로 궁궐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런데도 원앙은 태연한 표정으로 궁궐로 들어와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신분의 상하를 엄격히 구분해야만 상하의 관계가 원만해지는 법입니다. 폐하께 황후가 계시는 이상 신부인은 측실입니다. 정실과 동렬의 지위에 있어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으라고 하신 일이 도리어 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옛날 여태후와 척부인의 '사람돼지' 사건을 설마 잊고 계시지는 않겠지요." 이 말을 들은 문제는,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이오."하며 즉시 신부인을 불러 원앙의 깊은 뜻을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신부인은 원앙에게 고맙다며 금 50근을 선물로 주었다.
지나치면 해롭다
그런데 원앙은 매번 너무 직접적으로 황제에게 의견을 말했으므로 황제도 차츰 그를 멀리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지방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원앙은 부하들을 아끼고 뒤치닥거리를 도맡아 해주었기 때문에 부하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 뒤 원앙은 오나라의 재상으로 가게 되었는데, 출발하기 전에 조카가 말했다.
"오나라 왕은 자만심이 많다고 소문나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는 간신배들이 우글대고 있지요. 그렇다고 그들을 비판해 바로잡을 생각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모함을 당하시든가 칼을 맞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저 하루 종일 술이나 마시는 게 제일 좋을 듯합니다. 이따금씩 오나라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시면 충분하겠지요. 그 이외의 말은 전혀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원앙은 그 말대로 하였다. 그러자 오왕은 그를 융숭하게 대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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