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독이 든 음식
그동안 여희는 무엇을 했던가. 그녀는 침새라는 독한 날짐승을 넣어 독주를 만들었다. 여희는 곡옥에서 보내온 고기포에다 독약을 발라 뒀다가 그걸 진헌공에게 바치며 말했다.
"첩의 꿈에 제강이 나타나 배가 고파 견딜 수 없다기에 상감께서 사냥 가신 사이에 그 몽사를 태자에게 전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이 고기포가 곡옥에서 제강에게 제사 지내고 보내온 것인데, 상감이 돌아오시길 기다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진헌공이 술잔을 들어 마시려는데 여희가 재빨리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밖에서 들여 온 술과 음식은 믿을 수 없습니다. 우선 시식해 봐야 하겠습니다."
"음, 그것도 그렇군!"
진헌공은 들었던 술잔을 땅바닥에 부었다. 땅바닥이 대뜸 부풀어올랐다. 깜짝 놀란 진헌공은 다른 음식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즉시 개를 불러 고기포를 던져 줬다. 개는 고기를 먹자, 그 자리에서 당장 쓰러져 죽었다. 여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궁의 어린 시녀를 불러 냉랭하게 분부했다.
"너, 그 술과 고기를 먹어라."
어린 시녀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먹으려 하지 않았다. 여희는 어린 시녀의 머리를 잡아뒤로 젖히고 입 안에다 강제로 술을 부었다. 약간의 술이 시녀의 목에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녀는 아홉 구멍으로부터 시뻘건 피를 흘리며 죽어 넘어졌다. 여희가 크게 놀란 체하며 당 아래로 뛰어내려가서 사방에다 마구 외쳤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늘도 무심하구나! 이 나라는 원래 세자의 나라며 임금도 늙어 언제 세상을 떠나실지 모르는데, 그 동안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코 아버지를 죽이려드는구나!"
여희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희가 다시 진헌공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애간장을 녹이듯 흐느껴 울었다.
"세자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다 우리 모자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상감께선 이 술과 고기를 첩에게 하사(下賜)하소서. 첩은 오히려 상감대신 죽어서 세자의 뜻을 기쁘게 하겠소이다."
여희는 즉시 술을 마시려고 덤벼들었다. 진헌공은 기겁을 하고 술을 빼앗아 쏟아 버렸다. 그러고 나서 진헌공은 씨근거릴 뿐 울화가 치밀어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런데 여희가 땅바닥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하며 갖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세자는 참으로 잔인하구나! 그 아버지를 죽이려드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 있으리오. 지난날 상감께서 세자를 폐하려 하셨을 때도 첩이 말렸고, 후원에서 나를 희롱했을 때도 상감께서 죽이려는 것을 내가 전력을 다해서 살려 줬거늘, 이젠 상감까지 없애려 들다니......."
진헌공은 한참 뒤에야 여희를 부축해 일으키고 나서 분기 탱천하여 말했다.
"울지 말고 일어나오. 과인이 마땅히 이 사실을 모든 신하에게 말하고 이 적자(賊子)를 죽이리라."
그리고는 진헌공은 조당에 나가서 즉시 모든 대부들을 불러오게 했다. 한편 대부 호돌은 오래 전부터 문을 닫고 일체 외출을 하지 않았고, 대부 이극은 수레에서 떨어진 뒤 아직도 다친 발이 낫질 않아서 움직일 수 없다고 핑계댔다. 대부 비정부는 집에 있었건만 외출하고 아직 안 돌아온 걸로 따돌렸다. 이 세 사람을 제외한 다른 대부들은 주공의 부름을 받고 다 궁으로 갔다. 진헌공은 모든 대부에게 신생이 역모하였다고 설명했다. 모든 신하는 진헌공이 전부터 세자를 없애 버리려는 뜻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신하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감히 입을 열어 세자 신생을 변호하지 못했다. 이 때 간특한 동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자는 참으로 무도하기 비할 바 없습니다. 청컨대 신이 주공을 위해서 그를 처치하겠습니다."
마침내 진헌공은 동관오로 대장을 삽고 양오로 부장을삼고 병차 2백 승을 주어 곡옥을 치게 했다. 그리고 진헌공은 두 장수에게 다음과 같이 단단히 주의를 주며 지시했다.
"세자는 장병을 잘 쓸 줄 아니 두 장수는 각별 조심하여라. 그리고 즉각 참하라."
이 때 호돌은 비록 두문 불출하고 있었지만 이미 심복 부하를 보내어 조당에서 하는 일을 다 알아오게 했다. 그는 동관오와 양오가 장수가 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이들이 기어코 세자 신생을 죽이고 곡옥을 치러 가는 것이로구나 하고 직감했다. 이에 호돌은 비밀히 심복 부하를 급히 곡옥으로 보내어 태자 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호돌의 밀사로부터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신생은 그의 태부(太簿)인 두원관에게 말했다. 두원관이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제사 지내고 보낸 그 고기포가 6일이나 궁중에 있었다 하니 그 동안에 독을 넣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자는 곧 상감께 이를 사실대로 아뢰고 억울한 누명을 벗도록 하십시오. 여러 신하들 중에서 어찌 세자를 돕는 자가 없겠습니까. 이대로 죄를 뒤집어쓰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순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