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2장 슬프도다, 관중이여
1. 이오 즉위
이극의 죽음
"이극은 원래 상감을 섬기려던 사람이 아닙니다. 더구나 분양 땅을 받지 못해서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신이 들으니 이극은 진나라로 길을 떠난 비정부의 뒤를 쫓아갔다가 이제 돌아왔다고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무슨 공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전날 이극은 중이를 군위에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속으론 상감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만일 국내의 이극이 국외의 중이와 내통하고 들고 일어난다면 어떻게 막으시렵니까? 즉시 이극에게 죽음을 내리십시오. 끊어야 할 후환은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합니다."
진혜공이 머뭇거렸다.
"과인이 군위에 오르는 데 이극의 공로가 없지 않았은즉 이제 무슨 말로써 죽여야 한단 말인가?"
극예가 말했다.
"이극은 해제를 죽이고 탁자를 죽이고 선군의 부탁까지 받은 대부 순식마저 죽인 사람입니다. 그 죄는 비할 수 없이 큽니다. 상감을 귀국하도록 도운 것은 이극의 개인적인 수고였습니다. 임금을 죽인 죄를 벌하는 것은 공명 정대한 처사입니다. 상감께선 그의 개인적인 수고만 생각하시고 공명 정대한 처벌을 주저해선 안 됩니다. 청컨대 신이 상감의 명령을 받고 이극을 치러 가겠습니다."
진혜공이 허락했다.
"그럼, 대부가 가서 그 놈을 없애 버리시오."
극예는 즉시 이극의 집으로 갔다.
"상감의 명을 받들고 극예는 왔노라. 상감의 말씀을 전하니 들어 보아라. '그대가 없었던들 과인은 군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그대의 큰 공을 잊으리오. 그러나 비록 그대가 지난날에 두 임금과 한 대신을 죽였은즉, 그대를 살려 두고 군위에 앉았기도 곤란하구나. 과인은 선군의 남기신 뜻을 받들어야겠다. 그대의 개인적 수고만 생각하고 대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 그대는 스스로 자결하라'는 분부이시다!"
이극이 머리를 앙연히 쳐들고 대답했다.
"해제와 탁자가 살아 있다면 상감이 어찌 지금 군위에 을랐겠느냐! 그런데 이제 신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하니, 내 죽는 마당에 무슨 말을 못하리오."
극예가 추상같이 호통했다.
"군명이 지중하니 속히 자결하여라!"
이극이 칼을 뽑아 들고, 땅을 박차고 솟아오르면서 크게 부르짖었다.
"하늘이여 원통하구나! 충성을 다한 것이 죄가 되다니. 그러나 죽어도 혼은 있으리라. 내 지하로 돌아가서 무슨 면목으로 순식을 대할까!"
이극은 칼을 물고 엎어졌다. 칼 끝이 이극의 목덜미를 꿰뚫고 나왔다. 극예는 궁으로 돌아가서 진혜공에게 이극의 죽음을 보고했다. 이 말을 듣고 진혜공은 크게 기뻐했다. 진혜공이 이극을 죽이자 많은 신하가 분노했다. 기거, 공화, 가화, 추단 등은 모두 다 진혜공의 처사를 원망했다. 이 눈치를 챈 진혜공은 그들마저 한꺼번에 다 없애 버리기로 했다. 극예가 간했다.
"비정부가 지금 사자로 진나라에 가고 없는데, 그 일당을 많이 죽이면 비정부가 여러 가지로 의심한 끝에 모반할지도 모릅니다. 상감께선 우선 참으십시오."
진혜공이 물었다.
"진 부인(秦 夫人)이 과인에게 가군(賈君)을 잘 대우하라는 것과 국외에 망명중인 모든 공자를 다 불러들이라는 서신이 왔었는데 어찌해야 되겠소?"
"공자들 중에 누가 군위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국내로 불러들이지 마십시오. 다만 가군(賈君)을 특별히 대우하는 것은 진 부인의 부탁에 보답하는 것도 되니 무방하리이다."
진혜공은 우선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가군(賈君)의 거처로 갔다. 이 때 가군은 나이에 비해서 아직도 아리따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진혜공은 아직도 미태가 남아 있는 가군을 보자, 문득 음탕한 생각이 솟았다.
"군부인(君夫人)은 과인의 소속에 불과하니, 우리 함께 기쁨을 나눕시다. 그러니 나를 거역 마오."
진혜공은 다짜고짜로 가군의 허리를 끌어안고 침상으로 데려갔다. 문 밖에 있던 궁녀들은 소리없이 서로 웃으면서 그 곳을 피해 딴 곳으로 갔다. 어머니뻘 되는 가군은 자식뻘 되는 진혜공의 험상궂은 표정에 질려서 시키는 대로 몸을 주어야 했다. 잠시 후 진혜공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침상에 누웠을 때였다. 가군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팔자가 기박해서 선군을 섬기던 몸으로 죽질 못하고 이제 또 주공에게 몸을 버렸으니, 이 몸은 아까울 것이 없지만 바라건대 전 세자 신생의 원통한 죽음이나마 세상에 밝혀 주오. 나는 생전에 진 부인을 만나게 되면 수절 못한 죄를 호소하려오."
진혜공이 대답했다.
"해제와 탁자가 다 죽음을 당했으니 벌써 세자의 억울한 원한은 풀린 셈이오."
군이 고개를 저으며 부탁했다.
"듣자니 세자의 시체가 아직도 신성에서 백성만도 못한 무덤 꼴로 묻혀 있다고 합니다. 주공은 세자의 무덤을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시호를 내리어 그 원통한 원혼을 위로해 주십시오. 이건 비단 나만이 아니라 이 나라 온 백성이 주공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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