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채나라를 공격한다
이후 강, 황 두 나라의 주장(主長)들은 각기 본국을 지키며 제환공의 명령이 올 때만을 기다렸다. 한편 제나라에 노나라의 공자 계우가 찾아왔다. 계우는 노희공의 전갈을 옮겨 전했다.
"우리 나라는 그간 주나라, 거나라와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군후께서 형나라와 위나라를 위해 수고하실 때 돕지 못한 것을 사죄합니다. 이제 군후께서 강, 황 두 나라와 동맹을 맺고 장차 큰일을 도모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남방을 치실 때는 원컨대 우리 노군이 군후의 말채찍을 잡고서 앞서 달리고자 합니다."
계우가 전하는 이와 같은 노희공의 전갈을 듣고 제환공은 크게 만족했다. 제환공은 장차 초나라 칠 것을 노나라와도 비밀히 약속했다. 한편 초군은 다시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문공은 죄없는 백성들이 화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화평(和平)을 청할 생각이었다. 대부 공숙이 아뢰었다.
"화평을 청하시다니 안 될 말입니다. 제나라가 초나라를 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우리 정나라를 위한 것으로 이렇듯 제환공께서 애쓰는데 그 은덕을 몰라 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굳게 지키며 때를 기다리십시오."
정문공은 생각을 돌리는 한편 사람을 제나라에 보내어 사세가 급함을 고했다. 제환공이 정나라에서 온 사자에게 계책을 일러 주었다.
"곧 돌아가서 제나라 구원병이 온다고 소문을 퍼뜨려 어떻든 초군의 공격을 늦추게만 하여라. 지금 예정한 대로 때가 오면, 과인이나 신하거나 간에 그 어느 한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호노로 나가서 채나라를 칠 것이다. 동시에 호노 땅으로 모여들 모든 제후와 힘을 합해 가지고 초나라를 무찌를 작정이다."
이에 제환공은 송(宋), 진(陳), 위(衛), 조(曹), 허(許) 모든 나라 군후에게 사자를 보내고 기약한 날짜에 다같이 군사를 일으켜 줄 것을 요망했다. 이 때의 명목은 채나라를 친다는 것이었지만 실속은 초나라를 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듬해가 되자 제환공은 친히 주왕실에 가서 주혜왕에게 신년 하례를 올렸다. 하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제환공은 즉시 남방으로 쳐들어갈 일을 의논했다. 이에 관중이 대장이 되어 습붕(濕朋), 빈수무(賓須無), 포숙아(鮑叔牙), 공자 개방, 수작 등을 거느리고 병차 3백 승에다 갑사(甲士) 만인과 함께 대를 나누어 일제히 진군하기로 했다. 태사가 날을 받아 아뢰었다.
"7일 날이 가장 길일(吉日)입니다. 이날 진발하도록 하소서."
이번엔 수작이 앞으로 나아가 청했다.
"신이 한 군대를 거느리고 소리없이 먼저 가서 채나라를 쳐서 점령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 군사가 오는 대로 한데 합치도록 하겠습니다."
제환공은 이를 허락했다. 한편 채나라는 늘 초나라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준비가 없었다. 제군이 쳐들어오는 걸 알고서야 채나라는 군사를 소집하고 수비를 서둘렀다. 채나라 성 아래 당도한 수작은 제군을 휘몰아 창검을 번뜩여 위엄을 드날리면서 공격했다. 제군은 밤늦게까지 성을 공격하다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물러갔다. 채목공은 제군의 장수가 바로 수작인 걸 알았다. 지난날 채희가 제나라 궁에 있었을 때, 수작은 그 밑에서 허리를 굽신거렸고 채희의 총애를 적지 않게 받았었다. 그래서 채목공은 수작이 능력도 별로 없는 변변치 못한 인물이란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채목공은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황금과 비단을 한 수레 가득 실어 수작에게 보냈다. 제나라 진중에 간 심부름 하는 사람은 그저 수작이 사정을 봐주면서 적당히 공격해 주기를 바란다는 채목공의 말을 전했다. 수작은 뇌물을 받고 몹시 기뻤다. 수작은 뇌물을 가지고 온 심부름 하는 사람에게 제환공이 7로(七路) 제후들을 모아 먼저 채를 치고 나중에 초나라를 칠 것이라는 군사 기밀까지 털어놓았다. 그날 밤 채목공은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하는 보고를 받자 크게 놀랐다. 그날 밤으로 채목공은 궁중 권속을 데리고 성문을 열고서 초나라로 달아났다. 이렇게 군후가 도망치자 채나라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성문을 열고 제군에게 항복했다. 수작은 이걸 오로지 자기 공로로 돌려 제환공에게 보고했다.
한편 채목공은 초나라에 당도하자 즉시 초성왕을 찾아뵙고 수작의 입에서 나온 그 깜짝 놀랄 정보를 털어놓았다. 초성왕은 제나라의 계책을 알고 급히 명령을 내렸다.
"군사와 병차를 모으고 싸울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그리고 정나라 정벌에 참가한 투장 등을 소환했다. 며칠 후 군사를 거느린 제환공이 채나라에 당도하니, 수작은 자기가 채나라를 정복했다고 크게 자랑을 했다. 한편 각국의 제후들도 각기 군사와 병차를 거느리고 속속 모여드니 그들 제후는 다음과 같다.
송환공 어설(宋桓公 御說)
노희공 신(魯僖公 新)
진성공 저구(陳成公 杵舊)
위문공 훼(衛文公 毁)
정문공 첩(鄭文公 捷)
조소공 반(曹昭公 班)
허목공 신신(許穆公 新臣)
이들 7국 제후와 맹주 제환공 소백(小白)까지 합치면 모두 여덟 나라 군후가 모였으니, 이들 8국 대군의 위엄은 실로 용맹하고 씩씩했다. 이중 허목공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초나라 토벌전에 참가하고자 군사를 이끌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달려와 제일 먼저 채나라에 도착했다. 제환공은 그 의기(義氣)에 감동해 조소공보다 윗자리에 서게 했으나, 수일 후 허목공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에 제환공은 채나라에서 3일을 머물고, 허목공의 죽음을 전군이 애도하게 하는 동시에 허목공을 후작에 대한 예로 장사 지내도록 허나라에 분부하니 남은 7국 군사는 초나라를 향해 남쪽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7국 대군이 초나라 경계에 이르니, 초나라 땅 저편에서 의관을 정제하고 수레를 길 왼편에 세우고 한사람이 허리를 공손히 굽히며 대군을 영접했다.
"대군을 거느리고 오시는 분은 제후가 아니십니까? 우리 초나라 군후께서 신으로 하여금 제후를 기다리게 한 지 오래이옵니다."
그 사람은 초나라 공족으로서 벼슬은 대부이며 성은 굴(屈)이라 하고 이름은 완(完)이라 하는 자로서 초성왕의 명을 받고 제군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에 제환공이 크게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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