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1. 진나라의 두 재상
명록촌의 노래
진목공은 깊이 백리해의 재주를 알고 나서 매사를 그와 의논하여 실행하는데, 마침내 그를 상경으로 삼으려 하자 그가 완강히 사양하며 아뢰었다.
"신의 재주는 별로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 신에게 건숙(蹇叔)이란 의형이 한 분 계신데 그의 재주는 신보다 열 배는 더 뛰어납니다. 주공께서 장차 열국을 호령하실 큰 뜻을 품으셨다면 그 건숙을 모셔다가 나랏일을 맡기시고 신으로 하여금 그를 보좌하여 돕게 하십시오."
진목공이 대답했다.
"과인이 그대의 재주는 보아서 알지만 건숙이란 사람의 이름은 듣느니 처음이오."
백리해가 하나하나 차분하게 설명했다.
"건숙이 비범하다는 것은 비단 주공만 모르시는 게 아닙니다. 송나라 제나라 사람들도 그를 모릅니다. 그러나 신만은 그의 재주를 알고 있습니다. 지난날 신이 제나라에 있을 때 공자 무지(無知)에게 일신을 맡기려고 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건숙이 신을 말렸습니다. 그가 말렸기 때문에 신이 제나라를 떠났고 그 덕분에 공자 무지의 재앙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신은 주나라에 이르러 왕자 퇴 밑에서 벼슬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 때도 건숙이 와서 옳지 못한 일이라고 신을 말렸습니다. 그래서 신은 다시 주나라를 떠났으므로 퇴의 반란에 가담치 않고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신은 그 뒤 우나라로 돌아가 우공 밑에서 벼슬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 때도 건숙이 장래가 없으니 옳지 못한 일이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 신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벼슬을 탐하여 우나라에 잠시 머물면서 우공을 섬겼습니다. 마침내 우리 나라는 멸망하고 신은 진(晋)나라에 사로잡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날 건숙이 떠나면서 신에게 주의 주던 말을 생각하고 도망쳤기 때문에 종의 신세를 면하긴 했으나, 결국 건숙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건숙이 신보다 지혜가 월등하다는 걸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는 지금 송나라 명록촌에서 세상을 등지고 한가히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속히 그를 초빙하십시오."
이에 공자 칩이 진목공의 명령을 받고서는 장사꾼으로 가장했다. 그리고 송나라에 가려고 우선 많은 폐백부터 준비했다. 백리해도 친히 건숙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공자 칩은 행랑을 꾸리고 소가 끄는 수레를 거느리고 송나라 명록촌으로 떠났다. 공자 칩은 송나라에 들어가서 명록촌에 당도했다. 밭을 갈던 농부들이 뚝 위에서 쉬며, 한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山之高兮 無瓚
途之兮 無燭
相將朧上兮 甘泉而土沃
勤吾四體兮 分吾五穀
三時不害兮 饗殖足
樂此天命兮 無業辱
산은 높은데 타고 올라갈 가마도 없고
길은 진흙투성이지만 촛불 밝힐 필요도 없네
농상을 바라보며 샘물은 달고 땅은 비옥하니
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오곡을 장만하도다
세 끼 밥을 걱정 않으니 조석으로 배부르도다
이렇듯 천명을 누리니 다른 욕심이 없노라
공자 칩은 수레 속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엔 속된 기운이 없었다. 그는 마음속 깊이 경복하여 탄식하고 나서 수레 끄는 자에게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마을에 군자가 계시면 좋지 못한 풍속도 교화된다고 하더라. 이제 건숙 선생이 계시는 동네에 들어서니 밭 가는 백성들도 다 고고한 기풍이 있구나. 내 아직 뵙진 못했지만 선생의 어지심을 의심할 수 없도다."
공자 칩이 수레에서 내려 밭 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건숙 선생의 집이 어디에 있소?"
한 농부가 대답했다.
"이리로 곧장 가면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나타납니다. 그 대나무 숲 왼편엔 샘이 있고 오른편엔 괴석들이 있고 그 가운데 조그만 띳집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집이 바로 건숙 선생의 집입니다."
공자 칩은 감사하다는 뜻을 정중하게 표하고 다시 수레에 올라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반 마장쯤 앞으로 갔을 때였다. 과연 울창하게 우거진 대나무숲 사이로 띳집 한 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라보였다. 그 곳에 이르자 공자 칩은 사방 풍경을 둘러봤다. 과연 풍치가 속세를 떠난 듯이 우아하고 조용한 기색이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처럼 그윽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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