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진나라의 계교
한편 북방의 진나라 부근에 우와 괵이란 조그만 두 나라가 있었다. 이 두 나라 임금은 같은 성씨로서 국토가 인접해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의지하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나라가 다 진나라 옆에 있기 때문에 늘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이나 말썽이 많았다. 괵공의 이름은 추(醜)였다. 그는 성품이 괄괄하여 싸움을 좋아하고 또 교만해서 가끔 진나라 남쪽 변경에 쳐들어가 양민을 노략질했다. 어느 날 변방에서 진헌공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 괵공이 또 변경에서 노략질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진헌공은 괵을 치기로 작정했다. 여희가 옆에 있다가 청했다.
"이번에도 세자 신생을 보내십시오. 그의 용맹은 널리 알려졌고 군사도 잘 부리므로 괵공을 물리치고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헌공은 여희의 말에 이미 많은 충격을 받았으므로 도리어 신생이 싸움에 나가서 괵을 무찌르고 이길까봐 두려웠다. 왜냐하면 신생이 많은 공로를 세우면 세울수록 그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진헌공은 누구를 싸움터에 장수로 보내느냐에 대해서 주저했다. 진헌공이 순식에게 상의했다.
"괵을 어떻게 쳐야 하겠는가?" 순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와 괵은 작은 나라이지만 서로 친한 사입니다. 우리가 괵을 치면 우는 반드시 괵을 돕습니다. 우리가 만일 군사를 옮겨 우를 치면 이번엔 괵이 반드시 우를 도울 것입니다. 신은 한꺼번에 두 나라와 싸워서 이겼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과인은 괵이 무슨 짓을 하든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 둬야 하는가?"
순식이 한 가지 계책을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괵공은 여색을 몹시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아름다운 여자를 한 명만 뽑아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좋은 옷을 입혀 괵공에게 보내고 순한 말로 화평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괵공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장차 여색에 빠져 나랏일은 잘 돌보지 않을 것이며, 자연 충성있는 신하들을 멀리 물리칠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려서 우리는 다시 뇌물을 견융(犬戎)에게 보내고 견융으로 하여금 괵국을 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이 싸우는 틈을 타서 다시 일을 도모하면 가히 괵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진헌공은 즉시 대부 순식의 계책대로 했다. 진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좋은 옷으로 치장시킨 후 괵공에게 보냈다. 괵공은 진나라에서 보낸 미녀를 반가이 받아들이려 했다. 곁에서 대부 주지교가 간했다.
"이는 진이 우리 나라를 낚으려는 수작입니다. 주공은 어찌 그 미끼를 삼키려고 하십니까."
그러나 괵공은 미녀를 얻는데 눈이 어두워, 간하는 주지교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드디어 순식의 계책대로 진헌공에게 사은하고 진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그 후로 괵공은 낮이면 음탕한 음악을 즐기고, 밤이면 그 미녀와 더불어 지냈다. 자연히 그는 나랏일에 게을러졌다. 주지교는 여색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공에게 다시 간했다. 괵공은 크게 노하여 주지교를 먼 하양관으로 보냈다. 즉 곁에서 잔소리 말고 먼 변방인 하양관이나 지키라고 한 것이었다. 이 때 견융은 이미 진나라 뇌물을 받고 병차를 일으켜 충분히 준비한 후 마침내 괵나라 경계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견융의 군사는 위내 땅에 이르러 괵군과의 첫 싸움에서 패했다. 이에 견융은 드디어 온 국력을 기울이다시피 하여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괵공은 다시 견융이 쳐들어오는 걸 보고 상전이란 곳에서 견융과 싸우기 위해 대기했다. 형세가 이쯤 되자, 진헌공은 다시 순식과 상의하여 계책을 세우고자 했다.
"이제 괵과 견융이 서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으니 과인이 다음 계책을 어찌 세워야겠소?" 순식이 아뢰었다.
"우와 괵 두 나라는 아직도 친한 사이입니다. 신에게 다른 계책이 있습니다. 처음엔 괵을 굴복시키고 다음은 우를 굴복시켜서 두 나라를 다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그런 좋은 계책이 있다면 속히 말하오."
"우와 괵, 두 나라 사이를 이간질하여 떼어놓아야 합니다. 주공은 많은 뇌물을 우나라에 보내시고 잠시 길을 빌어 괵을 치십시오."
"우가 순순히 말을 잘 들을까? 무슨 뇌물을 보내야 그들이 내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원래 우공은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어서 지극한 보물을 받아야만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다. 꼭 두 가지 물건을 보내야겠는데, 주공께서 선뜻 내놓을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경이 보내야겠다는 그 물건을 말해 보오."
"우공이 갖고 싶어하는 것은 좋은 구슬과 말입니다. 주공은 수극이란 지방에서 출토한 구슬과 굴이란 지방에서 출생한 말을 보내고, 우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청하십시오. 우가 구슬과 말을 받기만 하면 그 때부터 우리의 계책은 성공합니다."
"그 두 가지 물건은 나의 지극한 보물이오.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으리오."
"신은 주공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나라 길을 빌려 괵을 치면 괵은 우나라 원조가 없으므로 반드시 망합니다. 괵이 망하면 우도 혼자 살 순 없습니다. 그러면 그 구슬과 말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즉 구슬과 말을 우나라 부중에 잠시 맡겨 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아주 잠시 맡겨 두는 것입니다."
곁에서 이극이 염려했다.
"우나라에 두 현명한 신하가 있습니다. 그 두 사람 이름은 궁지기와 백리해입니다. 그들이 우리 계책을 짐작하고 방해하면 어찌하오?"
순식이 대답했다.
"우공은 욕심만 많고 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비록 두 신하가 간할지라도 구슬과 말을 받고 나면 절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진헌공은 즉시 구슬과 말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순식은 구슬과 말을 가지고 우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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