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4. 민심은 떠나건만...
도안이의 활약
집으로 돌아가자, 동관오는 도안이를 불러 뒤채에 있는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앞으로 할 일을 자세하게 일러 주고 부탁했다. 그런데 도안이는 원래 대부 추단과 잘 아는 처지였다. 도안이는 대부 추단의 집에 가서 동관오로부터 들은 것을 모두 고하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그만 두는 게 좋을지를 상의했다. 추단이 주저않고 대답했다.
"세자 신생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 백성들은 다 속으로 통곡했었네. 이건 백성들이 다 여희와 해제 그들 모자를 미워한 때문일세. 이번엔 이극, 비정부 두 대부가 여희 일당을 무찌르고 공자 중이를 임금으로 모시려고 해제를 죽인 것이니 이는 당당한 의거란 걸 우선 알아두게. 자네가 만일 간악한 것들을 돕고 충성있는 분을 죽인다면 이는 바로 불의라. 우리들이 자네를 용납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후세 만대에 이르도록 사람들은 자네를 욕할 걸세. 그러니 이 일만은 결코 하지 말게."
"저처럼 일자 무식 소인이 뭣을 알겠습니까. 그 일이 옳은 일이 아니라면 그럼 오늘이라도 즉시 못하겠다고 거절하겠습니다."
추단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자네가 거절하면 공연한 의심만 받을 뿐 아니라, 그들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라도 일을 저지르고야 말 것이니, 자네는 도리어 하겠노라 하고 그들을 속이게. 그렇게 승낙해 놓고 그대가 도리어 그 역적 놈들을 처치해 준다면 우리는 그대의 공로를 잊지 않음세. 자네는 앞으로 부귀를 누리고 천추에 이름을 떨치고 싶은가, 아니면 불의를 위해 몸을 망치겠는가. 어느 쪽을 원하는가?"
도안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는 진심으로 말했다.
"대부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추단이 다짐했다.
"자네 내게 이렇듯이 간절하게 약속을 해놓고 나중에 변절하진 않겠지?"
"대부께서 저를 의심하신다면 당장에 맹세하겠습니다."
도안이는 즉시 밖으로 달려나가 닭 한 마리를 잡아서는 칼을 뽑아 닭의 목을 쳐서 그 피를 입술에 바르고 결코 변절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다음 돌아갔다. 추단은 곧 비정부 집에 가서 이 일을 알려 주고 비정부는 다시 이극에게 이 일을 전했다. 그들은 각기 집안 수하 식솔들을 무장시키고 선군을 장사 지내는 날만 기다렸다. 장례일이 되었다. 이극은 병이라 핑계대고 장례에 나가지 않았다. 도안이가 동관오에게 말했다.
"모든 대부가 다 장례에 참석했건만 이극만이 나타나지 않으니 이는 하늘이 이번 기회에 그의 목숨을 거둬들이겠다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무장 병사 3백 명만 제게 주십시오. 그 집에 가서 아예 이극과 그 식솔들을 모조리 잡아죽이겠습니다."
동관오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궁중을 지키던 금위 병사 3백 명을 내줬다. 도안이는 병사 3백 명을 거느리고 달려가서는 어찌된 일인지 공격하지 않고 이극의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기만 했다. 이극은 미리 약속한 대로 도안이가 자기 집을 에워싸기 전에 사람을 장례터로 보내어 자기가 위기에 있음을 순식에게 알렸다. 순식은 이 소식을 듣고 놀랐다.
"이극의 집이 포위당했다니 웬일이오?"
동관오가 대답했다.
"이극이 기회를 얻어 난을 일으키려 하기에 집안 사람을 시켜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 집을 에워싸게 했지요. 성공하면 이는 당신의 공로며 만일 실패한댔자 대부에겐 별 책임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순식은 이 말을 듣고 초조했다. 그는 바삐 서둘러 장례를 마치고 곧 동관오와 양오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극을 치는 데 돕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궁으로 돌아가 탁자를 받들어 모시고 조당에 앉아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동관오가 병사를 거느리고 동시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편에서 도안이가 급히 오면서 말했다.
"아뢸 일이 있어 왔습니다."
동관오가 바로 옆에 가까이 불렀다.
"어서 이리 오게. 그래 어떻게 되었나?"
도안이는 가까이 가서 철퇴 같은 주먹을 번쩍 들어 번개같이 동관오의 목을 쳤다.
"카악!"
한 주먹에 동관오는 목이 부러져서 죽었다. 이 광경을 보고 병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안이가 피 묻은 주먹을 쳐들고 수레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병사들에게 외쳤다.
"공자 중이께서 진나라와 책나라 병사를 거느리고 지금 밖에 와 계시다. 나는 이극 대부의 명령을 받고 세자 신생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간악한 무리부터 죽이고 중이를 군위에 모시려는 것이다. 너희들은 내 말을 자세히 들어라. 나를 따르려는 자는 오고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각기 돌아가도 좋다."
병사들은 중이가 임금 자리에 오른다는 말을 듣자, 모두 기뻐서 날뛰었다. 한편 양오는 이극을 치는데 참가하기 위해서 오는 도중에 동관오가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방향을 바꾸어 조당으로 달렸다. 양오는 순식과 함께 탁자를 모시고 타국으로 달아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양오는 조당에 이르기 전에 도중에서 도안이의 추격을 당했다. 양오가 달아나며 일변 돌아보니 추격해 오는 사람은 도완이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극, 비정부, 추단이 각기 부하를 거느리고 뒤쫓아오지 않는가. 양오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양오는 칼을 뽑았다. 그러나 자기 목을 찌르지 못하고 주저했다. 순간 뒤쫓아온 도안이가 한칼에 양오의 목을 쳐서 거꾸러뜨렸다. 이 때 좌행 대부 공화도 부하를 거느리고 도안이를 도우려고 달려왔다. 이에 그들은 다시 대열을 지어 이번엔 일제히 궁문으로 쳐들어 갔다. 이에 궁중에 있던 순식은 칼을 짚고 비장한 각오로 앞장서서 걸어나왔다. 그러나 궁중 좌우 사람들은 이극 등이 쳐들어오는 걸 보자, 크게 놀라 각기 달아났다. 그래도 순식의 표정만은 변하지 않았다. 순식은 왼팔로 어린 탁자를 안고 오른팔 소매로 끔찍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탁자의 얼굴을 가렸다. 탁자는 무서워서 발버둥치며 울었다. 순식이 쳐들어오는 이극 앞으로 가까이 가서 말했다.
"이 어린 생명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다만 바라는 것은 선군의 일점 혈육을 살려달라는 것이다."
이극이 날카롭게 반문했다.
"세자 신생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신생은 선군의 맏아드님이시다."
도안이가 앞으로 나가며 외쳤다.
"여러 말할 것 없다."
도안이는 순식의 품에 안겨 있는 탁자를 빼앗아 머리 위로 번쩍 쳐들어 전각 밑으로 내던졌다. 악! 소리인지 탁! 하고부서지는 소린지 야릇한 음향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탁자는 머리가 흔적없이 깨어져 댓돌 아래 죽어 있었다. 순식은 크게 분노하여 칼을 뽑아 이극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도안이가 휘두른 칼에 순식은 곧 두 동강이 나서 죽어넘어졌다. 한편, 여희는 가군(賈君: 진헌공의 셋째 부인)이 거처하는 궁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가군은 문을 굳게 닫고 그녀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여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후원 쪽으로 달아나다가 다리 위에 당도하자, 자신의 처지가 매우 슬펐다. 그제서야 여희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연못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극은 여희의 시체를 끌어올려 다시 여러 토막으로 참했다. 여희의 친정 동생 소희는 비록 탁자의 생모였지만 선군의 사랑도 받지 못했고 남을 해치거나 아무런 권세도 잡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극 등은 소희를 죽이진 않고 별실에 감금했다. 그러나 양오, 동관오, 우시 등 여희의 수족들은 모조리 참형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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