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9. 여걸 천하(여후, 진평)
1) 유방이 천하를 얻은 이유는?
큰 바람 일어나 구름 날아오른다
천하를 덮는 위세와 더불어 고향에 돌아오니
어찌 용맹한 자와 더불어 이 땅을 지키지 않을 것인가!
유방은 천하 통일을 이룬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인 패에 돌아와 잔치를 벌이고 이 노래를 불렀다. 유방은 노래를 부르며 일어나 춤을 추었고 감개무량해 눈물까지 흘렸다. 이름하여 대풍가이다. 난세에 큰 뜻을 품고 일어나 여러 영웅들의 도움을 받으며 천하를 평정하고 금의환향한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용맹스러운 부하들의 도움으로 천하를 지키겠다는 희망도 드러내고 있다. 일찍이 유방은 신하들 앞에서,
"그대들은 왜 항우가 천하를 잃고 내가 천하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하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이때 왕릉이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부하들을 가볍게 생각하시는데 반해 항우는 솔직하며 부하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부하에게 성을 공략케 한 후 항복해 오는 자를 부하가 부리게 하고 땅과 재물을 똑같이 나누십니다. 이에 비해 항우는 현명하고 재주있는 부하를 시샘하고 공이 있는 부하를 의심합니다. 그래서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부하에게 공을 돌리지 않고 재물을 얻어도 부하에게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항우는 비록 70번에 걸쳐 계속 승리했지만 결국 이 때문에 천하를 잃은 것입니다." 그러자 유방이 말했다.
"좋은 말이오.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오. 장막 안에서 계략을 짜서 천 리 밖의 승리를 이끌어 내는 면에서 내가 장량을 따르자 얻게 된 것이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훌륭한 이들을 잘 활용하였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천하를 얻게 된 것이오. 하지만 항우는 천하의 재사인 범증이 있었지만 활용하지 못했소. 그것이 나에게 사로잡힌 이유인 셈이오."
창업은 쉽고 수성은 어렵다
유방이 '대풍가'를 부른 것은 반란을 일으켰던 경포를 토벌하고 돌아오던 길에 고향을 들었을 때였다. 더구나 그는 그 토벌전에서 화살을 맞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찍이 장량이 해하 전투에 앞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장군들이 필요하다'고 했던 한신, 팽월, 그리고 경포! 그 세 용맹한 부하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던, 그리하여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기막힌 탄식을 들어야 했던 유방이었다. 그라고 사무친 감회가 없었겠는가? 그래서 '창업은 쉽고 수성은 어렵다'고 했는지 모른다. 어쨌던 이제 유씨 왕족이 아닌 왕으로는 오직 연나라의 왕인 노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원래 노관은 유방과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죽마고우였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태어났으며, 아버지끼리도 친구였다. 그래서 친구끼리 같은 날에 사내 아기를 낳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양고기와 술을 가지고 몰려들어 축하하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노관은 태어날 적부터 계속 유방과 함께 다녔으며, 항우와 천하 결전을 벌일 때도 언제나 함께 있었다. 심지어 침실까지도 출입할 만큼 친한 사이였다. 천하 통일 후에도 기꺼이 유방은 노관에게 연나라의 왕을 내 주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결코 노관만은 배반하지 않겠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노관은 진희가 망하면 바로 자기가 다음으로 당할 차례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부하를 진희에게 보내 최대한 오랫동안 전쟁을 계속해 승패를 결정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그 후 진희가 죽고 반란이 진압되자, 진희의 부하가 이렇게 폭로해 버렸다.
"연나라 왕 노관이 부하를 진희에게 보내 공모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유방이 진상을 알아보려고 노관을 불렀으나, 노관은 두려워 한 나머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이에 유방의 의심은 짙어갔다.이에 노관은 더욱 무서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살면서 탄식했다. '유씨가 아닌 왕은 나뿐이다. 그런데 지난해 한신이 죽었고 또 팽월도 죽었다. 이 모두 여후의 음모였다.
'지금 폐하께서 병이 들어 나라 일은 여후가 틀어쥐고 있으면서, 공이 있는 신하들을 모두 죽이고 있구나!'
그런데 이 탄식소리를 누군가가 듣고 유방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유방은 크게 노했다. 설상가상으로 흉노에서 항복해 온 자 하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장승이라는 자가 흉노에 와 있는데, 알고보니 연왕 노관이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장승은 원래 노관이 흉노에 정탐하기 위해 보낸 밀사였다. 그러나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과연 노관이 배반했구나!"하고 판단해 번쾌를 시켜 토벌을 명령했다. 이때 노관은 가족들과 수천의 병사들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피다가 자기가 직접 유방을 만나 사죄하려고 했다. 그러나 때마침 유방이 죽자, 그는 할 수 없이 부하들을 데리고 흉노 땅에 들어가 언제나 한나라에 다시 돌아갈 날만 생각하다가 1년 만에 그곳에서 죽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나라는 유방의 친족과 여후의 친족만이 권세를 잡게 되었다.
유방이 죽기 전 앓아 누웠을 때였다.
여후가 다가와 유방에게 물었다.
"폐하께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재상을 맡겨야 합니까? 지금 소하 대신도 너무 연로하셨는데...."
"소하 뒤는 조참에게 맡기시오."
"그 다음은 누가 맡아야 하는지요?"
"왕을이 적임자이지만, 조금 우직하니 진평이 그를 돕도록 하시오. 진평도 비록 략이 뛰어나지만 단독으로 국사를 맡기 어렵소. 그러니 정치는 왕릉과 진평 두 사람에게 맡기고, 군사는 중후하고 소박한 주발에게 맡기시오. 유씨를 안정시킬 사람은 반드시 주발뿐이니, 그에게 총사령관을 맡기시오."
여후가 다시 물었다.
"그 후는 누가 좋습니까?"
유방은 아내의 욕심에 기가 막혔다.
"아니,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시오?"
유방은 드디어 기원 전, 195년,그러니까 천하통일을 이룬 지 8년이 되던 해 4월 장락궁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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