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2. 진목공의 꿈
유여의 귀순
그 후의 일이었다. 서융(西戎)의 주인 적반이 진(奏)나라를 시찰하러 왔다. 그는 진나라가 자못 강성한 걸 보고서 크게 부러워하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서융에 돌아간 적반이 유여에게 말했다.
"경은 진나라에 가서 모든 걸 시찰하고 겸하여 진후(奏侯)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잘 보고 오시오."
이에 유여는 진나라로 갔다. 진목공은 유여를 맞이하여 궁원에서 함께 노닐면서 삼휴대로 올라갔다. 진목공은 대(臺)에서 굽어보이는 화려한 궁실들과 아름다운 궁원을 자랑했다. 유여가 물었다.
"이 모든 것을 만드는 데 귀신을 부렸습니까, 또는 사람을 부려 만들었습니까. 귀신을 부렸다면 귀신들이 괴로웠을 것이며, 사람을 부렸다면 아마 백성들이 참으로 힘들고 괴로웠겠습니다."
진목공이 그 말을 이상히 생각하고 물었다.
"그대 오랑캐 나라는 예악과 법도가 없으니 무엇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지요?"
유여가 웃고 대답했다.
"예악과 법도가 중원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옛날에 성주들은 글로 법을 지어 백성과 굳게 약속하고서 겨우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후세에 이르러서는 점점 교만하고 음탕해져서 예악이란 명색만을 내세우고 실은 임금이 사치를 하고 법도의 위엄만 내세우고 아랫사람을 들볶았습니다. 이에 백성들의 원망은 나날이 높아가고 따라서 군위를 뺏기 위해 임금을 죽이는 자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랑캐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이 순후한 덕으로써 아랫사람을 대하므로 아랫사람은 충(忠)과 신(信)으로써 임금을 섬깁니다. 위와 아래가 한결같아 서로 속이는 일이 없고 글로 약속한 법을 서로 어기는 일이 없어서 특히 다스려야 할 필요조차도 없게 됐으니 이것을 지극한 다스림이라고 합니다."
진목공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진목공은 돌아가 유여에게서 들은 바를 백리해에게 말했다. 백리해가 대답했다.
"유여는 원래 진(晋)나라 사람으로서 비범한 인물입니다. 신은 전부터 그의 높은 명성을 들어왔습니다."
진목공은 더욱 불쾌했다.
"과인이 듣건데 이웃 나라에 성인이 있다는 것은 근심거리라고 합디다. 이제 유여처럼 훌륭한 사람이 오랑캐 밑에서 벼슬을 살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 진나라의 걱정이 아닐 수 있겠소?"
백리해가 의견을 내놓았다.
"내사 요는 기발한 지혜가 많습니다. 주공께선 이 일에 대해서 그와 함께 상의하십시오."
진목공은 즉시 내사 벼슬에 있는 요를 불러 이 일을 상의했다. 요가 아뢰었다.
"융주(戎主)는 궁벽하고 황량한 곳에 살므로 아직 중원의 번화한 음악을 모릅니다. 주공께서 시험삼아 아름다운 여자와 화려한 음악을 보내어 그 뜻을 흐리게 해보십시오. 한편 유여는 보내지 말고 적당한 시기까지 이 곳에 붙들어 두십시오. 오랑캐가 정치를 폐하다시피 게을러지고 따라서 그들의 상하가 서로 의심하게 되면 그 나라도 능히 빼앗아 우리 것으로 할 수 있거늘 하물며 그 신하 한 사람쯤이야 염려할 것 있습니까."
"그 말이 가장 그럴 듯하오."
그 뒤, 진목공은 늘 유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같은 그릇에 먹으면서 그를 적반에게 돌려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건숙, 백리해, 공손지들이 교대로 늘 유여와 함께 사방으로 다니면서 지형을 살피고 진나라 군사들의 병세 강약을 시찰했다. 유여는 마치 진나라의 대부가 된 것처럼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 한편 진목공은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곱게 단장시키고 음악에 정통한 사람 여섯을 골랐다. 드디어 내사 요는 그 미녀와 악공 여섯 사람을 데리고 오랑캐 나라로 가서 적반에게 바쳤다. 융주(戎主) 적반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날마다 음악을 즐기고 밤마다 그 아름다운 여자를 끼고 놀기에 정신이 빠져 마침내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유여는 일 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진나라를 떠나 서융(西戎)으로 돌아갔다. 적반이 수상한 눈초리로 유여를 보며 말했다.
"진나라에서 뭘 했기에 이제야 돌아왔소?"
유여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신은 돌려 보내달라고 졸랐으나 진후가 굳이 붙들고 놓질 않아서 겨우 이제야 왔습니다."
적반은 유여가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걸로 의심하고 전처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유여는 적반이 밤낮없이 여자와 음악에만 빠져 도무지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 걸 보고서 거듭거듭 간했다. 그러나 적반은 유여가 간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목공은 사람을 비밀히 서융으로 보내어 유여를 초청했다. 드디어 유여는 오랑캐를 버리고 진(秦)나라로 귀순했다. 진목공은 유여를 맞이하여 그에게 아경(亞卿) 벼슬을 주고 건숙, 백리해와 함께 나랏일을 보게 했다. 마침내 유여는 진목공에게 서융을 치도록 계책을 아뢰었다. 이에 진나라 삼군(三軍)은 물밀듯이 서융으로 쳐들어갔다. 유여의 지시를 받은 삼군은 서융의 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무찔렀다. 적반은 진나라 군사를 도저히 당적할 수 없어 드디어 진에게 귀순하기로 작정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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