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신생의 자살
신생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억울한 걸 변명하려다가 이 사실을 밝히지 못하면 죄만 더 짓게 되오. 다행히 내 입장을 변명한다 할지라도 아버지는 여희를 벌하지 않을 것이며 그저 마음만 상하실 것이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식된 도리로 내가 죽는 것만 같지 못하오."
두원관이 충고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음날을 기다려 대사를 도모하십시오."
신생이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임금께서 죄없음을 알아 주지 않고 나를 치러 사람을 보내는데, 내가 누명을 쓰고 다른 나라로 달아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참으로 불효한 놈이라고 할 것이오. 설령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모든 잘못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변명한대도 결국은 임금을 미워하는 것이 되오. 임금인 아버지의 잘못을 세상에 퍼뜨리면 모든 나라 제후가 다 우리 진나라를 비웃을 것이오. 안으로 부모를 괴롭히고 밖으론 모든 나라 제후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건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오. 더구나 죄를 벗기 위해서 임금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더 큰 죄를 짓는 결과가 아니겠소. 내 듣건대 어진 사람은 임금을 미워하지 않으며, 지혜 있는 자는 안팎으로 곤란을 받지 않으며, 용기있는 자는 죽음에서 달아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신생은 붓을 들어 호돌에게 보내는 한 통의 서신을 썼다.
신생은 죄가 많아 이제 죽나이다. 그러나 임금께선 늙으신지라, 앞으로 국가에 어려운 고비가 많을 줄 아니 대부는 힘써 나라를 도우시라. 신생은 비록 죽지만 살아 생전에 받은 대부의 사랑을 잊지 않으리이다.
신생은 편지를 다 쓰고 두원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아버지인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재배하고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신생이 죽은 이튿날 동관오가 군사를 거느리고 곡옥 땅에 당도했다. 동관오는 신생이 이미 죽은 걸 보자, 두원관을 잡아가지고 도성으로 돌아갔다. 동관오는 돌아가는 길로 진헌공에게 아뢰었다.
"세자는 자기의 죄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 알고 미리 자결하였습니다."
진헌공은 두원관에게 세자의 죄를 모든 사람에게 증명하라고 했다. 두원관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도 원망스럽구나! 이 두원관이 죽지 않고 붙들려 온 것은 바로 억울하게 죽은 세자의 심정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제사 지내고 보낸 고기포가 궁중에 온 지 엿새나 지났다 하니 그 동안에 무슨 수작을 부려 독약을 발랐는지 알게 뭐냐!"
이 때 병풍 뒤에서 엿듣고 있던 여희가 질겁하게 놀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저 놈이 증거 없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데 왜 속히 죽이지 않나이까!"
진헌공이 대로하여 분부했다.
"저 놈을 단번에 쳐 죽여라!"
좌우에 시립한 역사가 달려들어 쇳덩이로 두원관의 머리를 내리쳤다. 두원관은 두골이 깨어지고 면모조차 못 알아볼 정도가 되어 그 자리에서 죽었다. 모든 신하는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눈물조차 맘 놓고 흘리지 못했다. 이날 동관오와 양오가 우시에게 속삭였다.
"공자 중이와 공자 이오는 모두 세자의 일당들이다. 세자는 이미 죽었으나 두 공자가 아직 살아 남았으니 그것이 실로 걱정이오."
우시는 곧 이 말을 여희에게 알렸다. 그날 밤에 여희가 진헌공에게 울며 호소했다.
"첩이 들으니 중이와 이오도 신생과 함께 이번 일을 모의했다고 하더이다. 중이, 이오 두 공자는 첩이 신생을 죽인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낮없이 군사를 조련하여 장차 이 곳으로 쳐들어와서는 세자 신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첩을 죽이고 대사를 도모하려고 서둔답니다. 상감께선 자세히 살피소서."
진헌공은 별로 여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한 신하가 들어와서 은밀하게 아뢰었다.
"포 땅에 있는 공자 중이와 굴 땅에 있는 공자 이오가 주공께 문안하려고 이미 관에까지 왔다가 세자가 죽었다는 변을 듣자 즉시 수레를 돌려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자, 진헌공은 어젯밤 여희가 한 말이 생각나서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음! 그래. 과인을 보러 왔다가 하직 인사도 않고 돌아갔다면 그 놈들도 신생과 역적질하기로 공모한 것이 분명하구나! 시인 발제는 군사를 거느리고 포 땅에 가서 공자 중이를 사로잡아 오고, 가화는 군사를 거느리고 굴 땅에 가서 공자 이오를 잡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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