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순치(脣齒)의 관계
우공은 처음에 진나라 순식이 길을 빌리러 왔다는 말을 듣고, 이것들이 괵나라를 치려는구나 짐작하고 대로했다. 그러나 우공은 급기야 구슬과 말을 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용솟음쳤다. 우공이 손으로 구슬을 만지며, 연신 말을 바라보면서 순식에게 물었다.
"이것은 그대 나라의 지극한 보배며 천하에 둘도 없는 물건이거늘 어째서 과인에게 바치는 것이오?"
순식의 대답은 청산유수 같았다.
"우리 주공은 오래 전부터 군후의 어진 덕을 사모하시고 군후의 강성함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감히 이런 보물을 자신이 가질 수 없다 하시고 귀국의 환심을 사고자 이렇게 보내신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반드시 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아니오."
순식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괵이 자주 우리 남쪽 변방을 치기 때문에 우리 주공은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화평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괵은 우리 진에게 땅을 내놓으라면서 응하질 않습니다. 우리 주공은 귀국의 길을 빌어 앞으로 그들의 잘못을 꾸짖을 생각입니다. 만일 길을 빌어 우리가 싸워 이기면 괵나라에서 노획한 물건을 모조리 다 군후께 바치고 우리 주공은 군후와 함께 화평의 맹세를 할 작정이십니다."
우공은 이 말을 듣고 마치 괵나라 부고가 자기 손에 들어온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곁에서 궁지기가 간절하게 간했다.
"주공은 진나라 청을 승낙하지 마십시오. 속담에 이르기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습니다. 진나라가 다른 나라를 속여서 이익을 취한 것은 하나둘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진나라가 우리 우와 괵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한 것은 우리 우와 괵이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돕고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괵이 망하면 그 다음의 불행이 우리 우나라에 닥쳐옵니다."
우공이 대답했다.
"진나라 군후가 귀중한 보물을 아끼지 않고 보내어 과인과 사귀기를 청하는데 과인이 어찌 길을 아끼리오. 더구나 진은 괵보다 십 배나 강한 나라다. 우리가 괵을 잃을지라도 진과 친하면 조금도 불리할 것이 없다. 그대는 물러가라. 그리고 과인의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
궁지기가 다시 간하려는데, 곁에서 백리해가 궁지기의 소매를 가만히 잡아당겼다. 바깥으로 나가자 궁지기가 백리해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가 간할 때 한마디도 돕지 않고 도리어 나를 말린 까닭이 무엇이오?"
백리해가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어리석은 사람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은 마치 좋은 구슬을 길에다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합디다. 옛날에 충신 비간이 죽음을 당한 원인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왕에게 간했기 때문이지요. 좋은 말도 듣지 않는 사람에겐 무용지물과 다를 바 있겠습니까? 그대도 너무 간하다간 자칫 신상에 해로울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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