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4. 민심은 떠나건만...
중이의 탈출
헌공의 명령은 추상 같았다. 이 때 대부 호돌이 심복 부하로부터 이 궁중 소식을 듣고, 즉시 차자 호언을 불러 앞에 앉히고 분부했다.
"공자 중이는 준마 같은 체구와 눈에 두 개씩 눈동자를 가진 분으로서 그 외모도 비범하려니와 전부터 현명하셨다. 다음날 반드시 큰일을 성취할 어른이다. 더구나 세자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다음 형되는 분이 군위(君位)에 올라야 한다. 네 급히 포 땅에 가서 공자 중이를 도와 타국으로 달아나거라. 그리고 너의 형 모와 함께 지성껏 그 어른을 섬겨 다음날 에 대사를 성취하여라."
부친의 분부를 받고 호모, 호언 두 형제는 말을 타고 밤길을 달려 포성으로 향하였다. 포성의 중이는 호모 형제가 와서 하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세 사람은 즉시 앞일을 상의하고 바야흐로 포성을 떠나려는데, 발제의 군사가 성 밖에 당도했다. 수문장은 성을 닫고 발제의 군사와 싸우려 했다. 공자 중이가 조용히 분부했다.
"임금의 명령에 대하여 어찌 항거할 수 있느냐. 수문장은 속히 성문을 열어 줘라."
성문이 열리자, 발제의 군사는 물밀듯이 몰려들어가 공자 중이의 집을 에워쌌다. 이 때 공자 중이는 호모 형제와 함께 후원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발제는 칼을 뽑아 들고 그들의 뒤를 바싹 쫓았다. 호모 형제가 먼저 얕은 담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공자 중이의 양손을 잡고 담 위로 막 끌어올리는 참이었다. 이 때, 시인 발제는 이를 뒤쫓아가 담 위로 끌려올라가는 공자 중이를 칼로 내리쳤다. 그러나 참으로 천만 다행이었다. 칼에 맞아 떨어진 것은 중이의 긴 소맷자락이었다. 마침내 호모 형제는 공자 중이를 모시고 포성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발제는 중이의 소매만 가지고 돌아갔다. 한편 세 사람은 책나라를 향하여 달아났다. 어느 날 책나라 임금은 푸른 용이 성 위로 기어가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책나라 임금은 진나라 공자 중이가 두 신하를 거느리고 온 걸 보고 흔쾌히 영접했다. 조금 뒤였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수레들이 잇달아 책나라 성 밖으로 모여들었다. 몰려든 사람들이 각기 수레 위에서 외쳤다.
"속히 성문을 열어 주오!"
중이는 자기를 잡으러 온 진나라 발제의 병사(兵士)들인 걸로 의심하고 성 위의 책나라 군사들에게 어서 활을 쏘라고 분부했다.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 내리자 성 아래 몰려든 사람들이 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리는 추격병이 아니오. 바라건대 공자 중이를 모시고자 따라온 사람들이오."
그제야 중이는 성 위에 올라가서 성 밖을 굽어보았다. 앞 수레에 탄 사람은 조쇠였다. 그의 자(字)는 자여(子餘) 바로 대부 조위의 동생이며, 그간 진나라 대부 벼슬에 있던 사람이었다. 중이는 반색을 했다.
"조쇠가 왔으니 내 장차 걱정이 없겠구나."
중이는 성문을 열어 영접하게 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은 위주, 호사고, 전길, 개자추, 선진 등 모두 다 진나라에서 크게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말채찍이나 잡고 심부름이라도 하면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따라온 사람들이었다.이 외에도 호숙 등 수십 명이 그 뒤를 따라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중이는 자기 뒤를 따라온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데 놀랐다.
"그대들은 진나라에서 벼슬 사는 몸이어늘 어찌 이렇듯이 모여 이 곳까지 오셨소?"
조쇠 등이 일제히 대답했다.
"주공이 덕을 잃고 간특한 계집을 총애하사 마침내 세자 신생을 억울하게 죽였으니, 반드시 진나라에 장차 사직을 둘러싼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희들은 원래 공자가 선비들에게 인자하심을 알므로, 장차 공자를 모시고자 고국을 떠나왔습니다."
이 날 책나라 임금은 궁문을 열게 하고 진나라에서 온 망명 인사들을 일일이 접견했다.망명 온 진나라 인사들은 책나라 임금으로부터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이날, 중이가 울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능히 협력하여 나를 돕겠다 하니 앞으로 우리는 서로가 살과 뼈나 다름없소. 내 어찌 생사(生死)간에 그대들의 덕을 잊겠소."
위주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공자께서 포성에 계실 때 백성들은 다 어진 덕을 입었으므로 이젠 공자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오랑캐 나라와 책나라 군사의 원조를 빌고 포성의 많은 백성들을 거느리고서 진나라 궁중으로 쳐들어간다면 궁중에서도 그간 울분을 참지 못하던 자들이 반드시 내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요망한 것들을 다 없애 버리고 사직을 편안케 하고 백성들을 무마하십시오. 우리가 타국에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는 나그네 신세보다는, 제 말대로 하시는 것이 백 배나 낫습니다."
중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대의 말은 비록 장하나, 아버지인 임금을 괴롭히고 놀라게 하는 것은 더구나 망명중인 자식으로서 결코 할 바가 아니오."
위주는 한갖 기운 세고 열렬찬 보통 사나이에 불과했다. 그는 중이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걸 보고, 마침내 안타까워 발을 구르면서 외쳤다.
"공자는 어찌 여희의 무리를 무서워하시나이까. 그러고야 언제 능히 큰일을 성취하시겠소."
호언이 참다 못해 위주를 타일렀다.
"공자는 여희를 두려워하시는 것이 아니오. 명목과 대의를 존중하심이오."
그제야 위주는 아무 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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