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2. 주양왕의 즉위
세자 책봉
주혜왕은 이 해 겨울, 병으로 위독했다. 태자 정은 계모 혜후가 변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하사 왕자 호를 제나라로 보내 자신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알렸다. 그런 지 얼마 후 주혜왕이 세상을 뜨게 되니, 태자 정은 주공 공과 소백 요와 상의하여 왕의 승하를 세상에 공표하지 않았다. 동시에 태자 정의 밀사는 주야로 말을 달려 제나라에 먼저 가 있는 왕자 호에게 밀서를 전했다. 왕자 호는 태자 정의 밀서를 보고 즉시 주혜왕의 죽음을 제환공에게 알려 사후 조치를 부탁했다. 이에 제환공은 모든 나라 제후를 노나라 조 땅으로 소집을 하니 정문공도 참석하여 입술에 피를 바르고 태자 정의 장래를 보증하는 서약에 가맹했다. 주왕실에 충성을 결의한 여덟 나라 군후는 각각 상표하는 글을 짓고, 각기 대부로 대표 한 명씩을 뽑아 주왕실로 보냈다. 주엔 제나라 대부 습붕과 송나라 대부 화수로와 노나라 대부 공손오, 위나라 대부 영속, 진나라 대부 원선과 정나라 대부 자인사와 조나라 대부 공자 무와 허나라 대부 백타 등 8국 대부들이 잇달아 당도하였다. 그들의 위의는 참으로 화려하고 성대했다. 그들은 주혜왕의 문병을 왔다 핑계하고 왕성 밖에서 일단 수레를 멈추었다. 그리고 왕자 호가 먼저 왕성으로 들어가서 태자 정에게 8국의 대부가 왔음을 알려 주었다. 태자 정은 즉시 주공 공과 소백 요를 불러 상의한 후 비로소 국상을 발표하니, 8국 대부는 붕어하신 주혜왕을 문상하는 한편 신왕을 배알하겠다고 청했다. 한편 주공 공과 소백 요는 태자 정을 받들어 주상을 삼으니, 모든 나라 대부는 각기 자기 나라 군후를 대신해 국상에 참례를 했다. 주공 공과 소백 요가 장례를 마친 후 태자 정 앞에 나가 절하고 태자에게 왕위에 오르길 청하니, 마침내 태자 정은 자연스럽게 왕위를 계승했다. 그가 바로 주양왕이다. 이리하여 만조 백관이 신왕에게 조하를 하니, 혜후와 숙대는 원통한 심정을 남몰래 호소할 뿐, 감히 드러내놓고 싫어하거나 모반하진 못했다. 그 이듬해 개원한 주양왕은 열국에 자신의 즉위를 도와 준 점에 대해서 감사장을 보냈다. 그리고 주양왕 원년 봄, 종묘에 제사가 끝나면 주공 공에게 명하여 제사 지낸 고기를 제나라에 보내 보필한 공로를 표창하기로 주양왕은 생각했다. 한편 제환공은 천하에 더욱 신의를 펴기로 결심하고 열국 제후를 규구 땅으로 소집했다. 규구로 가던 도중 제환공은 우연히 관중과 후계자 책봉에 대한 일을 이야기하게 됐다. 관중이 말했다.
"주왕실은 이번에 적계(嫡系), 서계(庶系)를 분별하지 않으려다가 하마터면 큰 변란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다음날에 주공의 자리를 계승할 세자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주공께서도 속히 세자를 세우고 자칫 골육 상쟁의 후환이 없도록 하십시오."
"중부(仲父)도 아시다시피 과인의 여섯 아들이 다 서출이오. 무휴가 장자지만 현명하기는 소(昭)가 제일이요. 위희(衛姬)가 과인을 제일 오래 섬겼으므로 그녀의 소생인 무휴에게 다음날 과인의 위를 전할까 하는 생각도 있긴 하오. 역아와 수작 두 사람도 그렇게 하라고 여러 번 말했었소. 그러나 과인은 소(昭)의 어짐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직도 후사의 뜻을 정하지 못하고 있소. 그러니 이제 중부가 제나라의 장래를 위해 세자를 결정해 주면 좋겠소."
관중은 역아와 수작이 다 간특한 무리들로서 평소부터 장래를 염두에 두고 야심이 많은 위희와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후일 무휴가 군위(君位)에 앉아, 그들과 안팎으로 합당하면 반드시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자칫하면 제나라의 맹주 지위가 흔들릴 것이 뻔했다. 그럼 공자 소(昭)는 어떤가. 소는 정나라에서 시집온 정희(鄭姬) 소생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성품은 조용하고 매우 정숙했다. 그리고 그녀의 친정인 정나라는 요즘 제나라의 동맹에도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공자 소가 제환공의 뒤를 이어 군위를 계승하면 정나라와 제의 친선 우호는 더욱 굳어질 것이다. 관중이 이것저것을 생각해 본 후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 제의 패업을 다음 대에도 지속시키려면 우선 어진 사람이라야 합니다. 주공께서 이미 소가 현명하다는 걸 아셨으면 마땅히 그를 세자로 세우십시오."
제환공이 약간 난처한 듯이 말했다.
"장자인 무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이번에 주(周)의 왕위도 주공의 힘을 빌어 정해졌습니다. 이번 규구에 가서 대회 때 모든 제후 중에 가장 어진 제후 한 명을 골라 공자 소에 관한 것을 부탁하십시오. 그리해 두시면 염려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제환공은 대답하지 않고 머리만 끄덕였다. 제환공과 관중이 규구 땅에 당도했을 때엔 이미 모든 제후도 다 모여 있었다. 특히 주왕실의 대표로 주공 공까지 와 있었다. 모든 나라 제후는 각기 관사에서 기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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