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4. 세 가지 공적을 쌓다
형나라의 수난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형나라부터 도와야 할 것인지요?"
"모든 나라 제후가 우리 제나라를 섬기며 존경하는 것은 우리 제나라가 천하의 재앙과 환난을 구제하기 때문입니다. 전번엔 위를 돕지 않았고, 이번에 또 형을 돕지 않는다면 주공의 패업(覇業)에 위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럼 형과 위 두 나라 중에서 어느 쪽을 먼저 도와야 위신이 서겠소?"
"급한 형나라부터 도와 준 후에, 위나라 성을 쌓아 주면 이는 백세(百世)의 공업(功業)입니다."
"옳은 말씀이오."
제환공은 즉시 송(宋), 노(魯), 조(曹) 등 열국에 격문을 보냈다. 그 격문 내용은, 곧 형나라 섭북( 北) 땅으로 각기 군사를 보내어 우리 제군(齊軍)과 합세한 후 오랑캐의 침략을 받고 있는 형나라를 구조하자는 것이었다. 제나라 군대가 섭북에 당도했을 때, 송, 조 두나라 군대는 이미 와 있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북적의 세력은 점점 뻗어 오지만 형나라는 아직도 힘이 좀 남았습니다. 적군의 세력이 클수록 우리도 싸우기에 더욱 힘들 것이며,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 형나라를 도우면 나중에 우리의 공로도 과소 평가되기 쉽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형나라는 적군 앞에 무너질 것입니다. 또 오랑캐가 처음에 형나라를 이기면 반드시 피로할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려서 죽어 가는 형나라를 돕고 지칠대로 지친 적군을 치면 우리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많은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계책대로 했다. 우선 노, 주 두 나라 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겉으론 주장하고, 안으로는 세작을 보내어 형나라의 전쟁 상황을 은밀히 수소문했다. 제나라와 송, 조 연합군이 섭북 땅에 주둔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적군(狄軍)은 밤낮없이 형나라를 공격했다. 기진맥진한 형나라는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작은 급히 돌아와 사세가 다급함을 보고했다. 제환공은 이윽고 출동 명령을 내렸다. 제나라 군 영채의 문은 활짝 열렸고 병차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정연하게 서서 명령을 기다렸다. 그 때 들판 가득히 피난민 떼가 나타났다. 그들은 형나라 백성들이었다. 피난민은 속속 제나라 병영 안으로 들어갔다. 그 피난민 중에 한 사람이 대성 통곡하면서 영채 안으로 들어오며 쓰러졌다. 그 사람은 형후(邢侯) 숙안이었다. 제환공이 형후를 부축해 일으키고 안으로 모신 후 위로했다.
"귀국을 일찍 구원하지 못하고 이 지경이 되도록 한 것은 모두 과인의 잘못이오."
그날로 제환공은 송후(宋侯)와 조백(曹伯)에게도 알려 세 방면의 군사가 형나라를 향해 진격해 갔다.
한편 적주(狄主) 수만은 형성에 들어가 노략질을 하고 있다가 삼국 연합군이 온다는 보고를 받자 곧 곳곳에 불을 지르게 하고는 달아나 버렸다. 3국 군대가 형성(邢城)에 이르렀을 때는 온통 불길이 천지였고 오랑캐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삼국 군대는 오랑캐와 싸우러 갔다가 때아닌 불을 끄느라 진땀을 흘렸을 뿐이었다. 제환공이 형후 숙안에게 물었다.
"장차 이 성에서 사시려는지요?"
형후 숙안이 대답했다.
"피난간 백성이 대부분 이의(夷儀) 지방에 모여 산다고 하니, 그리로 가서 백성과 함께 지내고 싶소이다."
제환공은 3국 군대에 명해 이의성을 쌓게 하여 형후 숙안을 그 곳으로 옮겨가 살게 하고, 조묘(朝廟) 및 여사도 지어 주고 소, 말, 곡식, 비단 등을 제나라로부터 수송을 해 원조하니 이의성은 질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형나라 군후와 모든 신하는 기뻐했다. 백성들이 제환공을 칭송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위성을 쌓아 주다
사명이 끝난 송후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환공을 찾았더니 제환공이 송후를 보고 간청했다.
"위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형나라만 성을 쌓아 주고 위나라의 성을 쌓아 주지 않으면 위나라 사람들이 나를 원망할 것입니다. 군후께서 도와 주십시오."
송, 조 두 군후가 대답했다.
"우리는 다만 패군(覇君)의 지시를 바랍니다."
이에 제환공의 전령을 받고 연합군은 다시 위나라로 갔다. 삼태기와 삽 따위 연장을 준비하여 가지고 갔다. 위문공은 성 밖 멀리까지 나가서 연합군을 영접했다. 제환공은 영접 나온 맏사위 위문공이 베옷을 입고 거친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고 상복으로 나온 것을 보자 마치 불행을 겪는 친자식처럼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과인이 모든 제후의 힘을 빌어 군후를 위해 도읍을 정해 줄 생각인데, 어느 곳이 좋겠소?"
"이미 좋은 곳을 잡아 두었습니다. 바로 초구(楚邱)란 곳입니다. 쑥대밭이 되어 버린 이 나라에선 도성을 쌓으려 해도 비용을 마련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일은 과인에게 맡기시오."
제환공은 그날로 3국 군대에게 명하여 함께 초구로 갔다. 초구에 당도한 연합군은 공사를 일으키고 문재를 운반하고 조묘를 세웠다. 그 조묘 이름을 봉위(封衛)라고 했다. 당시 세상에서는 제환공이 망하는 나라 셋을 구했다고 칭송했다. 즉 노희공(魯僖公)을 군위에 세워 노나라를 안정시켰고, 둘째는 이의성(夷儀城)을 쌓아 형나라를 구했고, 셋째는 초구(楚邱)에다 도성을 쌓아 위나라를 도와준 것이었다. 이를 삼대 공로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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