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2장 슬프도다, 관중이여
1. 이오 즉위
대부 호돌의 심계
이극은 백관을 조당에 모아 놓고 말했다.
"이제 여희의 일당들은 모두 다 죽었소. 이제 군위를 세울 때요. 그런데 공자들이 많으나 지금 책나라에 망명중이신 공자 중이가 가장 나이도 많고 또 어진 분이니 그분을 군위에 모시고자 하오. 나의 의견을 지지하는 대부들은 이 죽간에다 서명해 주기 바라오."
비정부가 나서며 말했다.
"이렇듯 큰일은 우리가 결정할 게 아니오. 우리 나라 원로이신 대부 호돌에게 여쭤 보고 지시를 받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오."
이극은 즉시 사람을 시켜, 호돌을 모셔 오도록 수레를 보냈다. 그러나 호돌은 수레를 가지고 온 사람을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사양했다.
"나는 쓸모없는 늙은 사람이다. 그저 모든 대부들이 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전하여라."
사자가 돌아간 뒤, 호돌이 창문을 닫고 알지 못할 말로 혼자 중얼거렸다.
"내 자식 둘이 다 공자 중이를 따라 망명했으나 만일 그들을 귀국시키면 그들은 다 죽은 사람이다."
이에 이극은 공자 중이를 모셔 오기로 하고 붓을 들어 죽간에다 맨 먼저 서명했다. 비정부 이하 공화, 가화, 추단 등 삼십여 대부가 서명을 마쳤다. 일을 너무 급히 서둘렀기 때문에 뒤에 온 대부들 중엔 미처 서명을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번 여희 일당을 소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상사 벼슬에 오른 도안이는 그 표문을 가지고 공자 중이를 모시러 망명중인 책나라로 갔다. 공자 중이는 도안이가 바치는 국내의 대부들이 보낸 표문을 받아 펴 봤다. 모든 대부들의 서명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호돌의 서명이 없었다. '음! 이상하구나!'공자 중이는 의심이 들었다. 그 때 곁에서 위주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모시러 왔는데 고국에 돌아가지 않으신다면 언제까지 나그네 신세로 마치시렵니까?"
중이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네가 알 바 아니다. 나에겐 형제가 많거늘 하필 나 중이여야만 될 것이 뭔가. 더구나 어린 해제와 탁자가 죽음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이든 형으로서 아픔이 어찌 없겠느냐. 그리고 그 일당으로 남아 있는 자도 많을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가기는 쉬우나 다시 나와야 할 경우엔 어떻게 도망쳐 빠져나올 수 있으리오. 하늘이 진정으로 나를 도우신다면 내 어찌 나라없는 걸 근심하랴."
호언이 공자의 맘을 알고 권했다.
"상중에 일어난 변란을 기회로 삼아 본국에 돌아간다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공자는 가시지 마소서."
공자 중이가 머리를 끄덕인 뒤 도안이를 불러들여 부드러운 말로 사양했다.
"나는 부친에게 죄를 짓고 사방으로 도망다니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이다. 부친이 생존시엔 조석 문안과 수라상 앞에서 모시는 효성을 다하지 못했고, 돌아가신 뒤에는 곁에서 하늘을 부르며 통곡해야 할 예의마저 다하지 못한 불효자이다. 이런 내가 어찌 변란이 일어난 기회를 엿보아 나라를 탐할 수 있겠는가. 너는 돌아가 모든 대부에게 다른 공자를 모시어 군위를 삼으라고 전하여라. 나는 지금 다른 생각이 없다."
이에 도안이는 하는 수 없이 책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되돌아가서 이극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이극은 다시 사신을 책나라로 보내 공자 중이를 모셔 오자고 주장했다. 대부 양유미가 말했다.
"공자면 누구나 군위에 오를 수 있소. 그러지 말고 공자 이오를 모셔 오도록 합시다."
이극이 대답했다.
"이오 공자는 욕심이 많고 잔인한 사람이오. 욕심이 많으면 신의가 없고 잔인한즉 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중이 공자를 모시는 것만 못하오."
양유미는 이극의 주장을 귀담아 들으려 않고서 자기 주장을 고집했다.
"중이는 오지 않겠다고 하니, 그래도 이오가 다른 공자보다 못할 거야 없지 않소?"
모든 대부도 오지 않겠다는 중이보다 이오 공자를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극은 하는 수 없었다. 이에 양유미는 도안이를 데리고 이오를 모셔 오려고 양나라로 갔다. 한편, 양나라에 망명중인 공자 이오는 그 후 어떻게 하고 있었던가. 공자 이오는 그간 양나라에 있으면서 양백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하나 뒀다. 그 아들의 이름을 어라고 했다. 이오는 양나라에서 양백 사위가 되어 세월을 편안히 보내며 본국에서 변란이 일어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는 기회를 보아 귀국할 요량이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 진헌공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오는 즉시 여이생에게 명하여 양나라 군사를 빌어 굴성을 엄습했다. 여이생은 쉽사리 굴성을 점거했다. 이 때 진나라 순식은 국상을 치르랴, 여희를 받들어 모시랴 한참 바빠 변방 일을 따질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뒀었다. 그 뒤 이오는 다시 해제와 탁자가 피살되었다는 보고를 잇달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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