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1. 노나라의 내란
맹임과 애강
북방 원정을 성공리에 마친 제나라 대군이 귀국길에 제수 근처에 이르렀다.노장공이 강변까지 나와서 제환공을 영접하여 잔치를 베풀고 승전을 축하했다. 제환공은 원래 노장공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특히 오랑캐 땅에서 가지고 온 전리품의 반을 나누어 주었다. 노장공은 거듭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노장공이 관중에게 슬쩍 물었다.
"우리 노나라 접경에 있는 소곡(小穀) 땅이 관정승의 녹읍 (祿邑)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과인이 귀국할 때 들러 볼까 합니다."
"소곡 땅을요?"
관중이 노장공의 갑작스런 말을 듣고 의아해 하는데 곁에 있던 제환공이 거들어 말했다.
"중부께서는 이번 원정 길에 큰 공로를 세우느라 휴식 한 번 제대로 취하지 못하셨으니 이번에 노나라 군후와 함께 식읍에 가서 피로도 푸실 겸 쉬었다 오시지요."
노장공이 소곡 땅을 들먹인 데는 까닭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후사를 관중에게 부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장공은 북방 원정으로 관중이 없는 사이에 많은 장정을 보내어 소곡 땅에다 큰 성채를 하나 쌓았다. 은근히 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잔치가 끝나고, 제환공은 임치로 돌아갔고 관중은 노장공과 함께 소곡 땅을 향해 갔다. 가는 도중 그들은 수레를 나란히 타고 담소했다. 노장공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관정승께서 정사를 다루시는 것을 볼 때마다 과인은 참으로 감복하는 바 매우 컸소이다. 이번에도 큰 공을 쌓으시고 귀국하시니 양국에 큰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소이다."
관중이 매우 당황하여 겸사했다.
"과하신 분부입니다. 군후께서 외신(外臣)을 어여삐 봐주시는 덕분입니다."
한차례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노장공이 느닷없이 말했다.
"관정승께서는 과인이 없더라도 우리 노나라를 각별히 형제국으로 돌봐 주십시오."
관중이 서둘러 위로했다.
"군후께서 아직 춘추 정정하신데 어인 말씀이십니까. 외신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나이다."
노장공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때의 일이었다.
-노장공이 즉위한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그러니까 벌써 29년 전의 일이다. 노장공이 낭대(郞臺)에서 잔치를 열고 있었다. 이 때 노장공은 대 위에서 신하와 그 신하들의 가족들을 굽어보다가 한 아름다운 처녀를 발견했다. 그 처녀는 당씨(堂氏)의 딸 맹임(孟任)이었다. 노장공은 맹임에게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한 내시를 시켜 맹임을 불러오게 했다. 그런데 맹임은 내시의 전갈에 순순히 따라오지 않았다. 노장공은 헛걸음을 치고 온 내시에게 다시 분부했다.
"한번 더 가서 진심으로 과인을 섬기면 마땅히 부인(夫人)으로 삼겠다는 말을 전하여라."
맹임은 이 전갈을 받고 내시에게 단단히 다짐을 해 두었다.
"이 몸을 부인으로 삼겠다는 그 약속을 천지 신명께 맹세하시라고 전해 주세요."
노장공은 천지 신명께 맹세하겠다고 했다. 맹임은 그제서야 노장공에게 왔다. 그리고 칼로 자기 팔뚝을 찔러 피를 흘리면서 두 사람의 약속을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그날 밤, 맹임은 노장공과 함께 낭대에서 동침했다. 이튿 날 노장공은 맹임을 수레에 태우고 궁으로 돌아갔다. 그런지 1년이 지나서 맹임은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반(般)이라고 했다. 이에 노장공은 맹임을 부인으로 삼겠다는 뜻을 모친인 문강에게 청했다. 문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강은 노장공을 어떻게 하든 간에 자기의 친정 제나라 여자와 결혼시킬 작정이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문강은 친정 오라버니인 제양공이 기나라를 치고 돌아올 때 마중 나갔다가 끝내 그를 설득하여 갓난아기 딸과 노장공을 약혼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제양공의 딸 애강(哀姜)은 그 때 나이 겨우 한 살이었다. 그래서 노장공은 20년을 기다려 지난번 문강의 유언에 따라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니 노궁(魯宮)의 정실 부인은 애강이 되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므로 맹임은 노장공의 정실 부인이 되지 못하고 허구한 세월을 보내야 했고, 마침내는 첩실이 되고 말았다. 20여 년이 넘도록 노나라 육궁(六宮)의 제반사를 다스려온 맹임은 울화병이 생겨 병석에 드러눕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후 일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노장공은 맹임의 죽음을 몹시 괴로워하고 슬퍼했으나 하는 수 없이 첩에 대한 예로써 장사지냈다. 이 일이 있은 후 노장공은 애강이 더욱 미웠다. 그래서 애강은 비록 부인으로 있었지만 노장공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노장공은 아무래도 선군을 죽인 원수의 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애강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다만 잉첩으로 따라온 그녀의 친정 동생 숙강에게서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계(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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