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관중과 굴완의 설전
"초나라는 우리가 올 줄을 어찌 알았을까?"
관중이 곁에서 아뢰었다.
"누군가 반드시 비밀을 누설한 때문입니다. 초나라가 사람을 보낸 걸 보면 무슨 말인가가 있을 것이니, 신이 마땅히 대의로 꾸짖어 저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싸우지 않고도 항복하게 하겠습니다."
제환공을 대신해 관중이 수레를 타고 나아가 공손히 굴완에게 읍을 하니, 굴완도 황망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우리 주공께선 귀국의 병차와 군사가 온다는 소문을 들으시고 신을 보내셨습니다. 주공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초는 남해 근처에 있고, 제는 북해에 있어 서로 아무 이해가 없는데, 군후께선 무슨 연유로 우리 땅을 들어서시는지 감히 그 까닭을 알고자 하십니다."
관중이 대답했다.
"옛날 주성왕(周成王)께서 우리 선군 태공(太公)을 제(齊)에 봉하시고, 소염공(召廉公)에게 제 땅을 하사하실 때 말씀하시길, 5후 9백(九伯)들이여 대대로 국방을 맡아 주왕실을 도우라. 동쪽은 바다까지, 서쪽은 하수(河水)까지, 남쪽은 목릉(穆陵)까지, 북쪽은 무체(無 )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하로 직분을 함께 않는 자 있으면 너희 제후들은 그 자를 용서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나라 왕실이 동쪽으로 도읍을 옮긴 후 모든 제후가 제각기 방자해져서 우리 군후께선 왕명을 받들어 맹주가 되어 옛 왕업을 다시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는 남쪽에 있으면서, 다른 제후들과 같이 천자께 포모(包茅)를 바치고, 왕의 제사를 도와야 할 것이어늘 일체 공물과 축주도 바치지 않으니, 이 까닭을 알고자 우리 군후께선 지금 귀국을 방문중입니다. 그뿐 아니라, 옛날 주소왕(周昭王)께서 초나라를 치시다 강물에 빠져 세상을 떠나신 것도 당신들 때문인데, 이러고도 귀국은 할 말이 있으신지요?"
굴완이 불쾌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주나라가 그 기강(紀綱)을 잃었기 때문에 천하가 주왕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초국만 탓하십니까. 단지 그간의 포모를 바치지 않은 것은 우리 임금께서도 그 잘못을 알고 계십니다. 또 옛날 주소왕의 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그 때 배가 풍랑에 뒤집혀져서 왕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만일 믿지 못하겠으면 강변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우리 초나라의 책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완(完)도 대답할 것은 다 했습니다. 나는 우리 임금께 돌아가야 합니다."
굴완은 말을 마치자 수레를 타고 표연히 돌아갔다. 관중도 돌아가 제환공에게 고했다.
"초나라 사람이 완강해서 말로 타일러 굽힐 수 없습니다. 마땅히 진군하십시오."
제환공의 명령이 내리자, 대군은 일시에 초나라 안으로 들어갔다. 대군은 즉시 경산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한수(漢水)가 멀지 않았다. 관중이 명령을 내렸다.
"이 곳에 주둔하고 일단 군세를 정비하라."
모든 제후가 관중의 명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대군이 이미 초나라 깊이 들어왔는데 왜 한수를 건너지 않소. 속히 건너가 승부를 결정냅시다. 이 곳에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관중이 모든 제후에게 대답했다.
"초가 사람을 보낸 것만 보아도 반드시 요처마다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군사란 한 번 싸움을 시작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곳에 머물러 우리의 큰 군세를 보여 주고 초로 하여금 우리를 두려워 하게끔 해야 하오. 그러면 반드시 저편에서 또 사람을 보내 올 것이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초의 항복을 받아야 합니다. 초를 치러 왔으니 초나라의 항복만 받으면 됩니다."
모든 제후는 관중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의론이 분분했다. 한편 초성왕은 이미 자문으로 대장을 삼고 갑병을 모아 한수 남쪽에 배치한 후였다. 초군은 모든 제후의 군마가 한수만 건너오면 내달아 싸우려고 대기중이었다. 세작이 와서 자문에게 보고했다.
"8국 대군은 경지에 주둔하고 있을 뿐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문이 초성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관중은 병법을 잘 알므로 만전을 기하지 않고는 쳐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계책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니, 사람을 한 번 더 보내어 저편의 군세와 그들의 의향을 살펴본 후 접전을 하든지 아니면 화평을 하든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누구를 보내는 게 좋겠소?"
초성왕이 물으니 자문이 대답했다.
"관중과 안면이 있는 굴완을 한 번 더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굴완이 이에 아뢰었다.
"그간 주왕에게 포모를 바치지 않은 것을 시인했으니, 임금께서 화평을 청할 의향이 계시면 신이 가서 양편의 분규를 해결해 보겠으나, 만일 끝까지 싸울 생각이면 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보내시는 게 좋을까 하옵니다."
"싸우거나 화해를 하거나, 모든 것을 경에게 일임하니 경이 좋도록 처리하기 바라오."
초성왕이 이렇게 말하니, 굴완은 분부를 받고 제나라 연합군에게로 다시 협상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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