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2. 북방의 정복자(흉노전)
백등산에서 유방을 크게 혼내다
묵특은 그 후 북방의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흉노의 백성들은 모두가 묵특에 감복하여 그를 현군으로 우러러 보게 되었다. 유방이 중국 천하를 평정하여 천하 통일을 이룩한 것이 그 무렵의 일이었다. 유방은 천하를 평정하자 한왕 신(유명한 한신 장군과는 동명이인이다)을 흉노와의 경계 지방으로 파견하여 마읍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그러나 한왕 신은 얼마 후 흉노의 맹공격을 받고 수도인 마읍을 포위당하자 여러 차례 흉노에 사자를 보내 협상하려고 했다. 이때 유방은 구원병을 파견했으나 한왕 신이 자주 흉노에게 사자를 왕래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 모반하지 않을까 의심하였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 엄중히 문책하였다. 이에 대해 한왕 신은 아무리 변명해도 들어주지 않자 처형될 것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흉노에 항복하고는 오히려 한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한나라는 반격에 나서 한왕 신의 군대를 격파하니 그는 그대로 흉노로 도망쳤다. 그 후 한왕 신을 제 편으로 만든 흉노는 그의 휘하 부대를 포함하여 정예 부대를 투입, 맹렬한 기세로 남하하여 진양성까지 육박하여 왔다. 드디어 한나라와 흉노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유방은 먼저 사람을 보내 정탐하도록 했다. 그러나 묵특은 이미 한 나라의 정탐꾼이 올 줄 알고 군대와 살찐 말들은 모두 숨겨 놓고 노약자와 빼빼 마른 말만을 보이게 하였다. 이에 정탐꾼이 돌아가 유방에게, "묵특을 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유방은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 유경을 보내 살피도록 했다. 그러자 유경이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무릇 전쟁을 하는 두 나라는 서로 자기들의 강한 점을 자랑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도 노약자와 초라한 말들만 보이는 것은 필시 무슨 음모가 있는 듯합니다. 공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유방은 크게 화를 냈다.
"저 놈이 망령된 말을 해 병사들의 사기를 꺾으려 드는구나."
그러면서 당장 유경을 크게 화를 냈다. 유방은 곧바로 흉노 토벌군을 편성해서 스스로 전선으로 향했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 전장에는 혹한이 내습하고 눈이 내렸다. 한나라 군대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병사들은 잇달아 동상에 걸려 10명 중 2, 3명은 손가락을 잃었다. 묵특은 이를 틈타 패주를 가장하여 한군을 북방으로 유인하는 작전으로 나왔다. 과연 한군은 영문을 모르는 채 추격해 왔다. 이에 묵특은 정예군을 뒤에 감추고 약병을 방패로 세웠다. 완전히 흉노를 얕보게 된 한나라는 전군을 동원하고, 또 유방은 전군의 선두에 서서 평성 지방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추격을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대열이 길게 늘어져 후속 보병 부대는 아득한 후방에 처져 있었다. 묵특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정예 40만 기를 내보내 유방이 이끄는 선두 부대를 백등산 위에서 완전히 포위했다. 한군은 7일 동안 분단된 채 속수무책으로 포위되었다. 하지만 후속 부대는 구출 작전에 나서지도 못하였고, 설상가상으로 군량조차 보급되지 않았다. 이때 흉노의 기마대는 서쪽은 모두 백마요, 동쪽은 모두 청방마(흰바탕에 푸른 색이 섞인 말), 북쪽은 모두 흑마, 남쪽은 모두 성마(적황색 말)로 위용을 자랑하면서 물샐 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작전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이때 항우와의 전쟁 때부터 기발한 꾀로 번번이 유방을 살려낸 바 있던 예의 모사꾼 진평이 또다시 꾀를 냈다. 진평은 묵특의 부인에게 밀사를 통해서 정중히 선물을 보내며, 한편으로는 곧 빼어난 미녀들을 선우에게 바칠 계획이라고 전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그녀는 혹시 한나라의 뛰어난 미녀들에게 사랑을 빼앗길까봐 불안해 묵특에게 이렇게 호소한 것이다.
"이웃한 나라의 군주와는 서로 고난을 주고 받지 마십시오. 설혹 이 싸움에 이겨서 한나라 영토를 모두 얻는다 하더라도 당신이 계실 곳이 못 됩니다. 게다가 유방에게는 하늘의 가호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부디 깊이 생각하시어 결정하십시오."
때마침 묵특은 자기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던 한왕 신의 장군들이 약속 날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자, 그들이 유방과 짜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부인의 호소를 받아들여 포위망의 일부를 풀었다. 유방은 그것을 보고 전군에게,
"활에 화살을 재어 힘껏 당겨라."
하고 명령하며 화살 끝을 흉노에게 향하면서 포위가 풀린 곳으로 단숨에 달려나가 간신히 후방의 대부대와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자 묵특은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철수하였으며, 유방도 지친 몸을 이끌고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유방은 돌아오자 마자 묵특의 음모를 경고했던 유경을 석방하면서,
"그대 말을 듣지 않아 백등산에서 큰 곤욕을 치뤘소. 그때 거짓을 아뢴 자는 엄벌하겠소."하면서 맨 먼저 정탐했던 부하를 처형시켰으며, 한편 유경의 벼슬을 올려 주었다. 이때 유경이 유방에게 아뢰었다.
"지금 무력으로는 도저히 흉노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황공스러운 말씀입니다만, 큰 공주님을 선우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들도 공주님을 정실 부인으로 맞을 것이며, 그래서 아들을 낳게 되면 분명히 태자로 삼을 것입니다. 묵특은 폐하의 사위가 되고 그가 죽으면 폐하의 외손자가 선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흉노는 점차 신하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참 좋은 생각이오."라며 찬성하였다. 하지만 여후는 이 말을 듣고 밤낮으로 울면서 사정했다.
"제게는 오직 딸이 하나 있을 뿐인데, 그 딸을 어떻게 흉노에게 보낸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유방은 할 수없이 양가집 딸을 큰 공주로 속여서 유경과 함께 흉노로 보냈다. 그리하여 한나라와 흉노는 드디어 평화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흉노와의 평화조약은 유명무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새가 모여들 듯 거미가 흩어지듯
당시의 중국은 유방이 항우와 격렬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어서 싸움에 지쳐 있었다. 묵특이 세력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즈음 흉노측에서는 활을 쏠 줄 아는 병사가 실로 30여만 명에 달하고 있었다. 흉노는 전쟁을 할 때 반드시 달의 상태를 보았다. 달이 차면 공세로 나가고 달이 기울면 철군한다. 또한 고을 세운 자, 적을 포로로 한 자들에게는 상으로 큰 잔의 술이 주어졌다. 포획물은 포획한 당사자의 소유물이 되며, 포로도 사로잡은 군인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용감히 싸우며, 특히 적을 유인해서 일망 타진하는 전법에 능했다. 적이라고 생각되면 새가 모이듯 일제히 무리져 오며, 패색이 짙어지면 거미가 흩어지듯 도망쳤다. 전사자의 시체를 추스려 돌아온 자에게는 죽은 자의 재산이 그대로 부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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