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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5. 천하가 붙잡아도 나의 길을 가련다(노중련, 추양)
1) 지혜로운 자는 때를 잃지 않는다(노중련)
동해에 빠져죽을지언정 굴복할 수는 없다
노중련은 제나라 사람으로 특이하고 탁월한 계획을 짜기 좋아했으나, 벼슬에는 도대체 뜻이 없었다. 당시 조나라는 진나라 백기의 공격을 받아 장평에서 군사가 전멸하여 40여만 명이나 죽었다. 그러고도 진나라는 다시 한단을 포위했기 때문에 조나라 왕은 공포에 질렸다. 그런데도 제후의 원군들은 진나라를 구하려고 했으나, 진나라가 두려워서 진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장군인 신원연을 한단에 잠입시켜, 조나라의 평원군에게 이렇게 건의했다.
"진나라는 전에 제나라의 민왕과 세력을 다투며 제왕이라 칭했고, 그 우에 이 칭호를 서로 안 쓰기로 했는데, 이제 제나라 왕은 그 세력이 약해지고 진나라만이 천하에서 옹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나라가 갑자기 조나라 도읍을 포위한 것은 꼭 한단을 손에 넣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제왕의 칭호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신을 파견해서 진나라왕을 받들고 제왕의 칭호를 써 주게 되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기뻐하며 포위를 풀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평원군은 주저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포위하고 있는데, 위나라 왕이 진나라 왕을 제왕이라 칭하라고 권유한다는 말을 듣자, 노중련은 평원군을 만나서 물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에 평원군이 대답했다.
"내가 뭐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앞서 40만의 대군을 나라 밖에서 잃고 지금 또 나라 안에서 한단을 포위당했건만 격퇴시킬 수조차 없습니다. 위나라는 신원연을 파견하여 진나라 왕을 제왕이라 칭하라고 권하는데, 나로서 뭐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중련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나으리를 천하의 현공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천하의 현공자가 아니심을 알았습니다. 위나라의 신원연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나으리를 위해 그 사람을 만나서 책망하고 쫓아버릴까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소개하여 선생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평원군은 바로 신원연을 만나서 말했다.
"조중련이란 사람이 지금 이 곳에 와 있습니다. 내가 소개하여 장군과 만나시게 하고 싶습니다."
이에 신원연이 말했다.
"노중련 선생은 제나라의 높은 선비라고 들었는데, 저는 남의 신하로서 사명을 띠고 있는 몸입니다. 직분이 있는 몸인지라 노중련 선생과 만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평원군은 계속 고집했다.
"나는 이미 선생과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원연은 하는 수 없이 만나겠다고 승낙했다. 그런데 노중련은 신원연을 만나고도 입을 열지 아니했다. 신원연이 먼저 노중련에게 말했다.
"내가 이 포위된 성 안에 있는 사람을 보아하니, 모두 평원군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의 풍모를 뵈오니, 선생께서는 조금도 평원군에게 의지하려는 사람 같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이 포위된 성 안에 머무르시는 겁니까?"
그러자 노중련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세상에서는 포초( 주나라의 선비로 세상을 한탄하며 나무를 안은 채 말라죽었다)를 보고 너그럽지 못하고 성질이 까다로워서 죽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모르고 그저 한 몸을 위해 죽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예의를 돌보지 아니하고 적의 목을 많이 베는 것만을 능사로 아는 나라로서, 권모술수로 군사를 부리고, 노예처럼 백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진나라가 소원대로 제왕이 되어 천하의 정치를 그릇되이 하려고 한다면 나는 동해에 빠져 죽을지언정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참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장군과 만나자고 한 것도 그러한 진나라를 누르고 조나라를 도와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에 신원연이 물었다.
"선생께서 도우시겠다니, 대체 어떤 방법으로 도우시겠단 말씀입니까?"
"나는 위나라와 연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도와주도록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나라와 초나라로 틀림없이 도울 것입니다."(물론 이 말은 실현성은 약하지만 절대 진나라에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일종의 호기로운 선언이었다) 그러자 신원연이 다시 물었다.
"연나라는 그렇다치고 위나라 일이라면 저도 위나라 사람이니 조금은 그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위나라를 설득하여 조나라를 도우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노중련이 이 말을 받았다.
"위나라는 진나라가 제왕의 칭호를 쓰게 되면 어떤 해독이 있는가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이 해독을 위나라에 알려 주면 반드시 조나라를 도울 것입니다."
"선생, 저 하인들을 보십시오. 열 명의 하인이 한 사람의 주인을 따르는 것은 힘으로 이길 수 없어서가 아니고, 지혜가 미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주인이 무서워서입니다."
그러자 노중련이,
"아아! 위나라는 진나라와 비교할 때 하인과 같다는 말씀이오?"라고 탄식하며 말했다.
"그렇소이다."라고 신원연이 대답했다. 그러자 노중련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진나라 왕에게 위나라 왕을 삶아서 젓을 담그라고 해야겠소이다."
신원연은 불유쾌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의 말씀은 좀 지나치십니다. 선생이 무슨 방법으로 진나라 왕에게 위나라 왕을 삶아서 젓을 담그게끔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노중련이 말을 이었다.
천하 제1의 현사
"노여워하실 것이 아니라 들어 보시오. 그렇지 않아도 그 말을 하려고 했었소. 옛날 구후, 악후, 서백창은 주왕을 섬기던 삼공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오. 그런데 구후에게 미모의 딸이 있어 주왕에게 바쳤던 바, 주왕은 그 딸이 추녀라며 구후를 죽여 젓을 담갔었소. 악후가 이것을 보고 굳이 말리며 간하자, 주왕은 악후도 죽여서 건포를 만들었소. 문왕(서백창)은 이 말을 듣고 탄식했기 때문에 유리 지방에 백 일이나 유폐되었다가 죽을 뻔했었소. 위나라 왕은 지금 똑같은 왕의 처지이면서 무슨 까닭에 갑자기 젓이나 건포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요? 지금 진나라가 천하의 대국이면 위나라 역시 대국이오. 똑같이 대국으로서 다같이 왕이라고 부르는데, 한 번 싸워서 진나라가 이겼다하여 진나라 왕을 제왕이라고 부른다면 삼진의 대신들을 종이나 첩만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오. 더구나 진나라의 소망이 이루어져서 제왕의 칭호를 받게 되면, 그 즉시로 제후의 대신들을 갈아치울 것이오. 진나라가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의 관직을 빼앗고 진나라에게 잘 보인 사람에게 관직을 줄 것이며, 미운 자의 관직도 빼앗아 아끼는 자에게 줄 것이오. 또 자기들의 자녀 또는 천첩을 제후들에게 아내로 삼으라고 하여 위나라 궁중에도 들여 보낼 것인즉, 이렇게 되면 위나라 왕인들 어찌 평안하게 지낼 수 있겠소. 그리고 장군도 어찌 총애를 계속 받을 수 있겠소."
이 말을 들은 신원연은 일어나서 재배하고
"선생을 보통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이제야 선생께서 천하의 현사이심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곳을 떠나면 두 번 다시 진나라 왕을 제왕이라 말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사과했다.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전해 듣자 두려워하여 50리쯤 군사를 후퇴시켰다. 또 때마침 신릉군이 조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서 진나라 군사를 공격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철수하였다. 그 후 평원군은 노중련에게 벼슬을 내리려 했으나, 노중련은 거듭 사양하여 사자가 세 번씩이나 왕래했건만 끝내 받지 아니했다. 그래서 평원군은 잔치를 베풀고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서 노중련의 건강을 축하하면서 천금을 바쳤다. 그러자 노중련은 웃으며 말했다.
"천하의 선비된 자가 귀한 까닭은 남을 위하여 걱정을 덜어주고 어려움을 없애주며,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고도 보상을 받는 일이 없기 때문이오. 보상을 받는 것은 장사꾼이나 할 일이지,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노중련은 평원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난 다음, 평생에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한 장의 편지로 성을 함락시키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 연나라의 장군이 제나라를 쳐서 요성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요성 사람 중 한 사람이 그 장군을 연나라 왕에게 모함했다. 이에 장군은 문책받을 것이 두려워 요성을 지키고 본국에 귀국하지 않았다. 그 뒤 제나라의 전단이 요성을 쳤는데, 1년여 동안 수많은 전사자만 내고 요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노중련이 나서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거역하여 불리한 처지에 빠지지 아니하며,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런 사람은 제 몸만을 생각하여 임금을 저버리지 아니한다'란 말이 있습니다. 지금 장군은 모함을 당한 한때의 노여움 때문에 연나라 왕을 배신하고 임금 밑에 믿을 만한 신하가 없음을 알면서도 조국을 돌보지 않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충신이라 할 수 없소. 또 목숨을 걸고 요성을 함락시켰으면서도 제나라에 그 세력을 뻗치지 못하다면, 용사라고 할 수는 없소. 그리고 명성을 허물어뜨리게 되면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소. 이와 같은 사람은 세상 임금들이 신하로 삼지 아니하며, 유세객들도 입에 올리지 않는 법이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잃는 일이 없고,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법이오. 장군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생사영욕, 귀천존비의 분수령이니,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도록 하시오. 장군에게 바라건대 깊이 생각하여 세상의 속인들과 행동을 똑같이 하지 않도록 하시오. 지금 장군이 피폐한 요성의 백성을 가지고 제나라의 전군을 막는 것은 마치 묵적의 수비와 비슷하고, 인육을 먹고 인골로 불을 때면서도 병졸들이 두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손빈의 군사와 똑같아서 장군의 재능은 천하에 드높으오. 그러나 내가 장군을 위해 생각해 볼 때, 아직 거마와 무기가 완전 할 때 이대로 귀국하여 연나라 왕을 위하여 힘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오. 거미와 무기를 온전히 갖추어서 연나라로 돌아가면 연나라 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오. 병사들을 무사하게 데리고 돌아가면 백성들은 귀공을 부모와 같이 볼 것이며, 친구들은 팔을 걷어 붙이고 업적을 밝힐 것이오. 그래서 위로는 고립되어 있는 임금을 도와 뭇 신하를 제어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위하고 유세객을 도와 국정을 바르게 하며 풍속을 고쳐나가면 공명은 자연히 이룩될 것이오. 만약 귀국할 뜻이 없어 연나라와 세상을 버리고 등쪽의 제나라에서 지내려 한다면, 제나라는 장군에게 땅을 떼어 주고 봉지를 정해 줄 것이니, 자손은 제후가 자칭할 것이고 제나라와 함께 오래도록 존속 할 수 있을 것이오. 이것 또한 한 가지 계책이 될 것이오. 이 두 가지 계책은 이름을 드러내고 실속을 채우는 일이오. 바라건대 공은 스스로 깊이 생각하여 그 중 한 가지를 택하시오. 나는 '조그마한 절개를 꾀하는 사람은 큰 이름을 드러낼 수가 없고, 조그마한 부끄러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는 말을 들었소. 옛날 관중이 환공을 활로 쏘아서 띠의 정면에 붙어 있는 장식을 맞춘 일은 실로 반역 행위였고, 자기가 받들던 공자 규를 버리고 함께 죽지 아니했던 것은 비겁한 일이며, 잡힌 몸이 되어 수갑과 차꼬를 차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소. 대개 이러한 세 가지 행실이 있는 자는 세상의 군주가 신하로 삼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향리의 사람들도 사귀기를 싫어할 것이오. 그러나 당시에 만약 관중이 유폐되어 다시 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옥사해서 제나라에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치욕에 가득찬 오명을 뒤집어 써서 노비들도 그 이름을 함께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을 것이오. 그러니 세속인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관중은 옥중에 있는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천하를 바로 잡지 못함을 부끄러워 했으며, 공자 구를 위해 죽지 않았음을 부끄럽게 생각지 아니하고 위세가 제후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소. 그러기에 관중은 세 가지 행실의 과오를 겸했으면서도, 환공을 도와서 오패의 으뜸으로 만들었고, 그 이름은 천하에 높아졌으며, 그 위광은 이웃 나라까지 비쳤던 것이오. 조말은 노나라의 장군이 되어 세 번 싸워서 세 번 패하고 땅을 잃기 5백 리에 이르렀었소. 당시에 만약 조말이 뒷일을 생각지 않고 결심한 대로 목을 찔러 죽었다면 패군지장이 되어 그 오명은 영원히 씻을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조말은 세 번 패한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노나라 임금과 계략을 꾸미어, 환공이 천하의 제후를 모아 회합할 때 단지 칼 한 자루를 손에 쥐고 단상에 올라가서 환공의 가슴을 겨누며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 한 마디 헛되이 하지 않고 끝내는 세 번 싸움에서 잃었던 치욕을 하루 아침에 회복했소. 이 두 사람이 조그마한 부끄러움을 모르고 조그마한 절개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아니오. 그들은 다만 자기 몸을 죽이고 집안과 자손의 뒤를 끊고 공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취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오. 그러므로 울분의 원한을 버리고 일생 동안 공명을 세웠으며, 사사로운 감정을 버림으로써 여러 대에 걸친 공을 이룩했던 것이오. 바라건대 장군은 그 중 한 가지를 골라서 실행하시오."
연나라 장군은 노중련의 편지를 읽고 사흘 동안이나 울었다. 그리고 이모저모로 궁리하면서 자신의 나아갈 바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연나라로 돌아가자니 이미 왕과는 불화한 사이가 되었으므로 죽음을 당할 지도 모르겠고, 제나라에 항복을 하자니 이미 제나라 군사를 수 없이 죽였으므로 욕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탄식하며,
"남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내 칼로 죽자."고 하더니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성 안이 혼란해졌고 전단은 마침내 요성을 함락시켰다. 전단은 돌아와서 왕에게 노중련에 관한 일을 보고하고 벼슬을 주려고 했지만, 노중련은 몸을 피하여 바닷가에 숨어 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귀한 몸이 되어 주인에게 눌려 살기보다는, 오히려 빈천한 몸으로 세상을 가볍게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