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2장 슬프도다, 관중이여
2. 배신과 학정
세자 신생 묘의 이장
진혜공은 가군을 겁탈한 죄가 있는지라 그녀의 말처럼 하겠노라고 승낙했다. 그러고 나서 극예의 종제 극걸과 태사에게 각각 명했다.
"경은 곧 곡옥에 가서 좋은 자리를 골라 전 세자 신생을 천장하고 오너라. 그리고 전 세자에게 시호를 내려야겠으니 태사는 잘 상의해서 정하라."
신하들은 전 세자의 효와 경을 참작하여 시호를 공세자(共世子)라고 지었다. 그리고 공세자를 새로 이장하고 나면 즉시 호돌이 그 곳에 가서 제사를 올리도록 결의했다. 이에 극걸은 곡옥 땅에 가서 가장 좋은 재료로 널과 옷과 이불과 명기와 목우 등속을 마련하고 무덤을 팠다. 역군들은 관 속에서 끌어낸 신생의 시체를 보고 모두 놀랐다. 죽은 신생의 얼굴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체에서 흉악한 냄새가 났다. 역군들은 그 냄새에 견딜 수 없어 코를 움켜쥐고 먹은 걸 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체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극걸이 시체 앞에 향을 피워 올리고 재배하고 아뢰었다.
"세자께선 살아 생전에 그다지도 결백하시더니 죽어선 어찌 이다지도 불결하시나이까. 이 불결한 냄새가 세자의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모든 역군들을 놀라게 하지 마옵소서."
극걸이 말을 마쳤을 때였다. 지금까지 코를 들 수 없던 악취가 씻은 듯 없어지면서 아름다운 향내로 변했다. 극걸은 신생에 다시 염하고 입관까지 마친 뒤 고원으로 모셨다. 이날 곡옥 백성들은 성 안을 비우다시피 성 밖까지 따라나가 세자의 상여를 전송하면서 울었다. 공세자를 고원에다 천장한 지 3일이 지났다. 호돌은 모든 제기를 갖추어 가지고 고원에 갔다. 그리고 호돌은 진혜공의 명의로써 제사를 올렸다. 제사를 마치고 호돌은 산을 내려갔다. 호돌의 눈앞에 저편 산 모퉁이에서 양편으로 정기를 쌍쌍이 들고 갑옷을 입고 창검을 든 군졸이 일대 거마를 모시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호돌은 그들이 웬 군대인지 알 수가 없어서 황망히 길을 피하려 했다. 그 때, 군대들의 행진 속에서 수레 한 대가 달려나왔다. 그 수레 위에 탄 사람은 모발이 반백이고 말쑥히 도포를 차려 입고 단정히 홀을 들고 있었다. 머리가 반백인 사람이 조용히 수레에서 내려와 호돌에게 읍하며 말했다.
"세자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모시러 왔소. 청컨대 국구는 잠시 나와 함께 갑시다."
호돌이 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태부 두원관이었다. 호돌은 정신이 황홀해서 두원관이 이미 죽은 사람이란 것도 잊고 물었다.
"세자가 어디 계시오?"
두원관이 뒤편의 큰 수레를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저것이 바로 세자의 수레입니다."
호돌은 두원관을 따라 그 수레 앞으로 갔다. 세자 신생이 구슬을 꿴 갓끈을 매고 허리에 칼을 차고 수레 위에 뚜렷이 앉아 있지 않은가! 그 얼굴은 완연히 생전과 같았다. 신생이 어자에게 분부했다.
"내려가서 국구를 이 수레 위로 모셔라."
호돌이 수레에 오르자, 세자가 추연히 말했다.
"국구는 그간 이 신생을 잊지나 않았소?"
호돌이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세자의 원통한 원한을 길 가는 사람도 다 슬퍼하고 울었거늘, 이 호돌이 어찌 잊었겠습니까?"
"천장 옥제(玉帝)께서 내 살아 생전에 인(仁)하고 효(孝)하였음을 어여삐 여기사 이미 나에게 교산의 주인이 되라는 명을 내리셨소. 전번에 이오가 서모 가군(賈君)에게 무례한 짓을 하였음이라. 나는 그의 짐승 같은 소행이 미워서 이번에 이장되는 것을 거절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섭섭해 할까 해서 참았소이다. 오늘날 진(秦)나라 군후가 매우 어진지라, 내 이제 진(晋)나라를 떠나 진(秦)나라로 가서 장차 그 곳 백성들이 올리는 제사를 받을 생각이오. 국구의 뜻엔 어떠하오?"
"세자께서 아무리 진군(晋君)이 미우실지라도 진나라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제 세자가 동성을 버리고 타국에 가서 제사를 받겠다 하시니 이는 인(仁)하고 효(孝)하신 덕에 어긋남인가 합니다."
"국구의 말도 그럴 성하오. 그러나내 이미 이 일을 옥제께 아뢴지라, 그럼 다시 한 번 아뢰어 보겠소. 국구는 앞으로 7 일간만 이 곳에 더 머물렀다가 돌아가오. 신성 서쪽 마을에 귀신과 말할 줄 아는 무당이 살고 있소. 내 장차 그 무당을 통해서 국구에게 차후 경과를 자세히 알리겠소."
이 때, 수레 밑에서 두원관이 호돌을 수레 밑으로 끌어내리며 말했다.
"이제 국구는 세자와 이별할 때가 되었소."
호돌은 수레 밑으로 내려서다가 실족하여 그냥 땅바닥에 넘어졌다. 순간 군대도 수레도 말도 간 곳이 없었다. 동시에 정신을 잃고 호돌은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호돌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신성 외관에 누워 있었다. 그가 크게 놀라 좌우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어째서 이 곳에 누워 있느냐?"
좌우 사람이 대답했다.
"국구께선 제사를 마치고 축문을 불사르고 마지막 절을 하시다가 갑자기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저희들이 부르고 주물러도 깨어나지 않기로 수레에 싣고 이 곳까지 돌아왔습니다. 천만 다행히 별고 없으신 듯하니 저희들도 이제야 맘을 놓겠습니다."
호돌은 속으로 짐작이 갔다.
'내가 꿈을 꿨구나.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다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만 대고서 드러누웠다. 외관 뜰에 호돌의 수레가 머문 지도 7일이 지났다. 그러니까 바로 7일째 되던 날이었다. 미시와 신시 중간쯤 되었을 때였다. 아랫사람이 들어와서 호돌에게 아뢰었다.
"지금 문밖에, 성 서쪽에 사는 무당이라면서 국구를 뵙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호돌은 두말 않고 그 무당을 데리고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좌우 사람을 다 물러가게 했다. 무당이 들어와서 호돌에게 절하고, 자기 소개를 했다.
"저는 귀신과 서로 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교산의 산신은 지난날의 진(晋)나라 세자 신생이십니다. 그 태자가 국구께 말씀을 전해달라기에 제가 왔습니다. 그 전하란 말씀은 다름이 아니옵고, '이제 상제(上帝)께 다시 아뢰었으니 다만 그 자의 몸을 욕되게 할 것이며, 그 자손을 참함으로써 그 죄에 대한 벌을 내릴 것이다. 진(晋)나라엔 해가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 하시더이다."
호돌이 일부러 모르는 체하고 물었다.
"어떤 사람의 죄를 벌하신다더냐?"
"세자께선 이 말만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전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일체 입 밖에 내지 말아라."
호돌은 주의를 시키고 좌우 사람을 불러 무당에게 황금과 비단을 주도록 분부했다. 무당은 무수히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호돌은 귀국하자, 비정부의 아들 비표를 자기 집으로 청하고 몽사와 무당에게서 들은 것을 말했다. 비표가 말했다.
"임금의 거동이 사리에 어긋나니 어찌 천명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진나라 주인은 바로 공자 중이인가 합니다."
호돌과 비표가 서로 앞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섬돌에 닿는 발소리가 났다. 바깥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면서 문지기가 아뢰었다.
"진(秦)나라에 가셨던 비정부께서 돌아오사 지금 궁성에서 경과를 보고중이라고 합니다."
비표는 부친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돌의 집을 나와 돌아갔다. 이야기는 조금 전으로 돌아간다. 한편 비정부는 진나라 대부 냉지와 함께 예의로 보내는 패물을 실은 수레들을 거느리고 본국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비정부는 강성 교외까지 당도했을 때 비로소 이극이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비정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섣불리 들어갔다가 자기도 죽는 거나 아닐까. 그는 진나라로 다시 돌아갈까 하고 생각했다. 강성엔 아들 표가 있다. 내가 진으로 달아나면 아들 표는 어찌되겠는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아무 결정도 못하고 주저하는 중에 마침 교외에 나온 대부 공화와 만났다. 그들은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비정부는 이극이 죽음을 당한 연유를 물었다. 공화는 그 동안에 있었던 자초지종을 일일이 말했다. 비정부가 물었다.
"내가 강성으로 들어가야겠소, 타국으로 달아나는 게 좋겠소?"
"죽은 이극과 뜻을 같이하던 사람들이 다 남아 있소. 나 같은 사람도 살아 있질 않소. 상감은 이극 한 사람만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은 내버려 두는 모양이오. 더구나 그대는 진나라에 사자로 갔다왔으니 그 동안에 일어난 일과 관련될 것이 없소. 만일 미리 겁을 먹고 타국으로 달아나면 이건 스스로 자기 죄를 만들고 탄로시키는 것밖에 안 되오."
비정부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수레를 재촉해서 강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궁성에 들어가서 진나라에 갔다온 보고부터 마치고, 다시 진나라 대부 냉지를 데리고 진혜공 앞에 가서 국서와 예물을 바쳤다. 진혜공이 진(秦)나라 국서를 받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 진(晋)과 진(秦) 두 나라는 인척간입니다. 그러니 우리 두 나라는 네 땅이니 내 땅이니 하고 다툴 처지가 아닙니다. 모든 대부가 각기 자기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음이라, 과인이 어찌 귀국의 땅을 굳이 얻어 귀국의 모든 충성스런 대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야 있으리오. 다만 과인이 앞으로 천하사를 생각하는 바 있으니 귀국의 여이생과 극예 두 대부와 만나 서로 간곡히 의논하고 싶소이다. 청컨대 일간 그들 두 대부를 보내어, 이 과인의 간절한 뜻을 위로해 주기 바라오. 지난날 귀국이 과인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그 땅에 대한 지권을 돌려보냅니다. 앞으로 우리 두 나라가 더욱 가까이 우호 친선을 맺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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