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쓰러진 영척
"오늘은 좀 나아보이긴 하오만, 어서 병환을 털고 일어나셔야 하지 않겠소."
관중은 영척의 야윈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수염이 덥수룩한 영척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 없이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매우 날카롭고 형형했다.영척이 누워서 대답했다.
"이렇게 병석에 누워 상군(相君)의 염려를 끼치니 그저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관중이 위로하여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오. 영대부께서 그 동안 쉬지 않고 나랏일을 돌보느라 생긴 병환이신데....... 이번 기회에 요양하시어 쾌차하시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소. 하하하."
관중의 웃음은 어딘가 공허했다. 영척이 쓰러진 것은 벌써 두 주일 전이었다. 그는 제환공의 부름을 받고 급히 궁으로 가다가 그만 수레에서 굴러 땅바닥에 떨어졌다. 어자가 황급히 달려가 안았을 때는 노쇠한 몸이라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내의(內醫)가 진찰을 마치고 말했다.
"과로입니다. 워낙 연로하신 터라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요양하셔야겠습니다."
내의는 위문 오는 사람마저 사절하게 했다. 그날부터 영척은 병상에 누워 홀로 요양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편 관중은 내의를 따로 불러 영척의 병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서 알고 있었다.
"영대부님의 증세는 매우 심각합니다. 길면 서너 달, 어쩌면 한 달도 채 못 살지 모릅니다."
"길어야 서너 달이라구?"
"예, 관정승님."
관중은 내의의 말을 듣고 말없이 일어나 영척을 위문하러 방문한 것이었다.
"또 들르리다. 그동안 몸 간수 잘하시어 조당에서 만납시다."
관중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영척은 관중의 속마음을 헤아린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군께서도 건강에 더욱 유의하셔야지요. 저야 그렇다치고 백성들을 보아서라도 앞으로 10년, 20년 살아 계셔야 합니다."
"원, 별말씀을......."
관중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는 콧등이 시큰하며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마침 포숙아가 영척의 병문안을 왔다가 관중과 마주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지난번 관중의 부중에 세워진 삼귀지대 낙성식 때 만나고 나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중이를 크게 대접하라
"허허, 포군(鮑君)께서 어찌 행차하시오?"
관중이 먼저 손을 내밀어 포숙아를 반갑게 맞이했다. 포숙아가 대답했다.
"그대를 만나러 부중으로 갔더니 이 곳 영대부 부중으로 갔다기에 영대부 병문안도 할 겸 이렇듯 자네를 뒤쫓아온 것이라네."
"급한 일이 생겼나 보군."
포숙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영대부를 위문하고 나올 때까지 그대는 잠시 기다려 주게나."
포숙아가 안채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나왔다.
"자, 가면서 말하세."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나란히 수레를 타고 관중의 부중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주공이 내게 지시했던 일 하나가 있었지 않았겠나."
포숙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약 두 달 전에 제환공이 포숙아에게 북방의 두 나라 진(秦)과 진(晋)나라 동정을 살펴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 때는 규구 맹회를 통하여 주양왕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이미 천하 맹주로서 자리잡은 제환공의 입장에서는 장차 일어나는 신흥 세력에 대하여 살펴 대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선 진(晋)나라 경우는 자네의 예측처럼 여희라는 여자 때문에 고약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네. 세자 신생이 아무 래도 온전치 못할 것 같네. 그가 누군가? 바로 제강의 아들이 아닌가."
포숙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신생의 생모인 제강이 제환공의 딸이었으니, 제나라 입장에서는 군후의 외손자였던 것이다. 관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만일 세자 신생에게 어떤 화가 미친다면 참 애석한 일이네."
"그렇게 안 되길 바랄 뿐이지......."
포숙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관중이 물었다.
"그렇다면 북방 대책은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되겠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신생에게 고약한 일이 발생한다면 진(晋)나라에 대한 우호 정책은 일단 재검토하고 새로운 계책을 마련해야 할 걸세."
"세자 신생에게 탈이 난다면 다음번 군위를 이끌 공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자네는......?"
포숙아는 한참 동안을 궁리하다가 대답했다.
"세작들의 보고로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장자인 중이 공자가 가장 성품이 어질다고 하는데 이오 공자의 야심도 만만치가 않다네."
관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중이가 유력할 듯싶네."
포숙아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관중이 대답했다.
"만약 내가 없을 때라도 중이 공자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면 국빈으로 대우해 주게. 이십 년 전에 그를 한번 본 적이 있었네. 그 상을 보니 위대한 인물이 될 귀상이더군. 아마도 우리 주공에 이어 다음번 패자는 그가 될 걸세."
관중의 단언에 포숙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이의 나이 벌써 쉰이 넘은 걸로 알고 있네. 그런 나이에 언제 군위에 올라 패자의 길을 닦겠나?"
"아니, 그렇지가 않네. 내가 알기로 지금 포 땅에서 중이를 따르는 좌우의 인물들이 인걸일세. 그들 하나하나가 일국의 재상감이지. 그런 인걸들을 거느린 인물이니 어찌 천하의 패자가 되지 않겠나?"
포숙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내 언제라도 그가 우리 나라에 찾아온다면 최상의 예우로 대우하겠네."
포숙아는 반신 반의했지만 선선히 응낙했다.
'중이가 제2의 패자가 된다고? 이걸 믿어야 할지, 아니면 믿지 않아야 할 관중의 환상인지.......'
포숙아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중은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
"주공에게도 그렇게 보고해 주게나. 그리고 앞으로 북방 정책은 자네가 맡아 주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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