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7. 하늘이 내린 명의(편작, 창공)
1)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일으켰을 뿐이다(편작)
비방을 전수받다
편작은 발해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성은 진이고 이름은 월인이었다. 편작이라는 이름은 후에 그가 유명해졌을 때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편작은 젊어서 어느 고관의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장상군이라는 손님이 그 집에 찾아왔는데, 그냥 보기에도 범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장상군은 그 뒤로도 자주 그 집을 찾아왔으며, 편작은 늘 그를 정성스럽게 모셨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장상군이 찾아 오더니 편작을 불러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의 만병을 치료하는 비방을 알고 있다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 기력이 없지. 그래서 그대에게 비방을 전수하려 하네. 다만 결코 남에게 알려서는 안되네."
편작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장상군은 품 속에서 약을 꺼내 편작에게 주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이 약과 함께 한 달간 먹어 보게, 그러면 무엇이든 볼 수 있을 것일세."
라고 말했다. 또 비방이 씌어 있는 책들을 모두 편작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편작은 그가 일러준 대로 한달간 약을 복용하였다. 그랬더니 담장너머의 사람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자들의 내장 속 종기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그저 맥을 짚어서 알 수 있노라고 말할 뿐이었다. 편작의 명성은 순식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흘 안에 깨어나리라
당시 진나라의 세도가였던 조간자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더니 5일이 되어도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대신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편작을 부르기로 했다. 이윽고 편작이 도착해 진찰을 해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걱정할 것이 없소. 옛날 목공도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었는데 일주일 만에 깨어났습니다. 그때 목공이 깨어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천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매우 즐거웠소. 천제는 이웃 진나라가 머지 않아 큰 혼란에 빠져 5대에 걸쳐 어지러우나 그 뒤에 천하의 패자가 될 인물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빨리 죽고 그의 아들이 뒤를 이으면 풍속이 문란해진다고 말씀하셨소.' 과연 목공의 말대로 진나라는 헌공 때 나라가 어지러웠으나 문공이 나타나 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양공은 한때 목공의 군대를 효산에서 격파했으나, 그 뒤 숱한 난행을 범했지요. 지금 조간자 대감의 증세도 목공과 똑같으므로 사흘 안에 반드시 깨어나실 것이요. 그리고 깨어나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이틀 반 만에 조간자는 깨어났다 그리고는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제가 계신 곳에서 즐겁게 지냈소. 약사들이 쭉 늘어 앉아서 흥겨운 음악들을 연주했고 또 여러 가지 진기한 무용도 감상했소. 그런데 갑자기 곰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에게 덤비지 않겠소. 내가 급히 활을 쏘니 곰은 쓰러졌소. 그러자 더 큰 곰이 또 나타났소. 이번에도 활을 쏘니 그 곰 역시 쓰러졌다오. 그대 문득 천제 계신 쪽을 보니 내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러면서 천제는, '이 아들이 크거든 이 개를 주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책 땅의 개를 내게 주시었소.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소. '진나라는 머지 않아 쇠약해져서 멸망하지만, 너희 조씨 가문은 점점 번성하리라. 다만 그곳을 언제까지 지킬 수는 없구나.'"
그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편작이 예측한 것과 똑같아 매우 놀라워하였다. 이때 조간자는 편작이 자기가 깨어날 것을 진단했다는 얘기를 듣고 편작에게 논밭을 많이 하사하였다.
"건강한 사람을 환자 취급하다니"
그 뒤 편작이 제나라를 방문하는 길에 환공을 만나게 되었다. 환공을 만나자 편작이 신중하게 말했다.
"지금 귀공께서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피부에 머물러 있는 정도이니, 쉽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놔두시면 악화될 뿐입니다."
그러자 환공이 크게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처럼 건강한 사람을 병자 취급하는 거요?"
그러면서 편작이 물러나가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투덜거렸다.
"의사라는 사람이 자기 돈벌 생각만 하는군."
닷새 후에 편작은 다시 환공을 찾아왔다.
"귀공의 병환이 이제 혈맥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놔두면 곤란해집니다."
그러나 환공은,
"난 별로 이상이 없소. 생사람 잡지 마시오!"
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뒤 닷새 후, 편작이 다시 찾아왔다.
"이제 병환이 위장까지 이르렀습니다. 손을 쓰지 않으면 목숨까지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편작이 물러가자 환공은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짜증을 냈다. 또 닷새가 지났다. 이번에도 편작이 찾아왔지만 먼 곳에서 인사만 한 채 그대로 물러갔다. 그랬더니 환공은 이상하다고 느껴 신하를 시켜 그 이유를 묻게 했다. 이에 편작이 말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에는 탕약과 고약으로도 고칠 수 있소. 혈맥까지 진행되어도 침으로 고치지요. 또 위장까지 들어간다면 약을 복용해서 나을 수 있소. 그러나 병이 골수에까지 미치게 되면 생명을 다룬다는 신이 내려와도 손 쓸 수가 없는 것이오. 지금 환공의 병은 이미 골수에 비치고 있소. 그래서 치료를 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과연 닷새 만에 환공은 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리고 급히 편작을 불렀으나, 편작은 이미 국외로 떠난 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공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일으켰을 뿐이다
언젠가 편작은 괵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백성들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태자가 금방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편작이 궁궐 앞에 가서 의관을 만났다.
"태자는 무슨 병이었습니까?"
그러자 의관이 대답했다.
"태자의 병은 피의 순환이 불순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기가 나쁜 기운을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기는 완만해지고 음기가 치솟아 죽은 것입니다."
"죽은 시간은 언제입니까?"
"날이 밝을 무렵이었지요."
"입관은 했습니까?"
"아직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입관은 하지 않았습니다."
편작이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편작이라는 사람이온데, 지금까지 태자를 뵐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자를 다시 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말에 의관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미 죽은 태자를 어떻게 살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옛날 유부라는 명의는 아무런 것도 쓰지 않고 잠깐 환부를 보고 그 징후를 살피며 동쪽의 맥을 짚어 보고는 살을 가르며, 힘줄은 잇고, 뇌수를 누르며, 위장을 씻고,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쳤다고 합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와 같다면 혹시 살려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한데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삼척동자도 웃을 노릇입니다."
그러자 편작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당신의 의술은 대나무통으로 하늘을 보고 틈 사이로 모양을 들여다 보는 것이므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안색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 병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의 바깥쪽을 듣고 속을 알며, 속을 듣고 바깥쪽을 압니다. 병의 증세는 밖으로 나타나는 거이니 천리 밖까지 가서 진찰하지 않아도 다만 증세를 듣는 것만으로 병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덮어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말을 정 믿지 못하시면 당신이 들어가서 태자를 살펴 보십시오. 귀가 울고 코가 팽팽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허벅다리는 아직도 따뜻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의관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는 궁궐로 들어가 이 사실을 괵나라 군주에게 보고했다. 군주는 즉시 편작을 불러 들였다.
"선생의 명성은 저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나라에 오셔서 태자를 염려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정말 제 아들을 살리실 수 있으신지요?"
군주는 그러면서 흐느껴 울었다.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이 눈썹 가득 고였으며, 급기야 얼굴이 온통 일그러졌다. 편작은 말했다.
"태자의 병은 이른바 시궐이라는 것입니다. 양기가 음기 속으로 흘러 들고 그것이 위를 움직이며 혈맥에 엉겨 붙었다가 다시 갈라져 방광까지 내려갑니다. 말하자면 음기는 위로 올라가고, 체내를 돌아 아래로 내려온 양기는 위로 오를 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음양의 조화가 무너져 얼굴빛이 파리해지고 몸은 움직이지 못해 죽은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양기가 음기 속으로 들어가 오장을 지탱하면 살고, 음기가 양기 속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이런 일은 대개 몸 속에서 오장의 기운이 치솟을 때 갑자기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편작은 제자에게 침을 갈게 하고 태자의 몸 바깥쪽에 있는 삼양과 오회에 침을 놓았다. 그랬더니 조금 뒤에 태자가 깨어났다. 그 뒤 편작은 5푼의 고약을 만들고 팔푼의 약을 섞어서 달인 다음, 이것을 양 겨드랑이 밑에 발라 따뜻하게 찜질을 했다. 그러자 태자가 일어나 앉았다. 다시 음양의 기를 조절하고 20일 동안 탕약을 먹이니 태자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편작은,
"내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낸 것이 아니라, 다만 당연히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일으켰을 뿐이다."고 말했다.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은 불길함의 징조이다
편작의 이름은 갈수록 드높아졌다. 그래도 편작은 천하를 돌아다니며 손수 치료에 나서고 있었다. 조나라에서는 주로 부인병 치료를 하게 되었고, 주나라에 가서는 노인병 치료에 주력했다. 또 진나라에서는 주로 어린이들을 치료하였다. 이렇듯 편작은 가는 곳마다 그곳 사정에 따라 치료를 했던 것이다. 편작은 의술을 발전시키고 집대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는 점쟁이나 주술에 의한 병의 치료에 강력히 반대했다.
"의약을 믿지 않고 점쟁이나 주술만 따른다면 나을 병이 없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무당이나 주술사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으며, 재능없는 의관들도 그의 높은 의술을 질투하였다. 그가 진나라에 있을 때 그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왕이 치료를 부탁했다. 이때 진나라의 시종의로 있었던 이혜는 편작을 크게 질투하여 그를 없애려고 하였다. 드디어 이혜는 자객을 보내 편작을 죽였다. 그렇게 편작은 죽었지만 그의 의학 이론과 기술은 중국 의학계의 귀중한 보고가 되었다. 그의 의학 이론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난경"이라는 책으로 정리되었으며, 사람들은 편작을 추모하여 약왕이라 부르고 중국 의학의 시조로 받들고 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얼굴이 곱든 밉든 궁중에 있으면 질투를 받게 되고, 선비는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조정에 있으면 의심을 받는다. 편작은 그 신기 때문에 결국 화를 입어야만 했다. 노자는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은 불길함의 징조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편작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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