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6. 제환공과 굴완, 입술에 피를 바르다
제초수교(齊楚修交)
굴완이 다시 팔로 대군(八路 大軍)이 주둔해 있는 곳에 와서 제환공 뵙기를 청하니 이 기별이 관중을 통해 보고되었다. 제환공이 물었다.
"중부가 볼 때 굴완이란 자의 의도가 무엇이겠소?"
관중이 제환공에게 말했다.
"초나라에서 다시 사자가 온 것은 반드시 화평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공께선 그를 예의로써 대하십시오."
이에 안내를 받고 굴완은 들어가서 제환공에게 재배했다. 제환공이 굴완에게 정중히 답례했다.
"과인에게 할 말이 있다니 무슨 일로 오셨소?"
"우리 나라가 주왕께 해마다 포모를 바치지 않았으므로 군후께서 우리 나라에 오셨습니다. 이제 임금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계십니다. 군후는 대군을 거느리고 30리만 뒤로 물러가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임금께서 군후의 조건을 기꺼이 들으시리이다."
제환공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부가 귀국의 군후를 잘 보좌해서 앞으로 초나라가 다시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하게 된다면, 과인도 기꺼이 본국으로 돌아가 천자께 보람있는 보고를 할 수 있소. 이 이외에 과인이 무엇을 요구하리오."
굴완은 감사하다는 뜻을 말하고 돌아갔다. 굴완은 돌아가 초성왕에게 보고했다.
"제후는 신에게 군사와 함께 30리를 물러서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화평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왕께선 그들에게 신용을 잃지 마소서."
이때 세작이 들어와서 보고했다.
"적의 팔로 군마가 영채를 뽑고 돌아갑니다."
초성왕은 적의 동정을 보고 오도록 다시 세작을 보냈다. 저녁 무렵에야 그 세작이 돌아왔다.
"적은 30리 밖으로 물러가서 소릉 땅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초성왕이 투덜거렸다.
"적이 물러선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공연히 화평하자는 약속을 했구나."
그러자 자문이 곁에서 아뢰었다.
"저 8국 군후들은 오히려 한 필부에게도 거짓말을 않았는데 왕께선 한 필부로 하여금 군후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만드시렵니까."
초성왕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초성왕이 씹어뱉듯이 분부했다.
"황금과 비단 여덟 수레를 소릉에 가져다 여덟 나라 군후에게 주고 또 팔로군에게 음식을 대접하여라. 동시에 청모(靑茅) 한 수레를 제군에게 바치고 낙양의 천자에게도 표(表)를 올려라."
한편 허목공(許穆公)의 관이 본국에 도착했다. 이에 세자 업(世子 業)은 주상(主喪)이 되고 군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허희공(許僖公)인 것이다. 허희공은 제환공의 은덕에 감격한 나머지 또 대부 백타를 팔로군에게 보냈다. 허나라 백타는 군사를 거느리고 대군을 돕고자 소릉 땅에 당도했다. 이 때 제환공은 초나라 굴완이 예물을 가지고 왔다는 기별을 받고 모든 제후에게 지시했다. 지시를 받고 제후들은 각기 자기 나라 군사와 병차를 거느리고 일곱 대열로 나뉘어 칠방으로 벌려섰다. 제나라 군사만은 남쪽에 둔치고 직접 초나라 사자를 대했다. 먼저 제군 중에서 북소리가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서 이내 칠로군이 일제히 북을 울렸다. 북소리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중원의 위세를 유감없이 발휘하려는 것이었다. 굴완은 나아가 제환공을 뵈온 후 황금과 비단을 실은 여러 대의 수레와 군사들을 먹일 고기와 술과 잔치할 물건들을 자기가 거느리고 온 사람들을 시켜 바치게 했다. 제환공은 늘어선 팔로군 대장들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받고 팔로군의 대장들은 초나라가 바치는 물품과 청모를 일일이 살펴 기재하고 검열했다. 제환공이 다시 명령했다.
"굴완에게 그 청모는 거두어 뒀다가 친히 주천자께 갖다 바치라고 일러라."
일단 의식은 끝났다. 제환공이 굴완에게 물었다.
"대부는 우리 중원 군대를 본 일이 있으시오?"
"완은 궁벽한 남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직 중원의 성대한 군대를 못 봤습니다. 원컨대 한 번 보여 주십시오."
제환공은 굴완과 함께 융로를 타고 각국 군대를 사열하니, 각국 군대는 7방으로 가서 1방씩 맡아 섰는데 수십 리씩 연락 돼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제군에서 다시 북소리가 울리자 7방에서 북소리가 서로 응하니 그 소리는 우레와 같이 하늘과 땅을 진동시켰다. 희색이 만면한 제환공이 굴완을 돌아보며 자랑스레 말했다.
"과인에게 이런 대군이 있으니, 싸워서 어찌 이기지 못하며 공격해서 어찌 굴복을 받지 못하겠소?"
이에 굴완이 대답했다.
"군후께서 중원의 맹주가 된 것은 천자의 덕을 선포하고 만백성을 사랑한 때문입니다. 군후께서 덕으로 모든 제후를 대하니 그 누가 복종치 않으리까. 하오나 대군의 힘만 자랑하면, 비록 초국이 작기는 하지만 사방 산으로 성을 삼고 한수로 못을 삼겠소이다. 못이 깊고 산이 높으면 비록 공격하는 측이 백만 대군을 가졌다 해도 공략하기가 뜻대로 잘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굴완의 말에 제환공은 부끄러워하며 말을 했다.
"대부는 진실로 초나라의 훌륭한 신하로다. 과인은 귀국과 우호를 맺기를 원하오."
굴완이 대답했다.
"군후께서 우리 나라 사직을 복되게 하시고 동맹을 맺고자 원하시니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군후께선 진정으로 우리와 동맹을 맺기를 원하시옵니까?"
"과인이 어찌 두말을 하겠소. 귀국과 동맹을 맺겠소."
제환공이 두말을 않고 확답을 했다. 그날 밤 굴완을 영중(營中)에 머물게 한 제환공은 잔치를 베풀어 융숭히 대접했다. 이튿날 소릉 땅에 단을 쌓고 제환공은 맹주로서 단 위에 올라 제물로 소를 잡고 피를 받아 굴완은 초성왕의 명을 받아 제환공과 함께 맹서를 썼다.
自今以從 世通盟好
이제부터 대대(代代)로 우호할 것을 맹서하노라
이에 제환공이 먼저 피를 입술에 바르고 맹세했다. 나머지 7국 제후는 굴완과 함께 차례로 입술에 피를 바르고 맹세하는 예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