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4. 북방 원정에 나서다
유아의 가르침
이 때, 저편 산 위에서 이상야릇한 괴물 하나가 뛰어나왔다. 제환공이 눈을 흡뜨고 그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 괴물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짐승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키가 1척 남짓하고 붉은색 옷을 입고 검은 관을 썼는데, 뭔가 붉은 것을 두 발에 붙이고 있었다. 그 괴물은 제환공을 향하여 팔을 끼고 세 번 읍한 후 마치 영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갑자기 오른손으로 옷을 걷어올리고 석벽 사이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제환공이 크게 놀라 관중에게 물었다.
"경도 보았소?"
관중이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환공은 방금 본 그 괴물 모양을 자세히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유아(兪兒)인 듯합니다."
"유아라니, 그게 무엇이오?"
제환공의 묻는 말에 관중이 설명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북방엔 등산의 신이 있다고 하옵니다. 그 신을 유아라 하는데, 유아는 천하의 패왕이 될 어른에게만 나타나 보인다 합니다. 주공께서 방금 보신 것이 그 유아인 듯한데 그가 읍하고 영접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 것은 주공께 적을 무찌르라는 뜻이며, 옷을 걷어올린 것은 앞에 물이 있다는 것이며, 오른손으로 옷을 걷어올린 것은 오른편의 물이 깊다는 뜻이니 주공께 왼편으로 가시라는 뜻인가 하옵니다."
유아란 것을 알아낸 관중의 식견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관중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물이 앞을 가로막았으니 다행히 석벽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선 군사는 산 위에 진을 치고, 사람을 보내어 물의 형세를 자세히 살핀 뒤 군마를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관중은 군사에게 명해 물의 형세를 알아오라 분부하니 한참 뒤에 돌아와 보고했다.
"산에서 5리쯤 내려가니 비이계가 있습니다. 물은 넓고 깊어서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 합니다. 원래 그 곳은 뗏목으로 건너는데, 이번에 융주가 뗏목을 모두 거둬 버렸고, 오른쪽의 물이 깊어 몇 길 되지만 왼편을 따라 3리쯤 가면 수면이 넓고 얕아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합니다."
제환공이 보고를 받고 손바닥을 비비며 감탄했다.
"유아가 보여 준 징조가 이렇듯 영험하다니 놀랍구나."
연장공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비이계는 얕은 곳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건널 수 있다니 이는 하늘의 도우심이라. 군후께서는 반드시 이번 일이 성공하실 것이외다."
제환공이 물었다.
"여기서 고죽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오?"
연장공이 대답했다.
"비이계를 건너 동쪽을 향하여 똑바로 가면 처음이 단자산(團子山), 다음이 마편산(馬鞭山), 그 다음이 쌍자산(雙子山)입니다. 이 세 산 사이가 약 30리씩이며, 그 곳에 바로 상(商)나라 때, 고죽삼군(孤竹三君)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세 산을 지나 다시 25리를 가야만 무체성(無 城)에 이릅니다. 그 곳이 바로 고죽국의 도읍입니다."
이 때 호아반이 본부병을 거느리고 먼저 물을 건너겠다고 자청했다. 관중이 분부했다.
"군사가 한 곳으로 가다가 적을 만나면 진퇴양난인지라, 모름지기 두 길로 나눠서 가도록 하여라."
모든 군사는 대나무를 베어 칡덩굴로 얽어매니 삽시간에 수백 개의 뗏목이 생겨났다. 그 뗏목에 말과 병차를 실을 생각이었다. 그들은 뗏목을 이끌고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모든 군사와 말을 두 대로 나눴다. 왕자 성부와 고흑이 일군을 거느리고 오른편 뗏목을 타고서 건너는 것을 정병(正兵)으로 삼고, 공자 개방과 수작은 제환공을 모시고 그 뒤를 접응했다. 또 빈수무와 호아반이 일군을 거느리고 왼편 뗏목을 타고서 건너는 것을 기병(奇兵)으로 삼고, 관중과 연지름이 연장공을 따라 그 뒤를 접응했다. 비록 진로는 좌우 그대로 나뉘었으나 그들은 단자산 아래에서 모이기로 했다.
황화원수의 대패
한편 무체성의 답리가(答里呵)는 제나라 군사에 대한 그 후 소식을 몰라 다만 하졸을 비이계로 보내어 적정을 알아오게 했다. 하졸이 가 본즉, 계변엔 대나무 뗏목이 가득 늘어서 있고 병마가 분분히 물을 건너고 있었다. 하졸은 황망히 성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답리가는 크게 놀라 즉시 황화원수에게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적을 막도록 명령했다. 밀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몸이 이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원컨대 속매를 거느리고 가서 선봉이 되겠습니다."
"여러 번 패한 사람과 함께 가서 막강한 제군을 어찌 상대 할 수 있으리오."
황화원수는 이렇게 비웃으며 선뜻 말에 올라 출발했다. 답리가가 미안해서 밀로에게 말했다.
"서북쪽에 있는 단자산은 동쪽에서 이 곳으로 오는 중요한 길입니다. 번거롭겠지만 병사를 거느리고 가셔서 그 곳을 지켜 주오. 내 곧 뒤따라가리다."
밀로는 비록 응낙은 했으나 황화원수에게 당한 모욕 때문에 매우 불쾌했다. 한편 황화원수는 비이계에 당도하기도 전에 고흑의 전위 부대와 만나 곧 양편 군사는 싸웠다. 고흑의 부대는 황화의 군대가 많아 뒤로 밀렸다. 그 때 왕자 성부가 달려와 합세하니 양쪽 군대는 엇비슷해져 접전을 벌였다. 황화원수와 왕자 성부가 어울려 50여 합을 겨뤘으나 기량의 차이가 없어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 때 후면으로부터 제환공의 본대가 들이치고 좌우에서 개방과 수작이 협공하니 황화원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군사를 버리고 홀로 도망쳤다. 홀로 도망을 친 황화원수는 단자산 가까이까지 와서 산 위를 바라보니 군마가 가득 모인 가운데 제 . 연 . 무종 세 나라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빈수무가 먼저 물을 건너 단자산을 점령했던 것이다. 황화 원수는 감히 산을 지나가지 못하고, 말을 버린 후 나무꾼으로 변장을 하고 사잇길로 빠져 달아났다. 크게 승리한 제환공은 단자산에 이르러 군마를 한 곳에 쉬게 하고, 다시 진군할 일을 논의했다. 한편 밀로는 군사를 이끌고 마편산에 당도하니, 전초병이 급하게 보고했다.
"제군이 벌써 단자산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니 이 곳에 진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밀로는 마편산에 진을 쳤다. 얼마 후, 황화원수는 겨우 목숨을 보전해 마편산 아래에 이르렀다. 황화원수는 자기 군사들이 도망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병영 안으로 들어가니, 밀로가 자리에 높이 앉아서 분개한 얼굴로 그의 꼴을 보고 비웃음의 말을 던졌다.
"싸울 때면 언제나 이기는 장군께서 어이하여 이번에는 혼자 이런 꼴로 왔소?"
황화원수는 얼굴을 붉히며 술과 음식을 청하니 밀로는 볶은 보리 한 되를 내주고, 타고 갈 말을 청하니 발바닥에 징도 박지 않은 말을 내주었다. 황화원수는 밀로를 크게 원망하며 그 길로 무체성으로 들어가 주장 답리가에게 청원했다.
"원컨대 군사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반드시 이 원한을 씻고야 말겠습니다."
답리가가 탄식을 했다.
"내가 원수(元帥)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 꼴이 됐구려."
황화원수가 다시 답리가에게 말했다.
"제후가 군사를 일으킨 주요 원인은 영지(令支)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하오니 밀로의 목을 베어 제후에게 바치고 강화를 청하면 좋으리라 생각하옵니다."
"밀로가 얼마나 급했으면 내게 의지하러 왔겠소? 나를 믿고 찾아온 사람을 어찌 목을 칠 수 있으리오?"
황화원수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 답리가였다. 곁에 있던 재상 올률고가 답리가에게 아뢰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패함으로써 도리어 공을 세울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계책이오? 속히 말하시오."
올률고의 말에 답리가는 반갑게 물었다. 올률고는 자기의 계책을 차근차근 답리가에게 아뢰었다.
"우리 나라 북쪽에 이름은 한해(旱海)라고도 하며, 미곡(迷谷)이라고도 하는 땅이 있는데 그 곳은 모래와 자갈뿐 물과 풀은 찾아봐도 없는 메마른 곳이 있습니다."
"그렇소, 나도 말로는 들어보았소."
답리가가 맞장구를 쳤다. 올률고가 계속해서 말했다.
"옛부터 사람들이 시체를 그 곳에 버려서, 대낮에도 늘 귀신이 나타나며 찬바람이 일어납니다. 그 바람을 쐬기만 하면 사람이건 말이건 다 상합니다. 즉 모발(毛髮)만 그 바람에 쐬어도 죽습니다. 또 바람과 모래가 뒤섞여 일어나면 지척을 분별할 수 없어 마치 길 없는 골짜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 산골 길은 몹시 복잡해서 한번 들어만 가면 나오질 못합니다. 겸하여 독사와 맹수가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편에서 한사람이 적에게 가서 거짓 항복을 하고 적을 저 무서운 곳으로 유인하면 싸우지 않고도 적을 다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군마를 정돈하고 앉아서 적이 거꾸러지는 걸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어찌 묘한 계책이 아닙니까?"
답리가가 물었다.
"제군이 그 곳으로 갈 리 있겠는가?"
올률고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주공께선 궁중 권속과 함께 잠시 양산(楊山)으로 행차하십시오. 그리고 성중 백성들로 하여금 다 산곡으로 피난하게 하고, 성을 완전히 비워 두십시오. 거짓 항복한 사람이 제후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 주공이 사적(砂績)으로 도망갔으니 군사만 빌려 주면 뒤쫓아가서 무찌르겠다고 하면, 적군이 곧이 듣고 반드시 추격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계책에 빠집니다."
이 말을 듣자 황화원수는 크게 기뻐하며 자기가 가겠노라고 자청했다. 마침내 황화원수는 병졸 천 명을 거느리고 계책대로 떠났다. 황화원수는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밀로를 참하여 그 목을 들고 가지 않으면, 제후가 어찌 내 말을 믿으리오. 만일 이 일이 성공하면 주공도 나를 꾸짖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황화원수는 마편산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한편 밀로는 마편산에서 제군과 서로 대치(對峙)하고 있었다. 이 때 마침, 밀로는 황화원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오는 줄로 잘못 알고 흔연히 나가서 영접했다.
"장군은 먼 길을 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소?"
밀로는 허리를 굽혔다. 황화원수는 때는 이 때다 하고 생각했다. 순간 황화원수는 칼을 뽑아 밀로를 쳤다. 굽혔던 허리를 펴기도 전에 밀로의 머리는 칼에 맞아 땅바닥에 구르고 몸통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를 본 밀로의 신하 속매는 대로하여, 즉시 말에 올라 칼을 높이 들고 황화원수에게 덤벼들었다. 양편 군사는 각기 그 주인을 도와 싸움이 벌어졌다. 같은 편끼리 서로 치고 죽였다. 결국 속매는 당할 수가 없어 도망쳤다. 도망치다 보니 그 자신 돌아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속매는 호아반의 진영으로 가서 투항했다. 그러나 호아반은 속매를 용서하지 않고 그 죄를 크게 꾸짖은 후 군사들로 하여금 끌어내 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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