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2. 밤은 길어 언제 아침이 될까
신생의 위기
그 뒤 진헌공은 여희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소생인 해제를 세자로 세우려고 하루는 여희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 이 말을 듣자 여희는 속으로 너무나 기뻐 졸도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희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세자인 신생(申生)이 어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신하들은 반드시 해제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장성한 중이와 이오가 있어 그들마저 신생과 우애가 깊으니 이제 젖먹이 아기인 해제가 형제들의 지지를 받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여희는 재빨리 속으로 사세를 살펴 궁리해 보고는 천연덕스레 진헌공에게 아뢰었다.
"지금 태자가 누구라는 걸 모든 제후가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생이 어질고 허물없음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시어 첩의 모자를 이토록 생각하시어 세자를 폐하려고까지 하십니까. 천첩은 높으신 뜻과 바다보다 넓으신 은총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디 세자를 그냥 두소서. 만일 세자를 폐하시라고 하시면 천첩은 죽음을 택하고 말겠습니다."
진헌공은 여우같이 약아빠진 여희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세자 문제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진헌공에게 총애를 받는 두 대부가 있었으니 하나는 양오(梁五)요, 또 하나는 동관오(東關五)라 했다. 그들은 밖의 일을 진헌공께 고해 바치고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부렸다. 그래서 이들 둘을 이오(二五)라 불렀다. 또 시(施)라는 배우가 있었으니, 그는 매우 아름답고 영리하고 꾀도 많으며 구변도 좋은 미소년이었다. 시를 매우 사랑한 진헌공은 잠자리까지 같이 했을 정도니, 그는 제맘대로 궁성을 출입했고 마침내는 여희와도 정을 통해 비밀리에 그들의 정은 깊어만 갔다. 어느 날, 그날도 여희와 시는 한바탕 정을 통하고 난 뒤 나른한 몸을 침상에 누이고 있다가 생각난 듯이 여희가 자기의 심중을 시에게 말했다.
"어찌하면 세 공자를 이간시키고 내 아들 해제를 세자로 세울 수 있을까?"
시가 대답했다.
"이 일을 원만히 하자면 세 공자를 구실을 붙여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이오(二五)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니 부인은 그들과 손을 잡으시오. 그들이 계책을 세우고 주공께 진언하면 일이 성사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시에게 많은 금과 비단을 내리며 여희는 부탁했다.
"일만 뜻대로 된다면 내 무엇을 아끼리오. 그대는 나의 비밀 낭군이고 그들 이오는 나의 심복이 될 테니....... 그러니 양오와 동관오에게 이것을 나눠 주게."
시는 대답을 하고 나와 양오를 찾았다.
"군부인(君夫人)께서 대부와 친숙코자 약간의 물건을 보내셨습니다. 이건 우선 경의를 표하는 뜻이오."
시의 말에 양오가 크게 놀라 물었다.
"군부인께선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그 까닭을 밝히지 않으면 나는 결단코 받지 않으리라."
양오의 말에 시는 여희의 소망을 말했다. 그제야 양오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일을 하려면 우선 동관오와 손을 잡아야 한다."
얼마 후, 양오와 시는 함께 동관오의 집으로 갔다. 그 날 세 사람은 깊숙한 방 속에 모여 흉금을 터놓고 함께 앞날의 일을 상의했다. 세 사람은 마침내 여희의 치마폭으로 들어갈 굳은 언약을 했다. 이튿날이었다. 양오가 조례를 마친 후, 진헌공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곡옥(曲沃) 땅은 우리 진나라에서 처음으로 수령(守令)을 보낸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군의 종묘가 그 곳에 있습니다. 또 포(蒲)와 굴(屈)은 오랑캐 땅과 매우 가깝습니다. 모두가 중요한 땅입니다."
양오가 진헌공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 세 고을은 반드시 다스릴 주인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만일 종묘를 모신 중요한 고을에 주인이 없으면 백성들도 주공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오랑캐들도 슬며시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진헌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양오가 준비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먼저 세자를 보내어 곡옥 땅의 주인이 되게 하십시오. 그후 포와 굴 땅에는 공자 중이와 이오를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세 공자께서 중요한 변경의 세 지역을 다스리고 주공께서도 성에 좌정하시어 나라를 통어하신다면 이야말로 진나라의 장래는 반석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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