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1. 위나라 정벌
과거를 잊지 말라
한편 정나라에서 부고가 왔다. 정여공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주왕실에서 선물을 받고 돌아오던 중에 병을 얻었다. 그리고 겨우 본국에 도착하자 손 써 볼 사이도 없이 바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에 모든 신하들은 세자 첩(捷)을 받들어 군위에 모셨다. 그가 바로 정문공이다. 정문공은 임금이 되자 즉시 사자를 보내어 제환공에게 동맹을 청했다. 혹시 자기 나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겁이 나서였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벌써 동맹을 청해 온 나라가 여럿입니다. 시기를 늦추면 의심이 생기고 자칫 정나라가 초나라에 조공을 보내는 일이 또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주공께서는 송 . 노 . 진 . 정 네 나라와 회견하시고 동맹하십시오."
이에 제환공은 네 나라에 사자를 보내 통지하고 기일에 맞추어 유(幽) 땅으로 갔다. 네 나라 군후도 당도하여 함께 회견한 후 동맹을 맺었다. 모든 군후들이 제환공을 맹주로 받들어 섬기는 모습이 예전과 달리 정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맹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오는 제환공의 기분은 몹시 좋았다.
"도착하는 즉시 잔치를 열고 축하할 수 있게끔 준비해 두게 하거라. 그리고 모든 신하들을 입궁하게 하라."
사자는 서둘러 돌아오자 제환공의 명을 전갈하여 곧 준비를 시켰다. 제환공이 궁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모든 신하들이 도열하여 제환공을 환영했다. 제환공은 곧 잔치 자리로 갔다.
"즐겁도다! 오늘날이여!"
제환공은 술잔을 높이 들고 즐거워했다.
"천수(千壽)하소서!"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포숙아가 앞으로 나서더니 큰 잔을 잡고 제환공에게 술을 따라 바쳤다.
"패업을 경하합니다."
제환공이 흔연히 술잔을 받아 마셨다.
"모두 경들의 덕분이오. 그대와 중부(仲父)가 있으니 이렇듯 좋은 일이 있는 게 아니겠소."
제환공이 반쯤 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포숙아가 다시 아뢰었다.
"총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는 비록 즐거울지라도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지난날 망명하시던 때를 잊지 말지며, 관중은 지난날 함거 속에 잡혀오던 어려운 때를 잊지 말지며, 영척은 소치던 목자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늘 같은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제환공이 먹던 술까지 확 깨고 정신이 번쩍드는지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과인과 모든 대부들은 포숙아의 말을 잊지 말지니 이는 제나라 사직의 무궁무진한 복이로다."
모두들 기쁘게 술잔을 들고 함께 즐겼다.
한편, 주혜왕은 제환공이 유 땅에서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자 사자를 보냈다. 제환공은 사자를 공관으로 영접하고 왕명(王命)을 전해 받았다.
"이제 제후(齊侯)를 방백(方伯)으로 삼고 태공(太公)의 직위와 불의를 정벌하는 대임을 맡기니, 위후(衛侯) 삭(朔)이 퇴를 도와 왕위에 앉게 한 사실이 있은즉 짐은 그 때의 분함을 오늘까지 잊지 못하니 수고스럽지만 백구(伯舅)는 위를 쳐 이 분한을 풀어 주기 바라노라."
제환공은 왕명을 받자 곧, 친히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 때는 위혜공 삭이 죽고 위의공(衛懿公)이 임금이 된 지 3년이 된 때였다. 위의공은 제군이 자기 나라로 쳐들어오는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군사를 거느려 나가 싸웠다. 두 나라 군사가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위군은 대패하여 도망쳤다. 제환공은 바로 위성(衛城) 아래로 쳐들어가 왕명을 선양하고 위의 죄를 일일이 들추니, 그 때야 제군이 쳐들어온 이유를 위의공은 알았다.
"그것은 선군의 잘못이지 과인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위의공은 큰아들 개방(開方)에게 금과 비단 다섯 수레를 바치고 강화하도록 분부했다. 개방은 제환공에게 뇌물을 바쳐 올리고 강화를 청하여 죄를 면코자 하니 제환공은 말했다.
"자고로 아비가 지은 죄는 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왕명을 받고 온 데 불과한 과인이 어찌 위나라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으리오."
제환공은 위나라의 뇌물을 모두 낙양의 사자에게 주고 위나라를 용서해 주는 것이었다. 이 때 세자 개방은 위나라를 떠나 제나라에 가서 벼슬을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환공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아뢰었다.
"제나라에 가서 군후를 모시고 싶습니다."
"그대는 위후의 장자다. 다음날 군후에 오를 몸이 어찌 군후를 버리고 신하로서 과인을 섬기려 하는가?"
제환공의 말에 개방이 아뢰었다.
"명공(明公)은 천하의 맹주이시며 어진 군후이십니다. 말고삐를 잡고 모실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어찌 위나라의 임금 자리만 못하다 하리이까."
이에 제환공은 개방에게 대부 벼슬을 주고 위의공과 화친한 후 수레에 태워 함께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를 몹시 사랑하여 아꼈다. 이후 제나라 사람들은 제환공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세 사람을 삼귀(三貴)라 불렀는데 바로 수작, 역아, 개방이었다. 한편, 진(晋)나라에서 사람이 왔다. 정식 사자가 아니라 진나라 세자의 부중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관중의 부중으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지금 세자 신생의 처지가 매우 외롭습니다. 외가(外家)이신 제나라에서 도움을 주십시오."
관중은 머지않아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고 나서 진(晋)과 진(秦), 두 나라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으로 있었다. 그래서 흔쾌히 응낙했다. 과연 진나라와 세자 신생의 처지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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