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6. 초문왕의 뺨에 화살이 꽂히니
제환공, 맹주 칭호를 받다
한편 제환공은 정나라 군위를 정해 준 후, 위(衛) . 조(曹) 두 나라가 지난 겨울에 또한 동맹에 가입하겠다고 자진해서 청해왔기 때문에 다시 열국 군후를 모은 후 새로 규약을 정하고자 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주공은 새로 패업을 세웠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간단히 하십시오."
제환공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간단히 하라니, 어떻게 하는 것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진(陳), 채(蔡), 주는 북행(北杏) 땅에서 맹회한 이래로 우리 제나라를 배신한 일이 없으며, 조(曹)나라는 비록 맹회(盟會) 때에 불참했으나 송나라를 쳤을 때 함께 거사했습니다. 그러니 이 네 나라는 두 번씩 오라 하지 마시고, 다만 송, 위 두 나라가 한 번도 회에 협력한 일이 없으니 이번엔 그들만을 부르기로 하고 모든 나라가 한마음으로 단결되면 그 때에 다시 모두 모여서 규약을 정하도록 하십시오."
그 때 시신이 들어와 아뢰었다.
"주왕(周王)께서 송(宋)이 조정에 들어와 예로써 조례했다는 것을 우리 나라에 알리도록 사신 선멸을 보냈는데, 선멸은 이미 위나라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관중이 아뢰었다.
"이쯤 되면 송나라 문제는 제대로 결말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자의 사신이 위나라까지 왔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주공은 친히 위나라에 가셔서 모든 제후를 불러 회견하십시오."
그래서 제환공은 사자를 송 . 위 . 정나라로 보내어 위나라 견(甄) 땅에 모이도록 했다. 마침내 이들 나라의 군후들과 천자의 사신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그들 세 나라 제후들은 제환공이 삽혈(揷血)의 맹세를 강요하지 않는 데 대해서 크게 감격했다. 그 후 제환공은 열국 제후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복종하는 걸 알고서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모든 나라 군후를 유(幽) 땅으로 불러 모아 크게 회를 열어 삽혈하고 동맹하니 비로소 맹주(盟主)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 때가 주희왕 3년 겨울이었다. 유 땅의 맹회에서 정식 맹주 칭호를 받고 돌아온 제환공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남방의 초나라만은 아직 어쩔 수 없다는 데서 다소 짐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방에서 세작이 돌아와 초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아뢰었다.
애꿎은 채애공 탓
남방의 초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초문왕 웅자가 천하 절색 식부인(息夫人)의 미색에 반해서 그녀를 강제로 데려다 아내로 삼고 식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초문왕은 식부인을 데리고 오자 만사를 제쳐놓고 그녀와만 시간을 보냈다. 이리하여 함께 산 지 3년 동안에 초문왕과 식부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식부인이 3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초문왕과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초문왕은 처음 일 년간, 멸망한 식나라를 생각해서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그 다음 일 년도 임신하여 배부른 그녀를 채근할 수 없는 일이라 흘려 보냈다. 마침내 초문왕이 화가 치밀었다. 삼 년간을 참았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부인께서 이렇듯 삼 년 동안을 마치 벙어리처럼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
식부인은 대답없이 울기만 했다.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음에도 과인을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오?"
식부인은 고개를 흔들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초문왕은 험한 말을 마구 했다. 그제서야 식부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여자의 몸으로서 두 남자를 섬겼으니 비록 절개를 위해 죽지는 못하였을지언정 또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해서 입을 열고 말할 수 있으리이까."
식부인은 말을 마치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초문왕은 이 모습을 보자 속이 상했다. 그렇다고 따로 위로할 말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이 모든 일이 채애공 그 놈 때문이오. 짐이 부인을 위해서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러니 부인은 과도히 슬퍼하지 마라."
우습구나, 초문왕이여.
천하 절색을 탐낸 건 누구이며, 식부인을 데리고 살아 아이까지 낳은 건 누군데 어찌 채애공을 탓하는가. 사실이 그러했지만, 초문왕은 엉뚱하게도 채애공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는 자기 부인을 위로한답시고 군사를 일으켜 채나라로 쳐들어갔다. 채애공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벼락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곧 초군 앞에 나아가 웃옷을 벗고 꿇어 엎드려 사죄하고 부고를 몽땅 털어 모조리 바쳤다. 그때서야 초문왕은 군사를 거두고 물러났다. 이 소문을 들은 정여공은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곧 사자를 초나라로 보내어 자신이 군위에 복귀한 것을 보고했다. 초문왕이 사자를 꾸짖었다.
"너희 나라 임금 자리에 돌이 복위한 지 벌써 얼마가 지났는데 이제와서 고하느냐? 짐이 이번에는 너희 나라에 가서 버릇을 고쳐 놓겠노라."
드디어 초문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로 쳐들어 갔다. 그래서 정여공은 재빨리 국경까지 나와서 마치 영접하듯 초문왕을 맞아들이고 신하의 예로써 백배 사죄했다. 초문왕은 정여공의 태도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정 여공을 용서해 주고 회군했다. 이 때가 주희왕 4년이었다. 그 후로 정여공은 초나라가 무서워서 감히 제나라를 섬기지 못했다. 한편 제환공은 사자를 정나라로 보내어 정여공을 크게 꾸짖으니, 정여공은 상경 벼슬에 있는 숙첨을 제나라로 보내 제환공에게 고하도록 했다.
"지금 우리 정나라는 초군의 위세에 눌려 성만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 귀국에게 그간 공물을 바치지 못했습니다. 만일 군후께서 초나라를 눌러 주시면 우리 주공인들 어찌 군후를 섬기지 않겠습니까."
제환공은 숙첨의 변명이 미웠다. 제환공은 숙첨을 군부에 잡아 가두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군부의 경계가 허술한 바람에 숙첨은 도망쳐 정나라로 돌아갔다. 이후부터 정나라는 초나라만 섬겼다. 그 후 주희왕은 왕위에 있은 지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왕자 낭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주혜왕(周惠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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